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성소수자도 신의 자녀"...LGBTQ 권익보호·시민결합법 첫 지지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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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입력 2020-10-2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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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성 커플도 전통 결혼처럼 법적 보호 받아야" 발언

  • '변화하는 가톨릭'...2000년 금기 깬 프란치스코 교황

"동성애자도 하느님의 자녀들이며 가족으로 하나될 권리를 갖고 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버려지거나 불행해져선 안 된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2000년 교회의 금기를 깨고 입을 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EPA·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로마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프란치스코'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민결합법(Civil Union)"이라면서 "이는 동성애자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며, 나는 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미국 감독 이브게니 아피네예브스키가 제작한 해당 영화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임 7년의 시간을 기록했다.

다큐멘터리에서 교황은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일"이라는 전통적인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강조하면서도 성소수자(LGBTQ) 권익 보호에 대한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채택하고 있는 시민결합법을 명시적으로 지지했다.

이날 AP는 "2013년 즉위한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 커플의 법적 보호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동성간의 결합(시민결합법)을 공개적 지지한 역대 첫 교황"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시민결합 제도란 전통적인 결혼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성 결혼 합법화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제시된 법적 대안으로, 1989년 덴마크에서 처음 도입된 후 뉴질랜드·프랑스(PACS)·미국 버몬트주(州) 등에서 채택하고 있다.

시민결합 제도에 등록한 동성커플은 이성 간의 전통 결혼 제도로 발생하는 모든 권한과 책임이 동등하게 부여된다.

다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해당 발언을 정확히 언제 했는지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아직 다큐멘터리와 교황의 발언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며 논평을 거부했다.

전통적인 가족관과 생명 중시 사상을 핵심 사회가치로 옹호해온 가톨릭 교회는 낙태, 동성애, 안락사 등의 문제에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경우 "가족제도 밖에 방치되는 미혼모나 성소수자 등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면서 해당 문제들에 대해 과거보다 진일보한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교계의 반발을 의식해 동성애 문제에 대해 공개석상에서의 명료한 발언은 피해왔다.

교황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로 있을 당시 동성 결혼 합법화에는 반대하면서도 시민으로서 성수소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즉위 직후인 2013년 7월에는 교황은 브라질 순방 이후 귀국길에서 "성소수자가 선한 의지로 하느님을 찾는다면, 내가 그를 어떻게 심판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이후 2014년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에서는 "결혼은 남녀간의 일이지만, 다양한 형태의 결합을 다양한 형태로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면서 현실적으로 동성 부부에게도 의료 문제나 재산 문제 등에서 법적인 보호가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바티칸의 가톨릭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에 모인 최고위급 성직자들에게 사회의 변화를 쫓아가야 한다면서 결혼과 이혼, 피임과 낙태, 동성애 등 그간 가톨릭이 금기시해온 문제들을 공론화하도록 지시했다.  

다만, 2017년 교황은 프랑스 사회학자 도미니크 울턴과의 대담집에서 "결혼은 남녀 간의 일이고 역사적인 용어이므로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으니, 그것은 시민결합이라 부르자"면서 동성 결혼을 명확히 지지한 적은 없었다.

교황의 이번 언급에 대해 교황청 안팎에서는 성소수자(LGBTQ) 이슈와 관련한 가톨릭교회의 역사적인 방향 전환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동시에, 가톨릭 정통 교리에 반한다는 이유에서 보수교계의 반발도 거세다.

미국의 예수회 사제 제임스 마틴은 로이터에서 "동성결합법에 대한 교황의 명확하고 공개적인 지지는 가톨릭 교회와 성소수자의 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음을 상징한다"고 풀이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성소수자 차별에 강하게 반대해온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역시 "매우 긍정적인 움직임"이라면서 '가톨릭 교회의 역사적인 방향 전환'에 대한 환영의 뜻을 표했다.

반면,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의 토마스 토빈 주교는 성명을 통해 "교황의 발언은 동성 결합에 대한 가톨릭의 오랜 가르침과 명백히 모순된다"면서 "교회는 객관적으로 부도덕한 관계를 지지할 수 없다"고 교황을 비난하기도 했다.
 

2016년 이탈리아에서 시민결합법이 통과되자, 시민결합을 신청·승인받고 기뻐하는 한 동성 커플. [사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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