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랜드마크②]대한민국 공연예술의 중심지…세종문화회관

박기람 기자입력 : 2020-06-09 06:00
박정희 전 대통령 각별한 관심…명칭도 지어 만든 하나의 '예술 작품' 민주주의의 바로미터, 광화문광장…'전면 보행화' 등 꾸준한 진화
근래 한국은 역사상 최고의 문화 부흥기를 누리고 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된 남자 아이돌 BTS(방탄소년단), 베트남의 축구 영웅 '쌀딩크' 박항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등 국가대표 문화 외교관들의 활약 덕이다.

계의 관심이 한국으로 쏠리는 가운데, 한국의 상징적인 랜드마크 상당수를 보유한 서울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이에 서울의 랜드마크를 대표하는 건축물 50선을 조명해본다.
 

[세종문화회관 주경 ]

◆한국 공연예술계 40년 역사의 결정체…대표 문화예술기관이자 예술품으로 재탄생

광화문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가 설립한 기관으로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예술기관이다. 세계 유수의 공연장으로 인정받는 한국 공연예술의 등용문이자 국제공연예술의 유일한 통로였고 70~80년대에는 한국 순수예술의 요람이다.

1961년 우남회관으로 출발한 회관은 1972년 화재로 소실된 시민회관의 뒤를 이어 1978년 4월 14일 개관했다. 불탄 자리에 더 늠름한 새 시민회관을 건립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세종문화회관 설계가 시작됐다. 

설계 경기 과정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운영 규정과 당선자에서 실시설계권을 부여하도록 했다. 이는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의 설계 경기에서 적용되던 내용을 한국에 도입한 것인데, 결국 새 시민회관 설계 경기는 이 규정에 의해 운영된 최초의 설계경기라고 볼 수 있다. 

심사는 예비심사, 본심사, 최종심사 3단계에 걸쳐 엄덕문건축연구소의 설계가 최종 당선됐다. 설계안은 대강당과 소강당을 사이에 두고 아늑한 광장을 배치했다는 점, 추녀의 열주형식이 한국의 전통적 표현을 재해석하였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당선된 설계는 대림산업이 시공해 완공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건물이 건축되는 과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설계자 엄덕문에 따르면 주차장 문제 등은 물론이고 한국적 전통을 지니면서 현대적 기능을 갖춘 기념관적인 건물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진통이 있었다. 

특히 간섭하는 사람이 많고 요구하는 것이 많아 당초에 예정했던 건물 연면적이 점점 더 늘어났다. 당초 설계에서 1만 평으로 예정됐으나, 착공할 때에는 3만9669.6㎡(1만2000평)으로 준공됐을 때는 5만2892.8㎡(1만6000평)까지 늘어났다. 

회관 건물은 1978년 4월 14일 오전에 준공식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여섯 개의 웅장한 화강석 돌기둥을 가운데 거느리고 이 건물의 상징으로 등장한 2개의 비천상은 좌우에서 선녀가 생황과 피리를 불며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신라종의 비천상에서 테마를 얻고 한국의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향한 염원을 현대 조형감각에 따라 표출한 김영중의 작품이다. 돌계단을 올라 중앙광장으로 들어서면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연상케 하는 입체 조각이 있다. 남녀가 합창하는 모습의 이 조각은 김찬식이 '기쁨'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졌다.

기쁨의 조각을 지나고 대강당에 들어서면 웅장한 무대막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높이 13m, 너비 28m의 대강당 무대막의 무게만 해도 2.5t이나 되며 영생불사의 십장생도와 포도·오리·연꽃 등이 원색으로 수놓아져 있다. 작품의 주제는 꿈과 현실로서 서양화가 권옥연이 디자인했으며 500여 가지 색의 실을 써서 한 폭으로 짜냈다.

또한 당시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 로열로비에 이르면 백색 대리석 벽면에 조각된 십장생도도 만날 수 있었다. 거북이 입에서 안개를 뿜어대 해를 반쯤 가린 무릉도원에 사슴과 학이 짝지어 노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적인 민화를 조각한 전뢰진의 작품이다.

대회의장 로비 벽에 그려진 가로 10.2m, 세로 2.4m의 유화는 서양화가 변종하가 영광과 평화를 주제로 만든 대작 벽화다. 이 같은 미술 작품을 갖추기 위해서 들인 예산만도 엄청난 액수에 달한다. 건물에는 221억원이 투입됐다. 

한편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세종문화회관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회관의 명칭은 시민회관의 연장선에서 잠정적으로 서울문화회관이라는 안으로 계획되기도 했으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변 문화계인사들에게 새 회관의 명칭을 자문 받아 탄생했다.

또한 준공식 당시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데리고 참석해 준공 테이프를 끊은 후 구자춘 전 서울시장의 안내를 받아 대강당 왼쪽에 세운 '문화예술의 전당'이라는 휘호를 제막하기도 했다.
 

[사진=박기람 기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바로미터, 광화문광장

세종문화회관 앞에는 3.1 운동부터 정권 심판 촛불 집회, '붉은 악마' 거리응원이 일어난 대표적인 곳, 바로 광화문광장이 있다. 광화문 앞 세종대로 한가운데에 있는 광화문광장은 조선 시대부터 600여 년 역사를 지닌 서울의 상징 중 한 곳이자 서울의 가장 대표적인 사진 촬영 명소다.

1395년 조선왕조의 정궁 경복궁 앞에 관아를 배치하고 큰길을 낸 것이 광화문광장의 전신인 '육조거리'다. 일제강점기에는 '광화문통'으로 이름이 변경됐다가 오늘날의 세종대로가 되었다.

현재 광장에는 서울의 역사를 바닥 돌에 기록한 '역사물길'을 비롯해 '분수 12·23', '해치광장' 등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또한 서울 출신의 위인들인 세종대왕과 이순신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배경으로는 경복궁과 북악산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펼쳐져 있다. 

현재까지도 광화문광장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월 광장의 전면 보행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안을 발표했다. 현재 왕복 10차선인 광화문 광장 변 세종대로를 왕복 6차선으로 줄인다는 방침이다.

시민 의견을 고려하면 세종문화회관 앞쪽인 광화문 광장 서 측을 광장에 편입시키고 동 측에 도로를 놓는 방안이 유력하지만, 시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추가로 받아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세종대로와 사직로 등 광화문을 둘러싼 도로 대부분을 광화문 광장에 편입시키겠다는 계획은 무산됐다. 시민들의 의견에 따라 경복궁 앞 사직로를 유지된다.

새 광장의 콘셉트는 '시민중심, 대한민국 대표공간'으로 정했다. 확장되는 광장 일부는 광장의 정체성을 유지하되 꽃과 향기, 숲과 그늘, 아름다운 풍경과 시민의 다양한 활동이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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