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훠궈부터 비빔밥까지··· 불편한 드라마 속 중국 P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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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 기자
입력 2021-03-2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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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드라마 잠식한 중국 제품··· 월병에 중국 비빔밥까지 등장

  • 국내 광고 시장에서 영향력 큰 중국 자본, '한한령' 직전 100억 규모 넘어

  • "제작비 충당 위해 손 내밀 수밖에 없지만 시청자 입장도 고려해야" 지적

편의점에서 훠궈를 먹는 고등학생 차은우. 중국 브랜드 비빔밥을 먹는 변호사 송중기. 중국 음식 월병과 만두를 대접하는 충녕대군 장동윤.


중국 자본에 침식된 국내 드라마들이 시청자들로부터 줄지어 뭇매를 맞고 있다. 드라마 제작진에게 중국 자본 투입은 제작비 충당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지만 현실적 요건을 고려하되 국내 시청자도 존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북공정으로 고조된 반중 정서... 드라마에 중국 나오면 '아웃'

드라마 '조선구마사'에 등장한 중국 음식(좌)과 '빈센조'에 등장한 중국 브랜드 비빔밥(우). [사진=SBS '조선구마사', tvN '빈센조' 캡처]

24일 방송계에 따르면 SBS 새 월화드라마 ‘조선구마사’가 동북공정과 역사 왜곡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22일 방송된 조선구마사 1회에서 훗날 세종대왕인 충녕대군이 가톨릭 신부 요한과 통역사 마르코에게 중국 전통음식 월병과 만두 등을 대접한 장면이 화근이다. 조선구마사는 중국 자본 투자를 받은 드라마는 아니지만, 집필을 맡은 박계옥 작가가 지난 15일 중국 대형 콘텐츠 제작사 항저우쟈핑픽처스유한공사와 집필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청률 10%대를 유지 중인 tvN 드라마 '빈센조'도 중국 제품 간접 광고로 비판을 받았다. 지난 14일 방송에서 주인공 빈센조 역을 맡은 송중기가 비빔밥 즉석식품을 먹는 장면이 나왔다. 이 제품은 중국 유명 즉석식품 브랜드 ‘즈하이궈’가 만든 중국 내수용 비빔밥이다. 국내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중국 제품이 한국 드라마에 등장한 것이다.

한국 드라마 내 중국 문화의 등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달 종영한 tvN 드라마 ‘여신강림’에선 주인공 문가영과 차은우가 중국산 인스턴트 훠궈를 먹는 장면이 나와 시청자들이 눈살을 찌푸린 바 있다. 이 밖에 SBS ‘쓰리데이즈’, '닥터 이방인‘, KBS2 '프로듀사’, MBC 'W' 등 다양한 한국 드라마에서 중국 기업 제품이나 서비스가 간접광고로 꾸준히 등장했다.

국내 시청자가 중국 간접광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로는 최근 고조된 반중 정서가 꼽힌다. 과거 동북공정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김치, 판소리, 한복 등 한국의 주요 문화 자산을 자국 문화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한국에 알려지면서 반중 정서는 계속 커지고 있다. 실제로 빈센조에 나왔던 비빔밥 제품도 ‘한국식 파오차이’가 명시돼 더 큰 반발을 샀다. 파오차이는 중국이 김치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중국식 절임 채소 음식이다.

시청자들은 반중 정서를 숨기지 않고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다. 조선구마사 1회 방송이 끝나자마자 시청자 게시판에는 중국 문화 등장에 대한 불만 글이 속속 올라왔다. 제작진은 "상상력을 가미해 소품을 준비했다. 예민한 시기에 오해가 될 수 있는 장면으로 시청의 불편함을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드라마 방영 중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역사 왜곡 동북공정 드라마 ‘조선구마사’의 즉각 방영 중지를 요청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조선 역사를 모르는 외국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오해할 수 있다. 심각한 역사 왜곡은 법적으로 나오지 않게 재발 방지를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청원은 24일 오전 10시 기준 6만8000명 이상이 동의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조선구마사’ 관련 민원이 1700건 이상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늘어나는 중국 자본... 콘텐츠 수용자도 고려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방송가는 시청자의 반감은 이해하지만, 제작비 충당을 위해 광고시장에서 매년 커지는 중국 자본을 무시할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년 발표하는 광고통계조사에 따르면 중국 기업이 국내에서 광고를 집행하기 위해 투입한 자본금은 2016년 249만9000달러(약 28억3200만원)에서 2018년 978만8000달러(약 110억9400만원)로 2년 만에 4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9년 한국 사드 배치에 반발한 중국의 ‘한한령’(한류 금지령) 정책으로 국내 광고 산업에 유입된 중국 자본금은 56만 9000달러(약 6억4500만원)에 그쳤으나, 지난해부터 중국이 한한령 해제 움직임이 보이면서 다시 중국 자본이 밀려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중국 IT기업 텐센트는 국내 드라마 제작사인 JTBC스튜디오에 1000억원을 투자해 지분 7.2%를 확보했다. 또한 국내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인 YG엔터테인먼트 주요 주주로 상하이 평잉 경영자문 파트너십사(8.1%)와 텐센트(4.4%) 등 중국 기업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중국 제품이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고 있다. 주된 방법은 해마다 시장이 커지고 있는 간접광고(PPL)다. 지난해 간접광고 규모는 1658억원으로 전년 대비 30.6% 증가했다. 이를 두고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제작자 입장에서는 해외 시장에서도 콘텐츠가 수익을 만든다고 하면 한국에서 비난을 받더라도 관련 간접광고를 넣을 수 있다. 국내에서 제작비를 조달하기 어려우면 해외로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자본력을 앞세운 중국이 작품에 개입해 시청자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일이 아니다. 미국 문화‧인권 관련 비영리단체 펜아메리카는 지난해 '할리우드에서 만들고 베이징에서 검열하다'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 자본 유입으로 인한 할리우드 콘텐츠 검열 문제를 지적하면서 "중국 관객뿐만 아니라 미국인이 보는 것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우 걱정된다"고 경고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현재 방송가는) 시청자들의 감정만 고려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면서도 "정서가 대결적인 구도로 된 상황에서 간접광고를 조금 더 성의있게 구성해야 한다. 시청자들은 간접광고를 의도치 않게 만나기 때문에 반발이 크다. 제작진이 수용자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태도로 간접광고를 넣으면 당연히 지탄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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