[최씨네 리뷰] '노매드랜드' 길 위의 삶, 긴 인생을 위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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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1-04-1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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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매드랜드' 프란시스 맥도먼드[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남긴 말이었다. 장소, 조명, 온도 등 하나하나의 요소로 어떤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의미였다.

그의 말대로 대개 추억은 여러 요소가 뒤섞여 만들어진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 그날 먹은 음식이나 만난 사람들 등등. 모든 요소가 그날의 기억이 되는 셈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는 작품이 가진 본질보다 다른 요소들로 재미를 가르기도 한다. 혹평받은 영화가 '인생작'으로 등극할 때도 있고, '인생영화'가 다시 보니 형편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관객들도 필자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필자는 그날 영화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녹여낸 '최씨네 리뷰(논평)'를 통해 좀 더 편안하게 접근해 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영화 '노매드랜드' 15일 개봉[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까마득하다. 이제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라고들 한다. 사람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노후를 준비하는데 이따금 숨이 턱 막힐 때가 있다.

미래를 떠올렸을 때 희망보다는 불안이 더 크다. 삶의 방식이라거나 정착에 관한 걱정이라거나. 이유는 너무나 많다. 우리의 인생은 길고, 계속해서 이어진다. 고령화 사회에 관한 문제나 부동산 문제 등을 접했을 때 아득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일 거라고 생각된다.

영화 '노매드랜드'(감독 클로이 자오) 시사회를 앞두고도 그런 막연한 기분을 느꼈다. 해외 유수 영화제를 휩쓸고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이 작품을 두고 막연히 노숙자의 현실이나 사회 문제를 통렬히 비판했겠거니 짐작했다.

"집이 없다고 모두가 노숙자인 건 아니야."

하지만 극장을 나서며 생각이 달라졌다. 때때로 현실에 발붙이지 못해 유영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불안감을 느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조금 위안이 됐다. 긴 인생을 사는 우리를 위로하는 느낌이 들었다. '노매드랜드'가 전 세계를 휩쓸고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는 것도 아마 나와 같은 마음, 같은 위로를 받은 이들이 많기 때문일 거로 생각했다.

2008년 경제 대공황 여파로 미국 네바다 엠파이어 석고 공장이 문을 닫게 된다. 우편번호마저 사라진 유령도시로 전락하고 펀(프란시스 맥도먼드)은 순식간에 실업자로 전락한다. 설상가상 남편마저 암으로 사망하자 그는 대출금을 갚기 위해 집을 팔고 작은 밴에서 생활한다. 그는 물류 창고에서 알게 된 동료에게 방랑자들의 삶에 관해 듣게 되고 자발적으로 유랑생활을 택한 유목민들과 만난다. 그들과 교감하고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펀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여정이 이어진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는 자본주의 비판이나 사회 문제를 비판하거나 꼬집기보다는 각각 개인의 삶과 일상을 다루며 미국 사회의 모순을 포착한다. 그들이 유목민 생활을 결심하게 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어떤 감상에 빠지거나 이들을 연민하는 태도는 없다. 주인공 펀은 자기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대신 유목민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며 그들의 삶을 긍정한다. 펀의 태도는 곧 클로이 자오 감독의 태도처럼 느껴진다. 그의 담담한 시선과 태도가 관객들의 동요를 끌어내고 우리를 사색하게 한다.

광활한 도시와 아름다운 풍광은 극 중 인물들의 감정을 드러내는 요소기도 하다. 탁 트인 풍광과 거대한 자연을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부터 해방감까지 길 위의 삶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다. 화면을 통해 그들의 삶과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허구와 현실을 넘나들며 경계를 허문다는 점이다. 펀을 연기한 프란시스 맥도먼드와 데이브 역의 데이비드스트라탄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유목민이 실제 유목민이라고 한다. 배우들과 제작진은 유목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자연스레 하나가 됐고, 그들을 완벽히 이해하며 '노매드랜드'를 완성했다. 어떤 인위적인 경계를 느낄 틈도 없이 자연스레 영화에 녹아들었다.

배우 프란시드 맥도먼드의 연기는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지만 '노매드랜드' 속 그의 모습은 영화와 인물 그리고 유목민 생활에 그대로 녹아들었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그는 유목민의 삶에 귀 기울이고 고스란히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클로이 자오 감독의 미래에 기대가 커진다. 중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10대 시절을 보내고 미국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이 영화감독은 "자연을 통해 인간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2014년 사우스 다코타 아메리칸 원주민 청소년들의 고된 삶을 다룬 첫 영화 '내 형제들이 가르쳐준 노래', 2017년 사고로 카우보이 생활을 접어야 했던 실존 인물을 기용해 만든 '로데오 카우보이' 등으로 칸 영화제, 선댄스 영화제 등을 휩쓸며 영화 애호가들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노매드랜드'는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제55회 전미비평가협회상 감독상 작품상, 제 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을 받았다. 최초, 최대, 역대, 유일이라는 괄목할 만한 기록을 쌓아 올린 클로이 자오 감독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색상, 촬영상, 편집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15일 개봉. 상영시간은 108분이며 관람 등급은 12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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