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성교육에 다윈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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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과학 작가
입력 2020-05-17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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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性)이 인간의 몸과 마음을 만들었다“는 게 진화론적 시각

  • 성교육은 인간의 성은 왜 이런 모습일까 하는 Why를 가르치지 않는다

  • 성선택이라는 진화론의 시각은 150년 전 다윈이 연구 시작

  • “성이 존재의 핵심이며, 성적 판타지는 그 수단일뿐“이라는 점을 가르쳤으면,

  • 남자의 성과 여자의 성이 왜 다른지를 알면, 다른 동물과 비교하면 성에 대한 시선과 이해가 깊어진다

 


영국작가 힐러리 맨틀은 헨리8세 시대를 다룬 책으로 맨부커 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울프홀>은 2009년에, 후속작 <‘튜더스, 앤 블린의 몰락>은 2011년에 영국 최고의 문학상을 거머쥐었다. 헨리8세(재위 1509~1547)는 영국사에서 ‘유전자 복제’ 건으로 유명하다. 영화 ‘천일의 앤’ 주인공인 앤 블린을 포함해 여인 8명과 결혼하고, 그중 두 여인의 목을 런던탑에서 잘랐다. 몇 년 전 런던에 여행 갔을 때 보니 런던탑 안뜰의 앤 블린이 처형당한 장소는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울프홀>에서 권력2인자인 추기경(울지)은 그의 고민을 자신의 측근(토머스 크롬웰)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겐 아들이 하나 있어. 신은 나를 용서해주셨어. 육신의 나약함 탓이라고. 그런데 왕 혼자만 아들이 없어, 누구 책임일까?” 헨리8세가 원하는 아들 복제 건을 성사시키기 위해 권력 실세들은 부심했다. 헨리 튜더는 결국 자신의 ‘아들 복사’에 실패했고, 딸들만 낳았다. 엘리자베스1세 여왕이 그 딸 중의 한 명이다.

헨리 8세의 ‘유전자 복사’ 문제는 매우 요란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가 예외적인 남자가 아니라는 걸 안다. 동서양 권력자들의 ‘유전자 복사’ 욕망은 수없이 반복되고 변주되어온 이야기다. 남자의 성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그건 지금도 그렇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시대에도 남자의 성적 행동이 일으키는 사회적 문제는 수그러질 줄 모른다. 권위주의 시대가 가면서 권력자의 성 문제는 잘 안보이나, 보통 사람, 보통 남자의 성 문제가 도드라져 보인다고 할까? n번방이라는 걸 만들어 불법적인 행위로 큰 파문을 일으키는 게 한 예다. 그게 아니더라도 수없이 많은 사건이 있다. 헤어지겠다는 애인이나 전처를 쫒아가서 소동을 부리고, 칼부림하는 건 남자다. 여자가 이성 문제 때문에 칼부림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왜 그럴까? 여자의 성은 사회적 문제까지 일으키는 경우가 매우 드문데, 남자는 왜 이렇게 뒤가 깔끔하지 못한 것일까?

학교 성교육 교재의 이에 대한 답은 “남자의 성은 충동적이다“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성교육 관련 교사용 지침서 등 책을 몇 권 보았는데, 다들 이 정도 표현에서 그친다. 추가 설명이 없다. 한 학교 성교육 교재가 말하는 남자와 여성의 성 차이 표현을 옮겨 보면 이렇다.

“남자; 친밀감이나 사랑의 감정이 없어도 스킨십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낌.
여자: 대화나 분위기 등 감정을 주고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함, 친밀감이 생긴 후 스킨십에 대한 욕구가 생김.“

이 중에서 ’충동적인 남자의 성‘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겠다. 남자라는 성의 역사를 몸으로 겪으며 내 자신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남자의 성이 충동적인 이유에 대해 학교 성교육은 말이 없다. 학교 성교육은 많은 정보를 담아, 많은 청소년이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기 신체와 마음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넘치는 정보를 맥을 잡아서 추스르고 정리해 보여주는 관점이랄까, 왜 이런 남녀 간 성적 행동이 있는지 즉 WHY에 대한 설명이 없다. 달리 말하면 학교 성교육에는 진화의 관점이 없고, 학교 성교육에 찰스 다윈이 없다. 오랜 진화의 역사가 성과 관련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빚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설명이 없다. 진화 관점의 성에 대한 이해가 왜 필요한가, 하고 물을 수 있다. 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Why’(왜)가 ‘How’(어떻게)보다 더 심오한 걸 드러낸다. 현재 인간 성의 모습이 이러이러하다는 ‘How’ 수준의 이해 너머에, Why의 세계가 있다. 인간 성의 모습이 왜 이런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성이 일으키는 갈등과 사회적 문제 이해에 새로운 차원이 열릴 수 있다.

