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랜드마크⑨]비틀즈·롤링스톤즈 키즈들의 성지...'낙원악기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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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람 기자
입력 2020-11-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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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대 규모 악기 상점…인근에는 '탑골공원'

근래 한국은 역사상 최고의 문화 부흥기를 누리고 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된 남자 아이돌 BTS(방탄소년단), 베트남의 축구 영웅 '쌀딩크' 박항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등 국가대표 문화 외교관들의 활약 덕이다.

세계의 관심이 한국으로 쏠리는 가운데, 한국의 상징적인 랜드마크 상당수를 보유한 서울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이에 서울의 랜드마크를 대표하는 건축물 50선을 조명해본다.
 

[낙원상가 공식홈페이지]

◆지미 핸드릭스를 꿈꾸던 소년·소녀, 종로로 모이다 

세계적인 그룹 비틀즈가 등장한 이후 1960~1970년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밴드 광풍이 불었고,  그 광풍은 대한민국에까지 미쳤다. 한국의 비틀즈, 롤링스톤즈, 지미 핸드릭스를 꿈꾸던 이들은 하나둘 종로로 모여들었고, 그 열망이 모여 세계 최대 규모의 악기상점 '낙원악기상가'(낙원상가)가 만들어졌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낙원상가는 인근의 세운상가와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근대 상가 건물이다. 타워팰리스보다 몇십 년이 앞서는 한국 주상복합 1세대의 대표적인 건물이기도 한 낙원상가는 초창기까지만 해도 남산시민아파트에 버금가는 고급 아파트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지금의 낙원동, 익선동, 인사동 등의 종로 일대는 조선시대 때부터 풍류가 흐르던 지역이었다. 술집과 기방 같은 여흥의 문화가 종로 곳곳에 자리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자연스레 먹거리들과 주막들이, 그리고 기방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 일대의 이런 문화는 일제시절과 광복 이후에도 유명 사교클럽 등으로 이어지게 됐고, 이를 기반으로 이 일대에 음악인들과 연예인들이 많이 오가게 됐다.

낙원상가는 처음부터 악기상점은 아니었다. 1970년대에는 오히려 양품점(옷과 장신구 등의 잡화를 파는 가게)과 가구점이 더 많았으나,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의 성지'로 자리 잡게 됐다.

악기상점으로 낙원상가가 부흥기를 누린건 70년대 록 광풍이 분 직후부터다. 비틀즈의 등장 이후 1960~70년 대에 전세계적으로 록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록 밴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록 밴드의 생성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악기 수요를 만들어 냈다. 자연스럽게 악기 수요가 커지면서 상가 내에 악기상점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여기에 1982년 1월 6일 자정을 끝으로 야간 통행 금지까지 해제되면서 상권은 더욱 활성화했다.

새벽까지 유흥을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되면서 심야 무대 문화가 형성됐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심야영업이 금지되기까지 이 시장은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아직까지 종로 일대를 지키고 있는 낙원상가는 현재까지도 300여 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2층은 종합악기 매장으로 기타, 관‧현악기, 타악기, 드럼, 건반악기, 음향장비와 악기 액세서리를 판매한다. 3층은 전문악기매장으로 타악기와 음향‧미디어장비 매장이 들어섰다.

4층과 5층에는 악기 관련 사무실들과 합주연습실, 야외 공연장(아트라운지 멋진하늘) 등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 악기 판매를 위주로 운영됐던 낙원상가는 복합문화공간으로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탑골공원 내부 [아주경제DB]

◆비둘기·노인들만의 천국?…우리나라 최초의 도심 공원, 탑골공원

한때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신조어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온라인과 노년층이 많이 모이는 서울 종로 탑골공원을 합친 신조어인데, 레트로가 유행을 타면서 90년대, 2000년대 인기 가수와 음악을 다시 들으며 그 시절 스타들을 발굴하는 데에서 유래했다. 

이 신조어가 젊은 세대 사이의 유행으로 자리 잡으면서 탑골공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원래 탑골공원은 비둘기들이 많이 모이고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즐겨 찾아 ‘비둘기 공원’, ‘노인 공원’으로 불리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등한시되는 공간이었다.

탑골공원은 우리 손으로 세운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다.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있어 탑골(탑곡;塔谷)이라고 불렀으며, 탑이 길쭉한 뼈 모양이라 탑골(塔骨)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별칭으로는 '파고다공원'으로도 불렸는데, 파고다(pagoda)는 탑파(塔婆)라는 뜻이니 마찬가지로 탑을 뜻한다.

공원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 고려시대 흥복사가 있던 자리에 1465년(세조 11년)에 원각사라는 절이 세워졌으나 연산군 때 폐사됐고 고종 34년에 영국인 브라운의 설계에 의해 공원으로 조성됐다. 

3·1운동 당시 시민들과 학생들이 이곳에 모여 만세를 외쳤으며 학생 대표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팔각정이 남아있다. 탑골공원이 정식으로 공원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 들어서였다.

그러나 해방 후에도 탑골공원의 처지는 나아지지 않았다. 주변에 판자촌과 빈민가옥이 형성됐으며, 인근엔 ‘종삼’이라 불렸던 사창가도 생겨나면서 남루한 모습을 이어갔다. 

이후 박정희 시대로 거쳐와 불량 주택이 철거되고 공원 바깥으로 2층짜리 아케이드가 생겼다가 1988년 무료 개방이 시작됐다. 현재의 탑골공원의 이미지가 구축된 시발점이다. 

90년대 들어 탑골공원은 본격적으로 노인지대화하기 시작했다. 더 큰 규모의 '노인공원'이었던 종묘가 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이후, 노인들이 탑골공원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문화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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