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진풍경] 고개 숙인 회장님, 할말 다하는 MZ세대...“한국식 보상체계 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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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기자
입력 2021-02-17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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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봉을 모두 반납하겠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일 SK하이닉스 자체 생산시설 중 최대 규모인 반도체 공장 M16 준공식 자리에서 이같이 공언했다. 최 회장이 이례적으로 자신의 SK하이닉스 연봉(2019년 기준 약 30억원)을 반납해 직원 성과급에 반영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최 회장의 파격 공언에도 성과급 지급 규모를 둘러싼 불만의 목소리가 여전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임직원 2만8000여명에게 연봉의 20%에 해당하는 성과급을 나눠준다고 밝혔다. 그러나 SK하이닉스 사내 게시판에는 회사의 성과급 산정 방식을 공개해달라는 목소리와 함께 경쟁사인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직원이 받는 성과급과 비교해 절반도 안 된다는 불만이 폭발했다.

결국 축제가 되어야 할 M16 준공식 자리가 성과급 논란의 화두가 되는 자리로 변모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성과급 관련해 내부적으로 직원 불만이 높아지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회사에서 정해진 기준대로 성과급을 산정한 것이겠지만 불만이 나오는 것은 함께 극복해야할 과제인 것 같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에 이어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까지 나서서 “충분히 미리 소통하지 못하고 PS(이익분배금)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앞으로 성과급 내용을 미리 공지하고 투명하게 소통하겠다”고 사내 메시지를 통해 사과했다. 이례적으로 그룹 총수와 최고경영자(CEO)까지 나서 재빨리 진화에 나선 것이다.

그럼에도 SK하이닉스 직원들은 성과급 산정 지표로 삼는 EVA(Economic Value Added·경제적 부가가치 : 영업이익에서 법인세, 향후 투자금액 등을 뺀 것)를 공개하라고 요구했고, 심지어 삼성전자·마이크론 등 경쟁사로 집단 이직 움직임이 일어나는 등 동요가 심각해졌다.

결국 SK하이닉스 사측이 한발 물러났다. 최 회장의 연봉 반납 공언 이후 불과 사흘 만인 지난 4일 노사 협의를 통해 EVA를 폐지하고 성과급을 영업이익과 연동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우리사주를 발행해 기본급 200%에 해당하는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고, 사내 복지포인트 300만 포인트를 올해 지급키로 노사가 합의했다.

이후 성과급 논란은 SK하이닉스의 모회사인 SK텔레콤으로까지 번졌고 이후 삼성전자,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 LG전자, 네이버 등 재계 전방위로 확산했다.
 

책 '90년대생이 온다' 표지 일러스트 [사진=웨일북 제공]


재계에서는 올해 유독 성과급 논란이 커진 배경 중 하나로 공정성과 실리를 중시하는 MZ세대(1980년대 후반~2000년대에 태어난 세대)의 특성을 꼽는다.

이들은 회사를 ‘평생 직장’으로 여기지 않고, 굳이 힘든 ‘임원 승진’ 등을 바라지 않는 인식 때문에 실리나 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면 참지 않고 명확하게 불만을 표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한 사내 게시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등 직장인들이 외부로 사내 소식을 전할 소통 채널이 다양해진 것도 한몫을 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MZ세대는 할말은 다 하는 세대라, 성과급에 대해서도 ‘이 정도면 옛날에 비해 많다’고 말하면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라며 “여차하면 SNS를 통해 사내 소식을 전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공론화 되면 기업으로선 상당히 당혹스럽게 된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기업들은 기밀에 해당하는 회사의 투자 계획과 경영 성과 등과 연계된 성과급 정보가 공개되는 것에 대해 부담감이 크다고 토로한다. 그럼에도 이번 논란을 계기로 임직원들과의 소통 및 성과급 체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특히 일각에서는 회사별, 소속 사업부별로 일괄적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는 한국식 성과보상 시스템을 바꿀 시점이란 지적도 나온다. 외국 기업처럼 고용 단계부터 개인별로 임금과 인센티브 기준을 정하고, 성과 평가도 개인별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요 글로벌 기업은 국내 기업과 성과급 구조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특정 기간에 기업이 내건 목표를 달성하면 주식을 보상으로 지급하는 성과보상체계인 RSU(Restricted Stock Unit)와 임직원에게 회사 주식을 특정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스톡옵션 등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해당 부서에 일괄적으로 성과급이 지급되지 않고 개인별로 모두 다르게 지급돼, 이번 국내 논란처럼 외부로 알려져 사회적 논란이 될 가능성도 적다.

국내 대기업 인사총무팀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성과급을 작년 실적에 따라 모든 임직원들에게 일괄 적용하는데, 이는 성과급이 아닌 임금의 성격”이라면서 “성과급 체계를 보다 세분화해, 철저한 개별 평가를 통한 인센티브 적용 시스템으로 변할 때”라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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