성이 진화의 역사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찰스 다윈이 연구를 시작됐다. 다윈 책에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라고 있다. <종의 기원> <비글호항해기>와 함께 다윈 3부작으로 얘기되는 책이다. <종의 기원> 출간 12년 후인 1871년에 나왔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는 종의 분화 수단으로 자연선택론을 얘기했고, ‘인간의 유래’에서는 자연선택 외에 ‘성선택’이라는 게 있음을 밝혔다. 자연선택과 성선택의 차이는, 자연선택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고 성선택은 번식을 위한 투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다윈은 “수컷의 큰 체형, 힘, 호전성, 경쟁자를 공격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무기들, 화려한 색깔과 갖가지 장식들, 노래를 부르는 능력 같은 특징“을 성선택의 결과라고 책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서 말했다. 다윈은 공작 수컷의 꼬리는 왜 이렇게 길고, 장식은 요란한 것일까를 오래 고민했다. 몸에 장식을 치렁치렁하고 다닐 경우, 포식자를 만나면 위험하다. 거치장스런 장식 때문에 포식자로부터 달아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공작 수컷은 왜 이렇게 자신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장식을 갖게 되었을까를 다윈은 궁리했고, ‘성선택’이 그 이유라는 걸 떠올렸다. 암컷으로부터 짝짓기 파트너로 선택되기 위해 그는 ‘자연선택’ 원리에는 반하는 것으로 보이는 몸 치장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윈은 나의 몸집이 아내에 비해 왜 큰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몸집이 아내에 비해 크다. 남자가 평균적으로 여자보다 크다. 그건 부부싸움이 일어날 경우 내가 아내에 제압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자연이 만들어놓은 장치가 아니다. 나의 키가 아내보다 큰 건, 다른 남자와의 경쟁의 산물이다.

여자의 성은 귀중한 자원이고 짝짓기를 하려면 남자는 여자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즉 짝짓기에 성공하기 위해서 수컷은 다른 수컷과 격렬한 번식 경쟁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경쟁적으로 덩치를 키웠다. 어느 순간 암컷과 몸집을 비교해 보니, 큰 차이가 난 걸 알게 됐다. 바다사자는 이 특징이 뚜렷이 드러나는 사례로 많이 인용된다. 큰바다사자의 몸무게는 수컷이 1000㎏이고, 암컷은 그 절반인 500㎏이다. 암수의 몸집 차이를 만든 건 번식경쟁이다. 번식 경쟁을 달리 말하면 성이다. 성이 이토록 수컷의 몸을 진화의 역사에서 놀라울 정도로 빚어낸 것이다. 인간 종도 동물이고, 동물계의 성 선택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의 경우도 성적 행동의 변화 역사가 드라마틱하다. 수백만년 전에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를 비교하면 남녀간 몸집 차이가 달라졌다. 인간은 몸집 크기 차이가 줄어드는 쪽으로 진화해왔다. 이는 인간의 성이 변해왔음을 반영한다. 파트너를 얻기 위한 경쟁의 양상에서 근력이 중요성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다. 이 변화는 진행형이고, 남녀간 몸집 크기 격차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주변을 보라, 큰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다윈 사후 100년도 더 되어 미국에서 진화심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가 등장했다. 데이비드 버스는 진화심리학의 산파 중 한 사람이다. 그의 1994년 책 <욕망의 진화>에서 몸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도 진화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다윈은 몸의 진화를 성선택으로 설명했으나, 이제 진화심리학자는 인간의 마음도 성이 빚어낸 것이라고 말한다. ‘욕망의 진화’는 진화심리학의 시선으로 인간의 성을 들여다본 현대의 고전이다. 이 책이 나온 뒤 많은 과학작가가 인간 성을 진화의 시선으로 들여다봤다. ‘붉은 여왕’(리트 매들리), ‘제3의 침팬지’(제레드 다이아먼드), ‘개미와 공작’(헬레나 크로닌), ‘진화와 인간행동’(존 카트라이트)이 그런 책 중 일부다. 이 책들을 관통하는 문제 의식은 데이비드 버스(오스틴-텍사스대학 교수)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의 짝짓기가 지닌 모순적인 속성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손실은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못 크다.”

데이비드 버스가 남자의 성을 얘기하면서 이런 문장을 썼다. “남자가 왜 결혼하는지는 어려운 문제다”. 인간의 일부일처제라는 결혼제도가 왜 출현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 이 문장은 일반인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남자가 왜 결혼하다니, 어른이 되면 결혼하는 것이지, 무슨 소리야?

성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안이고, 그래서 성에 무슨 다른 이야기가 있을까 하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늘상 하는 얘기지만, 익숙한 문제를 낯선 시선으로 보면 거기에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는 경우가 있다. 성이 바로 그런 숨겨진 보물창고다. 내가 보기에 우리는 성을 남녀 간 섹스의 문제로만 국한해서 보고,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행위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다. 진화의 시선에서 보면, 성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은 인간의 존재 이유이고 살아있는 목적이다. 성을 진화의 시선으로 보면, 내가 사는 이유가 명료하게 보인다. 개체 보존과 번식이라는 두 가지가 삶의 핵심이라는 걸 알게 된다.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한다면 자연은 ‘번식’에 우위를 둔다. 생명체는 ‘복사기’다. 인간은 ‘복사기’이고, 우리는 ‘인간 복사기’다. 그리고 이제 복사를 마쳤으니, 나는 ‘개체 보존’을 할 이유가 없다. 복사 이후의 삶은 보너스로 주어진 시간이다. 인간에게만 특별히 주어진 혜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가까운 침팬지만 해도, 번식을 하지 못하면 바로 죽는다. 번식 능력이 없는 고령자로 보내는 시기가 침팬지는 거의 없거나 매우 짧다.

학교 성교육 교재에 이런 문장이 있다. “생식기는 쾌락기관인 동시에 생명의 기관이다.” 진화의 시선으로 보면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이 고쳐 쓸 수 있다. “생식기는 생명 기관이고, 그 목적을 위해 쾌락기관이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무엇이겠는가? 그건 남녀가 성적 결합을 해야, 번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번식 목적으로 성적인 결합을 해야 하는데, 그걸 의무화하거나 강제화할 수단은 없다. 그래서 자연이 만든 인센티브가 ‘쾌락’이다.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40년 전에 내놓은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철학과 인문학 분야는 아직도 다윈이 존재한 적조차 없었던 것처럼 가르친다”라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한국의 성교육 역시 다윈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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