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년전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이 文대통령에게 귀뜸하는 외교術

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 교수(정치학) 입력 : 2021-02-16 20:19

[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교수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한반도와 주변정세가 심상치 않을 때마다 140여년 전 청나라 사람 황준헌(黃遵憲‧황쭌셴·당시 주일 청국공사관 참찬관)이 쓴 ‘조선책략’(朝鮮策略)을 다시 보게 된다. 단순 비교는 물론 어렵지만 시사하는 바는 많다. “과거를 멀리 보는 사람은 미래도 멀리 보게 된다”고 했던가.

‘조선책략‘의 요체는 친중(親中), 결일(結日), 연미(聯美)에 있다. 러시아(아라사‧俄羅斯)의 남진을 막고(방아‧防俄),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조선은 중국과 친하게 지내고(계속 섬기고), 일본과는 협조관계를 맺고, 미국과는 연대하라는 권고다. 청나라가 반(反)러시아 전선의 구축을 위해 이이제이(以夷制夷) 차원에서 조선도 끌어들인 거지만 황준헌은 이를 조선에도 유용한 생존전략으로 본 것이다. 1880년 9월 수신사로 일본에 와 있던 김홍집은 황으로부터 이 책자를 건네받고 고종에게 전한다. 고종을 위시한 개화파들이 크게 고무되었음은 물론이다.

고종은 곧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고(1882년 5월), 이어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과도 수교한다. 위정척사파의 반대를 누르고 쇄국의 빗장을 푼 것이다. ‘조선책략’으로 조선은 민족국가(nation state)를 단위로 하는 근대적 국제체제와 다자주의, 세력균형의 개념에 눈을 뜨게 됐다는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청-일, 러-일의 각축 속에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고종이 러시아를 끌어들임으로써, 영국과 미국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용인토록 해준 게 결정적 원인이었다.

중국의 조선 속국화와 ‘親美論’

‘조선책략’에는 조선을 영원히 중국의 속국으로 삼으려는 청나라의 집요함이 생생히 드러난다. 왜 친중(親中)인가. “…중국이 사랑하는 나라로 조선만 한 나라가 없다. 조선이 우리의 번속(藩屬)이 된 지 이미 1천년이 지났다. 중국은 덕으로써 편안하게 지내게 하고, 은혜로써 품어줄 뿐, 한 번도 그 토지와 인민을 탐내는 마음을 가진 적이 없다.… 조선은 중국 섬기기에 더욱 힘써서 천하로 하여금 조선과 우리는 한집안 같음을 알도록 해야 한다.….”

그럼에도 미국에 대해선 다분히 호의적이다. 역시 러시아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강성함은 유럽의 여러 대지와 더불어 동‧서양 사이에 끼여 있기 때문에 항상 약한 자를 부조하고, 공의를 유지하며, 유럽 사람으로 하여금 그 악(惡)을 함부로 행할 수 없게 했다.…미국을 우방으로 끌어들이면 구원을 얻고 재앙을 풀 수 있다. 이것이 미국과 연(聯)해야 할 이유다.…”

‘조선책략’의 이런 대미 인식이 한국사회의 친미론(親美論)의 토양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 박노자 교수(오슬로대‧한국학)에 따르면 “황쭌셴은 러시아를 악마로, 미국을 영토적 야심이 없는 동양의 수호천사로 생각했는데…그 영향을 받아 고종도 미국을 긍정적으로 보았고, 미 선교사들과 미션스쿨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었다”는 것이다. 이 미션스쿨 초기 졸업생들이 대한민국 건국 초기 지배층의 근골을 이룬 것으로 박 교수는 본다(중앙일보 2003년 3월27일).

‘조선책략’은 실현되지 못했다. 중국이 일본에 패퇴하고 조선이 일제에 먹히는 바람에 ‘친중’도, ‘결일’도 이뤄지지 않았다. ‘연미’도 미국의 소극적 태도로 무산됐다. 고종은 끝까지 미국의 개입과 보호에 기대를 걸었으나 돌아온 것은 1905년 일본의 조선 지배권을 인정해준 가쓰라-태프트 밀약뿐이었다. ‘조선책략’이 지금도 우리에게 주는 함의가 자못 심장한 이유다. 요즘처럼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듯한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조선책략’은 적어도 국제정치학의 기초개념인 국력, 세력균형, 현실주의의 세 차원에서 톺아봐야 한다. 국력(힘)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다. 어떤 방책도 힘이 따라주지 않으면 소용없다. 황준헌의 권고대로 친중, 결일, 연미했더라면 국권 상실의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걸 주도할 힘이 없는데 무슨 수로? 오늘날 4강 외교와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자강(自强)과 부국강병(富國强兵), 특히 동맹의 힘이 뒷받침해줘야 한다.

