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입법 폭주에 임금인상 압박까지... "기업하기 정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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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기자
입력 2021-02-19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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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대 성과 올리자 이익공유제에 플랫폼 규제법 도입 논의

  • 지난해 말 기업규제법 통과하자, 기업들 "투자·고용 등 줄이겠다“

  • 경영권 방어 힘든 지배구조 정책에 제2, 제3의 쿠팡 발생 지적도

“우리가 적자 내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국가가 도와준 적 있습니까?”

지난해 최대 실적을 거둔 A기업 임원의 하소연이다.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올린 A기업이 목표 초과달성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정부와 여당이 이익공유제를 화두로 던졌다.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수익을 낸 기업은 피해를 본 중소기업, 자영업자에게 과실을 나눠주라는 제도다. 정부는 이익공유제를 법제화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국회엔 네이버와 카카오,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과 같은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는 특별법이 5건 발의돼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들 법안엔 '거래의 투명화'라는, 기존 법체계에 없던 개념이 담겼다. 플랫폼 기업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이들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관련 법안이 우후죽순으로 제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부처는 서로가 규제권을 갖겠다며 신경전까지 펼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의 규제 입법 폭주로 한국이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공정경제를 실현하겠다며 상법·공정거래법, 금융복합기업집단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전속고발권 유지, 과징금 상향 등 기업들이 난색을 표했던 내용이 그대로 담겼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30개 업체를 대상으로 이번 기업규제 강화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37.3%가 고용을 축소하겠다고 했고, 27.2%가 국내투자를 줄이겠다고 답했다. 공장과 법인을 해외로 이전하겠다는 기업은 21.8%에 달했다.

설립 11년 만에 국내 대표 커머스 기업으로 성장한 쿠팡이 한국이 아닌 미국 주식시장을 선택한 것도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정부의 그릇된 인식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기업의 지배구조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한 탓에, 벤처캐피털(VC)의 투자를 받아 성장한 유니콘 기업들은 국내에서 경영권을 방어하기가 어려워졌다. 제2, 제3의 쿠팡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사진=아주경제DB]


실적이 조금이라도 나아진 기업은 연봉과 성과급 인상이라는 내부 압박에도 시달리고 있다. SK하이닉스를 시작으로 삼성전자와 LG전자, SK텔레콤, 네이버는 성과급 기준을 두고 노사가 갈등을 빚고 있다.

네이버는 오는 25일 임직원을 대상으로 성과급 지급 기준에 관한 설명회를 연다. 노조는 지난해 회사가 역대 최대 성과를 냈는데도 성과급을 2019년과 같은 수준으로 지급한다고 결정한 조치에 불만을 표출했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지난달 한성숙 대표 명의의 공지로 등급별 성과급 인상률에 대해 설명하는 절차를 거쳤지만, 한 차례 더 자리를 마련해 추가 설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와 유사한 성과급 논란을 겪은 SK텔레콤도 직원들의 불만이 제기되자 노조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성과급 제도를 개선하기로 결정했다. LG CNS 또한 지난해 최대 실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년과 유사한 수준의 성과급이 지급되자 직원들의 불만이 제기됐다. 국내 최대 게임업체 넥슨과 넷마블이 전 직원 연봉을 800만원 인상하겠다고 발표하자, 다른 동종 기업들도 파격적인 보상안을 요구받고 있다.

성과급 논란은 SK하이닉스에서 촉발됐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8일 기본급의 400%를 초과이익분배금(PS)으로 지급한다고 공지했다가 직원들의 공분을 샀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2019년 대비 84% 증가했으나, PS는 같은 수준으로 지급됐기 때문이다.

4년차 직원이 이석희 대표에게 성과급 지급 기준을 공개하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이에 SK하이닉스는 노동조합과 논의 끝에 PS 지급 기준을 경제적 부가가치(EVA)가 아닌 영업이익과 연동해서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EVA는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데 반해 영업이익은 공개되는 지표여서, 회사 측이 성과급을 투명하게 지급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됐다. 또 직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자사주를 지급하기도 했다. 직원들은 기본급의 200%에 해당하는 주식을 무상(의무보유 4년)으로 받거나 30% 할인한 가격으로 매입(의무보유 1년)할 수 있다.

삼성전자 노조에서도 성과급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실적을 토대로 사업 부문과 사업부 평가를 합쳐 상‧하반기에 지급하는 목표달성 장려금(TAI)과, 사업부 실적이 목표를 넘겼을 때 연초에 주는 초과이익 성과급(OPI)이 있다. 지난해 반도체 부문은 기본급의 100%를 TAI로 받았고, 연봉의 43~46%를 OPI로 받았다. IT·모바일(IM) 부문은 기본급의 75%를 TAI로, 연봉의 41~47%를 OPI로 받았다. 생활가전 부문 TAI는 기본급의 100%, OPI는 연봉의 28~34% 수준이다. 삼성그룹 8개 기업의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노조들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고 OPI가 노동자에 불리한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경제민주화라는 이상하게 왜곡된 개념이 오랫동안 퍼지면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기업은 주주의 재산으로, 사회적으로 기업을 압박하는 건 다른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익의 경우 경영적 판단에 따라 주주에게 돌려주거나 투자를 위해 사용돼야 하는데 이를 당장 나눠 먹자는 것은 당연한 권리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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