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구 칼럼] 한일 국교정상화 55년, 한일정상회담과 전략대화를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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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입력 2020-06-1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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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구 교수]



역사적인 첫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20년이 되었던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운명의 주인답게 남북이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찾고 실천해” 가자고 했지만, 북한은 다음날 4·27 판문점선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흔적도 없이 폭파시켜버렸다.

6월 4일의 김여정 담화 이후 봇물 터지듯 발표된 일련의 담화에 나타난 문재인 정부에 대한 ‘현재’의 북한 인식은 “적은 역시 적이다” “확실하게 남조선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는 것이다. 이제 실망감과 분노를 삭이고 냉정하게 상황을 주시하면서 ‘얼마나 후회스럽고 괴로운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낄 때까지’ 연속적인 보복을 가하겠다는 북한의 공언에 대비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2019년의 한국 외교를 돌이켜보면 가장 아쉬움이 남는 것이 한일관계다. 2015년 12월의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사실상의 파기’가 도화선이 된 한일 간의 갈등은 무역과 안보문제로 확대됐다. 한국인 강제징용피해자에 대한 일본기업의 손해배상을 인정했던 대법원 판결과 사법부의 판결 존중을 이유로 방치해온 한국 정부의 태도에 불만을 품은 일본 정부는 7월과 8월에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폴리이미드 등 3품목을 포괄수출허가 대상에서 제외하고 수출관리 측면에서 우대조치를 취하는 ‘화이트 국가 리스트’(그룹 A)에서 한국을 제외해 ‘그룹 B’로 격하시켰다.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 일본과 군사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면서 한국은 8월 23일 일본과의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의 종료를 일본 측에 통보했으며, 9월에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정치적 목적에 의한 차별적인 조치라면서 세계무역기구(WTO)에 일본을 제소하고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를 개정해 일본을 ‘나’ 지역의 수출통제 기준을 적용하는 ‘가의2’ 지역으로 분류하는 상응조치를 취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소미아 종료 6시간 전인 11월 22일 저녁 6시 한일 양국은 수출관리 당국 간의 정책 대화 재개와 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 정지, WTO 제소 절차의 중지에 합의했다. 최악의 상황을 회피하려는 어정쩡한 타협이었다. 이후 양국은 양국관계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기본적 입장 차이를 좁히지는 못했다.

작년 12월 16일에 이어 올 3월 10일 두 번에 걸친 26시간의 마라톤 국장급 정책 대화가 양국 사이에 개최되었다. 한국 정부는 대외무역법을 개정해 비전략물자 수출 시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캐치올 규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으며, 산업통상자원부 직제를 개편해 수출통제에 관한 인력과 조직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는 성의를 보였다. 그렇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원상회복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으며, 일본에게 문제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한 한국 정부는 6월 2일 WTO 제소 절차를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안전보장상의 이유로 무역의 제한을 인정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21조에 의거한 것이지만, 이것은 수출제한을 금지하는 동 협정 제11조 제1항에 반하는 것이며 ‘그룹 A’ 같은 우대 조치는 가맹국 간의 차별적 대우를 금지하는 동 협정 제1조 제1항에 위반하는 것이라 한국은 이를 근거로 WTO에서 일본과 싸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WTO 제소 절차를 재개해도 코로나19로 WTO가 개점 휴업상태인데다 한일 간 WTO 분쟁은 국제적인 자유무역체제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어 바람직하지도 않다.

일본의 수출규제조치는 6월말의 오사카 G20 정상회의까지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문제에 관해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아 신뢰관계가 현저하게 훼손”된 상황에서 취해진 사실상의 대항조치였다. 따라서 강제징용문제에 관한 한국 정부의 전향적인 조치가 없는 한 일본의 수출규제조치의 원상회복도 기대하기 어렵다. 더구나 지난 6월 1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대법원 판결 이후 압류했던 일본기업의 국내자산 매각을 위한 공시송달 결정을 내려 압류 자산의 현금화가 가능해졌다. 기한인 8월 4일 이후 현금화가 실제로 이뤄진다면 일본 정부는 일본 내 한국 자산의 압류나 보복관세 등의 다양한 보복조치를 취할 것인데, 공교롭게도 지소미아의 연장 여부 결정 시기와 맞물려있다.

강제징용, 무역과 지소미아 등 양국 사이에 놓여있는 문제 어느 것 하나 최고지도자의 정치적 결단 없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양국 정상회담의 조기 개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55년 전인 1965년 6월 22일은 13월 8개월의 오랜 교섭 끝에 한일 양국이 국교정상화를 위해 기본조약과 부속협정에 서명한 날이다. 이 뜻깊은 날을 기해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전화회담을 하고 당면한 과제인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정보공유와 협력을 확인하면서 양국 간 현안의 외교적 해결 의지를 양국 국민에게 표명하면서 이해를 구해야 한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각국 정상들과 전화 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지만, 한일 정상 간 전화회담은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너무나도 부자연스런 일이다. 55년 전 한일을 왕래하는 사람은 연간 1만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2003년 하루 1만 명 시대가 열렸으며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던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1천만 명을 넘었다.

동맹국 미국과 최대 교역국가 중국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한일의 협력 없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냉전시대인 1969년 11월 닉슨·사토 미일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안전이 일본의 안전에 긴요하다는 소위 ‘한국조항’이 확인되었지만, 이제는 한일 정상이 한반도의 평화가 일본의 평화에 긴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상호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양국 국가전략의 핵심에 관한 전략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중국과 북한의 군사적 능력과 의도에 대해서도 협의해야 한다.

혐한과 반일을 초월해 양국 국민이 감정의 앙금 없이 마음과 마음이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와 리더십이 해야 할 막중한 책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냇물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이웃나라(一衣帶水)로 불리는 두 중견국가가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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