親中, 結日, 聯美가 지금 가능하다면

황준헌은 당시 동북아의 현상유지(status quo)체제, 곧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체제가 유지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일본이 이미 이를 깨기로 마음먹고, 영미(英美)가 묵인, 방조하는 상황에선 현상타파, 곧 전쟁(청-일, 러-일, 중-일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 세력균형체제는 역내(域內) 국가들이 함께 노력함으로써 유지된다. 당시 조선의 처지로는 낄 여지조차 없었지만 국가지도자의 능력에 따라서는 나라 크기와 관계없이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노태우 대통령은 북방정책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클린턴 정권의 이해(理解)와 지원 속에서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킴으로써 동북아의 세력균형체제 유지에 기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자론’도 그런 의도에서 비롯됐겠지만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역동적인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으나 북한의 핵보유가 기정사실화 되고, 핵능력은 고도화됐다. 북핵이 언제든 세력균형체제에 구멍을 낼 수도 있다는 점에서 ‘평화의 일상화’를 얘기할 상황은 아니다. 더욱이 한-미-일 삼각체제의 한 축인 한·일관계 악화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일외교를 실패로 규정하고, 이 정권 최대의 실책으로 꼽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바이든 미 정부까지도 유감과 우려를 표명하고 나설 정도다.

현실주의는 이상(理想)에 치우치지 않고 주어진 현실에 기초해 외교정책을 펴는 것을 의미한다. 이념이나 도덕적 가치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에 기반을 둔, 그래서 외교의 목적도, 수단도, 제한적인 게 현실주의다. 이런 점에서 ‘조선책략’의 ‘친중’ ‘결일’ ‘연미’는 국력과의 괴리가 컸던 당시보다 오히려 오늘에 더 맞는 현실주의적 방책 같다. 우리가 ‘친중’하고(과거처럼 섬긴다는 것은 아니고), ‘결일’하며, ‘연미’, 곧 ‘맹미(盟美)’할 수만 있다면 외교의 지평은 훨씬 넓어진다. 한·일관계만 해도 한미동맹이 어떤 반일(反日) 구호보다도 효과적인 일본 견제수단임을 알아야 한다. 결국 외교역량이 출중한 지도자와 우수한 외교관들이 나와야 한다.

美도 한국에 동맹의 인센티브를 줘야

향후 미-중에 대한 대응도 이 세 차원에서 논의되고 결정되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문제는 항상 디테일에 있다. 원칙은 그럴듯하나 구체적인 현안에 들어가면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쿼드(Quad)가 좋은 예다. 한미동맹을 생각하면 참여해야 하나, 중국의 반발도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 미-중 사이에서 우리는 이와 유사한 현안들을 놓고 선택의 고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한국이 정치‧군사적으로는 미국에 기대고,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기대는 이중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진보 보수, 여야를 떠나 우리 시대가 직면한 실로 지난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생각들이 다 다르다. “선택해야 한다면 미국 쪽에 서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고,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위상과 힘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거나, “사안별로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사람들도 있다. 분석과 진단은 차고 넘치지만 처방은 없는 형국이 이어지고 있다.

최영진 전 주미대사(2012.03-2013.05)의 견해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한-미-일 3각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는 전제 아래 “3각 협력을 증진하되 그 협력이 중국을 대상으로 하거나 중국을 직접 타깃으로 하는 3국 공동입장이나 정책에는 선을 긋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최영진, ‘신조선책략’, 김영사 2013년)

조선왕조 500년을 관통하는 외교의 기본원칙은 사대교린(事大交隣)이었다. 큰 나라를 섬기고 다른 이웃과는 선린관계를 유지한다는 거였다. 여기서 큰 나라(大)는 물론 중국이다. 이제 그 자리에 한미동맹을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중국판 사대교린이 1국 지배의 경성 위계질서체제(hard hierarchical system)였다면, 한미동맹판 사대교린은 연성 위계질서체제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1극체제 특유의 안정성에 의존하지만, 전자는 전체주의적 가치 위에 서있고, 후자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 위에 서있다.

한미동맹 중심의 신(新)사대교린이 성공하려면 한미동맹 자체도 ‘협력적 참여동맹’으로 바뀌어야 함은 물론이다. 예컨대 현실적으로 북핵 폐기가 어렵다면 미국과 유럽 일각에서 제기된 ‘아시아 핵기획그룹(ANPG)’의 창설을 지지하고 참여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동맹이란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관계다. 미국도 우리에게 뭔가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 교수(정치학)   leejaeho64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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