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의 베트남 ZOOM IN] (20) 조국의 이름으로 어딘들 못 가리까?

안경환 전 조선대교수, 전 한국베트남학회회장 입력 : 2020-09-05 21:26

{안경환 전 조선대교수] 




금년은 베트남 파병 56주년이 되는 해이며, 9월 11일은 56년 전인 1964년에 140명의 베트남 1차 파병 요원이 부산항을 출발한 날이다. 그리고 총부리를 맞대었던 베트남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한 지 28년이 되었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조국의 이름으로 어딘들 못 가리까?” 많이 듣던 맹호부대 군가의 노랫말이다. 그들은 조국의 이름으로 뽑혀 조국의 이름으로 참전했다. 이즈음에 베트남 참전의 공과를 되새겨보고, 참전 용사들의 명예 선양과 예우 문제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베트남 참전으로 조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고, 자주국방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한국군의 베트남 참전은 월남(베트남공화국)이 월맹(베트남민주공화국)의 무력에 의해 공산화통일이 됨으로써 참전명분이 희석되었다. 그리고 1992년 12월 22일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과 17년 8개월간의 외교적인 단절을 극복하고 국교를 수립함으로써, 참전 장병들에 대한 명예를 선양하는 일이 아쉽게도 국민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외교적으로 베트남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베트남 참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생기기 시작하였다. 일부에서는 민간인 복장을 한 적과 양민을 구분할 수 없었던 베트남전쟁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한국군의 양민학살을 부각시켜 참전용사들의 울분을 사고 있다. 국가 지도층에서도 베트남 참전에 유감을 표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국가의 명을 받고 베트남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유공자들의 사기와 자긍심을 심각하게 저하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시점에 잣대를 놓고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국가의 보훈정책이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 대한 예우와 긍지를 고양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베트남 참전 장병들의 다음과 같은 의견을 경청하고 진심어린 답을 할 필요가 있다.

