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돈키호테를 꿈꾸는 청년 정치인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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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 부대변인)
입력 2020-04-0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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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취재기자 시절 권력자를 상대로 묻는 건 통쾌했다. 신분에 주눅 들지 않고 물을 수 있기에 그랬다. 기자는 국민을 대신해 묻는 게 일상이다. 반면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신해 정치한다. 기자가 기사로 말한다면, 국회의원은 입법으로 존재한다. 국회가 제 기능을 하려면 지역·계층·세대를 골고루 대표하는 건 상식에 속한다. 기계적 균형까지는 아니라도 상식선에서 인정되는 균형이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특정 계층과 세대를 과잉 대표하고 있다. 20대 국회는 물론 21대 국회도 그런 조짐이 보인다. 시대 흐름에서 비켜선 곳이 정치영역이다.

20대 국회에서 직업 정치인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직업군은 무엇일까. 판사·검사·변호사로 대표되는 법조인이다. 무려 51명으로 17%를 차지한다. 국회의원 6명 중 1명꼴이다. 전체 인구에서 법조인은 0.06%(3만4709명)이다. 그러니 상식선을 훌쩍 뛰어넘었다. 여기에 3개 직업군을 더하면 불균형은 도드라진다. 고위 관료 29명, 교수 29명, 언론인 23명을 포함하면 4개 직업군에서 국회 의석 44%를 과점하고 있다. 소수 엘리트가 기득권을 연장하는 구조다. 국회는 법을 잘 아는 정치인도 필요하지만 대표성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함은 당연하다.

세대 간 불균형은 훨씬 심각하다. 20대 국회에서 20‧30대 의원은 단 3명(1%)이다. 김해영(더불어민주당), 신보라(미래통합당) 2명으로 시작해, 정은혜(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비례대표를 승계했다. 전체 유권자 가운데 40세 미만은 36%다. 그러니 애초부터 1%가 36%를 대표하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우리 국회가 얼마나 노쇠한지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확연하다. 덴마크는 20·30대 의원이 41%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 국회에 대입하면 20‧30대 의원은 120명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유럽은 30대 지도자들이 허다하다.

2017년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되던 해 마크롱은 39세였다. 또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지난해 34세로 최연소 총리에 올랐다. 세바스티안 쿠르츠 또한 30세에 당선돼 3년째 오스트리아 총리직을 수행 중이다. 뉴질랜드 저신다 아던 총리도 37세에 취임했다. 40대 지도자도 수두룩하다. 캐나다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43세에 취임했다. 아이슬란드, 그리스, 폴란드, 스페인도 40대가 국가 경영을 맡고 있다. 반면 우리 국회는 역동성은 떨어지고 ‘꼰대 국회’라는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왜 우리는 젊은 정치인, 젊은 지도자를 만나기 어려울까.

이런 물음은 21대 국회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민주당, 통합당, 정의당 공천 결과에서 가늠된다. 3당에서 공천한 20·30대 지역구 후보는 28명이다. 민주당 7명, 통합당 12명, 정의당이 9명이다. △민주당은 장경태(36), 김남국(37), 오영환(32), 이소영(35), 장철민(36), 최지은(39), 정다은(33) 후보가 나섰다. △또 통합당은 김병민(38), 김소연(38), 신보라(37), 황규원(37), 배현진(36), 이준석(36), 김수민(33), 천하람(33), 김재섭(32), 김용식(32), 박진호(30), 김용태(29) 후보다. △정의당은 이남수(29), 정혜연(30), 권중도(35), 김지수(26), 이호영(38), 정재민(39), 박예휘(27), 이병진(36), 장형진(29)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대부분 험지라서 상황은 여의치 않다. 또 당선 안정권에 든 비례후보도 많지 않다. 3당 비례대표 후보 115명 가운데 청년은 10명도 안 된다.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포함해 몇 명이나 당선될까. 10명만 당선돼도 20대 국회에 비해 3배 넘는 청년 정치 세력이 진입하는 셈이다. 그러나 녹록지 않다. 우선은 젊은 정치인을 우습게 아는 유권자 성향이 걸림돌이다. 입으로는 정치 개혁을 외치면서도 대부분 경륜과 중량감을 따진다. 결국 청년 정치인을 배출하는 열쇠는 바로 청년들이 쥐고 있다. 청년을 대변하는 정치 환경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21대 총선에서 18~39세 유권자는 1495만명으로 34%다. 무시하기 어려운 세력이다. 젊은 정치인이 국회에 진출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청년 세대에게 이익이 된다. 청년 정치인은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바꾸는 원동력이다. 나아가 고질화된 한국정치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젊은 정치인은 탄력성이 높다. 당파적 이익에 매몰돼 반목하고 대결하는 대신 대화와 소통에 더 익숙하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3050클럽’에 가입했다. 세계 7번째다. 그러나 누구도 그만큼 행복해졌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양극화와 불평등은 심화됐다. 상위 10%가 자산 92%를 차지한 반면 하위 50%는 2%에 그친다. OECD 자살률 1위, 최저 출산율은 그 결과다. 중앙대 김누리 교수는 “과거에는 기득권층이 돈과 권력을 독점했지만 지금은 기회까지 독점하는 승자독식 사회가 됐다”고 진단했다. 극단적인 경쟁과 학벌사회에서 비롯된 우울한 현실이다. 청년 세대는 길을 잃었다. 절망에서 벗어나는 길은 청년 세대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을 만드는 것이다.

누더기 선거법 때문에 정치를 외면하는 청년 무당층이 적지 않다. 적어도 청년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선거 혁명에 나설 일이다. 이 당도 저 당도 싫다면 청년 정치인을 주목하는 게 최선이다. 참신한 생각과 다양한 가치관을 지닌 청년 정치인이 해답이 될 수 있다. 서울 동대문을에 출마한 민주당 장경태 후보는 “국회의원 선거는 상전이 아닌 일꾼을 뽑는 것이다. 청년들이 평범한 희망과 꿈을 꿀 수 있는 세상과 정치를 만들어 보겠다”고 출마 변을 밝혔다. 모든 청년 정치인들이 어떤 정치를 지향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돈키호테를 꿈꾸는 청년 정치인들이 한국 정치를 바꾸겠다고 길을 나섰다. 이제 청년 세대는 그들을 돕는 산초로서 답할 때다. 한국 정치에 희망을 가져올 돈키호테를 기대하는 21대 총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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