첫째, 베트남 참전수당이 재일학도의용군, 4·19 혁명유공자,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세월호 사건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보상금과 비교해서 형평성이 유지되고 있는가?
둘째, 베트남 참전 고엽제후유(의)증자와 고엽제후유증 2세 환자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가?
셋째, 참전용사들의 고령화에 따른 의료복지시스템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가?
넷째, 베트남 참전유공자들의 공훈 기록은 제대로 작성되어 있는가?
다섯째, 십자성작전 참가용사도 '참전용사'로 인정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국가의 보훈정책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국가의 부름을 받고 참전한 장병들의 자긍심도 되살아나고 국격도 높아질 것이다. 참전 용사의 자긍심 고양은 국가 안보를 담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베트남 참전의 성과
한국군은 1964년 9월 11일 부산항을 출발한 130명의 이동외과병원 요원과 10명의 태권도 교관, 총140명이 9월 22일 베트남 사이공 항구에 도착 후 붕따우로 이동하여, 9월 28일 시무식을 갖고 첫 업무를 시작한 이래 연인원 약 32만명이 참전하였다. 그 후 1973년 1월 27일 파리평화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3월 23일 마지막 후발대가 철수할 때까지 8년 6개월간 베트남 전쟁에 참가하였다. 한민족 5천년 역사상 최대, 최장기간의 해외파병이었다. 대한민국은 베트남 참전으로 산업화와 근대화로 경제발전의 토대를 마련할 수가 있었고,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제고할 수 있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자유 우방국으로부터 받은 도움에 대해 보은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또한 방위산업을 육성하여 국산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하게 됨으로써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하여 북한 김일성의 재남침 야욕을 분쇄시킬 수 있었다. 경제개발과 자주국방이라는 2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 고엽제피해자 대책, 의료복지대책과 관련된 문제는 국민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참전 후유증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고 있는 수많은 국가유공자들의 삶을 국민들 스스로가 보듬어 국민 단합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베트남 참전의 상흔과 보훈정책의 형평성
한국군은 1964년 9월 140명 파병을 시작으로 1973년 3월 23일 철수할 때까지 참전한 한국군의 연인원 약 32만명 중 전사망자가 5099명, 부상자가 1만1232명에 이른다. 고엽제로 상이등급을 받은 참전유공자는 7만6134명이고, 일반 참전유공자도 13만5813명에 이른다. 현재, 보훈금은 일반유공자와 국가유공자로 구분하여 지급되고 있는데, 65세 이상의 일반 유공자에게는 매월 참전명예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국가유공자는 무공과 상해등급에 따라 본인과 유족으로 구분하여, 상이군경은 60세 이상과 60세 미만으로 구분하여 7개 등급으로 세분하여 보상금과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 참전 장병에 대한 보훈금액이 형평성 없이 지급되고 있다는 것이 베트남 참전 장병들의 의견이다. 베트남 참전 유공자의 보상기준이 독립유공자, 재일학도 의용군, 4·19혁명 유공자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현재, 베트남 파병 장병 중 일반참전자는 참전명예수당으로 매월 32만원을 지급하고 있고, 무공훈장에 따라 영예수당을 지급하고 있는데, 태극무공훈장의 경우 월 40만원씩 지급하고 있다. 독립유공자는 수훈의 품격에 따라 매월 276만4000원에서 832만5000원을 받고 있고, 재일학도의용군도 매월 134만6000원에서 162만원을 받고 있다. 또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는 사망자와 행방불명자에게 1억4600만원에서 9100만 원을, 부상자에게는 2억6800만원에서 3400만원을 지급하였다. 이와 같이 베트남 참전 유공자에 대한 예우가 다른 유공자와 비교하여 형평성이 맞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끊임없이 명예회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고엽제후유(의)증 환자 지원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枯葉劑)인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는 당사자에게는 물론 2세까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주고 있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베트남 참전자 중에 고엽제로 신체적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는 등외판정자를 포함해 2012년 10월 말 기준 전체 14만1413명이 등록되어 있었다. 고엽제후유(의)증 환자와 2세에게는 『고엽제후유(의)증 등 환자 지원에 관한 법률(법률 제11203호)』에 의거 후유(의)증 환자에게는 고도·중등도·경도장애로 나누어 고도장애는 98만1000원, 중등도 장애는 72만3000원, 경도장애는 47만5000원을 지원하고 있다. 고엽제후유(의)증 환자의 2세에게도 정도에 따라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있으나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여지가 많다. 예를 들면, 산재보험 대상자가 받는 장애급여금과 고엽제후유(의) 증자와 고엽제 후유증 2세 환자가 받는 수당을 같은 등급 별로 정리해 비교해 보면, 고도장애의 경우 무려 3~5배 정도의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고엽제 피해로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베트남 참전유공자들의 아픔을 헤아려, 다른 국가유공자들과 형평성을 맞추어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의료지원체제
베트남 파병 국가보훈 대상자들이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는 보훈병원은 5대 도시(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만 소재하고 있다. 대도시 이외의 거주자 및 신체장애자의 보훈병원 이용이 불편하고, 대상자가 고령화됨에 따라 노인성 질환자들을 위한 특수클리닉과 한방진료 등 진료과목의 확충이 필요한 실정이다.

◼십자성작전 참가 장병도 '참전용사'로 인정해야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이 공산화되기 직전 베트남(월남)서 1902명을 구출한 작전이 ‘십자성작전’이다. 이 작전에 참가한 장병도 '참전용사'로 인정해야 한다. 십자성작전은 1975년 4월 9~16일 공산화 직전의 베트남에서 우리 교민과 외교관을 구출한 작전이었다. 베트남 전쟁은 1973년 1월 27일 남북 베트남과 미국이 파리에서 체결한 파리평화협정으로 종전이 되었고, 협정에 따라 외국군이 철수하자, 1975년 북베트남군이 남으로 밀고 내려왔다. 사이공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1975년 3월 15일부터 3주에 걸쳐 대사관 직원, 상사 주재원, 교민을 항공기로 귀국시켰음에도 잔류 교민이 1000여명 이상이 남아있었다. 이들은 지방출장으로 연락이 안 되거나, 상황의 위급함을 통보해도 미국이 가만히 있겠느냐며 사업장과 재산을 포기하지 못하고 남아 있던 교민들이었다. 이들의 구출은 급박했다. 전세는 긴박하게 돌아가 북베트남군이 파죽지세로 남으로 밀고 내려오고 있었다. 해군함대가 하루 240마일씩 파도를 헤치고 항해하는 동안, 목적지 다낭이 함락되었다. 냐짱으로 항로를 돌렸으나 해군함대가 도착하기 전에 냐짱도 함락되었다. 다시 항로를 바꿔 21일 사이공에 겨우 입항했다. 사이공 항구는 강어귀로부터 구절양장(九折羊腸)의 강을 따라 30여㎞ 이상 거슬러 올라가야 있다. 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야간에 조명을 끄고 긴 대나무로 수심과 강둑을 짚어가며 초긴장 속에서 항해를 하느라 함장과 조타수는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는, 해사 1기생으로 해군의 첫 4성 장군으로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하고 베트남공화국 주재 마지막 한국대사를 역임한 김영관 제독의 회고담이다. 부두에는 베트남 피난민이 밀려들어 태워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베트남판 흥남 부두였다. 우리 해군함대는 사이공 함락 직전, 적이 위협하고 있는 사이공 강을 헤치고 교민과 난민 1902명을 탈출시켜 남지나해로 무사히 빠져나왔다. 베트남이 공산화 직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김영관 대사가 전직 해군 참모총장으로서 진두지휘하다시피 하여, 우리 해군이 숨 막히는 작전을 펼쳐 교민을 구출한 작전에 참가한 장병들이 정식 '참전용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서류상으로 베트남전은 1973년에 끝났는데, 십자성작전은 그보다 2년 뒤라 작전 수행이지 '참전'이 아니라는 것이 국방부 입장이다. 하지만 베트남전의 연속선상에서 목숨을 걸고 교민과 난민들을 구출한 이들을 ‘참전용사’로 인정함이 마땅하다.

◼참전 용사에 공훈록 작성의 문제
베트남 참전 한국군 장병들의 공훈을 선양하기 위해서는 참전 장병들의 기록이 제대로 보존되어야 한다. 베트남에 파병된 장병의 전·사망자는 5099명이다. 이분들의 전사 또는 사망 당시의 상황과 그들의 활약 및 전·사망원인에 관한 기록을 모아 공훈 기록을 발간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작전 당시의 전사자 수가 맞지 않아 참전 장병들 사이에 갑론을박하고 있다. 현충원에 묻힌 전사자가 생존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참전 용사들의 기록을 세세히 남겨 후손에 넘겨줄 필요가 있다,

◼참전 용사의 명예선양과 예우 방안
베트남 참전 용사에 대한 형평성 있는 보상복지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한국은 정부수립 2년 만에 1950년 6·25전쟁을 겪었고,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와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정전협정 후에는 극심한 경제난으로 국가유공자들의 헌신과 희생에 대해 국가에서 합당한 예우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력을 고려한다면, 베트남 참전유공자들과 그 유족들에 대한 명예선양과 예우방안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베트남 참전 장병의 예우가 다른 종류의 유공자들과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 국가의 재정문제도 고려해야 될 것이나, 독립유공자나, 4·19 혁명 관련 유공자들의 금액과 비교하여 형평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고엽제후유(의)증 환자의 복지에 대한 종합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당시의 부상으로 인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분도 많고, 고엽제 환자는 2세 3세로 이어져 고통이 대물림되기도 한다. 고엽제후유(의)증 환자 및 후유증2세 환자는 고도장애, 중등도장애, 경도장애 모두 3가지로 단순화된 보상기준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보상금도 산업재해의 경우와 비교하면 3~5배 정도 낮은 수준으로 책정되어 있다. 특히, 고엽제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베트남 참전 유공자의 특성을 고려하여 고엽제 전문치료기관으로 특화할 필요성이 있다. 이를 위해 보훈병원을 종합병원 수준으로 향상시키고 우수한 의료진 확보와 의료장비의 첨단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남베트남이 북베트남의 무력에 의해 공산화 된 지 약 45년이 지나면서 베트남 전쟁과 한국군의 파병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관심 속에서 점차 잊혀가고 있다. 더구나 한국군 파병에 대하여 좌편향적인 잣대로 평가하려는 시도가 있고, 국가지도자의 발언이나 영화, 문학작품이 부정적인 시각을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다. 베트남 참전유공자의 자긍심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 무기의 현대화로 자주국방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일 것이다. 당시 세계 최하위 빈곤 국가였던 대한민국은 베트남전 파병을 통해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자주국방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베트남 참전이 한국사회에 가져다 준 긍정적 효과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하는 것은 베트남 참전유공자들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베트남 파병장병에 대한 명예선양과 합당한 예우는 국가정체성과 국가관 정립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공공주차장에 참전용사 전용 주차표시를 해서 주차의 편리를 배려하는 것도 참전용사들에게 국민들이 보내는 감사와 경의의 표시로 큰 자부심이 될 것이다.



 

 











 
안경환 전 조선대교수, 전 한국베트남학회회장   thongnha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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