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의 파르헤지아]코로나의 역설과 실버라이닝 현상

이상국 논설실장입력 : 2020-03-29 15:34

[흰구름.]



모든 먹구름의 뒷모습은 흰구름이다

오래전 비행기를 처음 탔을 때의 놀라움을 잊지 못한다. 창가에 앉아 작은 창을 열었을 때, 눈에 들어오던 눈부시도록 푸른 하늘과 올라갈수록 작아지는 마을과 도시와 나라들.

무엇보다 놀랐던 건 아름다운 구름이었다. 밑에서 올려다보던 구름도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름은 그보다 더 포근하고 아늑해보였다. 물방울이 저토록 고운 빛의 향연을 펼쳐낸다는 건 언제나 기적 같다.

그때 그 구름 융단을 보며, 문득 저기라면 그냥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날의 과장스런 충동이었을까. 조장(鳥葬), 풍장(風葬), 수목장(樹木葬) 따위의 지상의 장례 대신 '운장(雲葬)'을 치러도 좋겠다는 다소 치기어린 꿈같은 걸 그날 노트에 적던 기억이 난다.

그때 보았던 흰구름 융단은 햇살이 아무 장애물 없이 구름의 등 뒤를 비추면서 생겨난 순백의 빛이었다. 그런데 내가 여객기에서 보고있던 구름의 뒷쪽,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서 보고 있는 구름은 어땠을까. 먹구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구름이 융단처럼 많이 모이려면 우선 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워야할 것이고, 그건 대개 흐린 날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상 먹구름들의 비밀은 이것이다. 앞쪽은 시커멓지만 뒷쪽에는 은빛의 수평선같은 것이 펼쳐져 있다는 것. 이 은빛 수평선이 '실버라이닝(silver lining)'이다. 흰구름일 때도 물론 실버라이닝이지만, 먹구름일 때도 실버라이닝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아무리 흐린 날씨에도 여전히 그를 비추는 실버라이닝이 존재한다는 점은 더욱 중요하다.

절망은, 희망의 한쪽면이 흐려진 것 뿐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란 소설이 있다. 미국작가 매슈 퀵의 2008년작으로 2012년 영화로도 나왔다. 실의에 빠진 두 남녀가 먹구름의 이면을 찾아내 다시 사랑을 찾는 스토리다.

절망은 희망이 끝난 상황이 아니라, 희망의 한쪽면이 흐려져 있는 것이며, 그 등뒤에는 한결같은 햇살이 비추고 있다는 진실. 먹구름이 드리워질수록 더욱 아름다운 실버라이닝이 등뒤에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는 것. 이거 참 놀랍고도 아름다운 통찰이다. 영어 격언에도 있는 말이다.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모든 구름의 뒤편에는 은빛 수평선이 있다. (수평선이 아니라 운평선(雲平線)이라 하는 게 정확할 거 같다.)

코로나19로 세계가 신음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어쩔 수 없이 격리와 거리두기를 해야하는 상황 때문에 '전염병의 역설'이 생겨난다. 우선 공장이 덜 돌아가고 중국 쪽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도 줄다 보니 공기가 깨끗해졌다. 이 정도로 깨끗한 공기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일은 평소라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코로나19 속에서 실버라이닝을 찾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흙탕공방이 예고된 시점에, 전염병은 정치를 조금은 조심스럽고 신중한 모드로 돌려놓은 것 같다. 추경도 모처럼 이의없이 통과시키는 걸 보면 코로나의 힘이 놀랍다. 한국은 이 와중에 의사와 의료시스템, 시민성숙도의 측면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 대한 '신뢰'가 갑작스레 높아진 것이다. 우리 민족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지혜와 의지가 남다르다는 걸, 뜻밖의 기회에 세상에 알린 셈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모든 산업체계 전반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 비대면(非對面) 스마트 사회'를 앞당겨 경험해봄으로써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정확히 하는 계기도 되었다. 또 기업들은 글로벌 유통망에 대해 일대 재점검을 하는 기회가 됐다. 세계경제가 동시에 맞물리고 엮여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영감과 통찰을 얻은 기업인들도 많을 것이다.

또 그간 주목받기 쉽지 않았던 원격의료와 원격교육, 그리고 원격예배와 원격공연을 '임상(臨床) 실험'처럼 눈앞에서 보여줬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많은 이들은 숙고하게 될 것이다. 혼선과 반발, 혹은 차질까지도, 향후 이 관련 영역들의 진화의 길을 찾아내는 계기를 만들 것이다.

[사진 = 연합뉴스]

지구를 겸허하게 만든 '코로나 수업'

그보다 더 극적인, 코로나의 역설적 광채(光彩)는 21세기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이 자신의 삶과 죽음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만든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저마다 지위의 높낮이나 다른 사회적 조건에 상관없이 누구나 언제든지 죽음을 맞을 수 있는 평등한 존재라는 것을 이보다 더 실감나게 공부할 수는 없다.

거기에 이 전염병의 근본 원인이 기술 진보를 업고 인간이 자행해온 광범위한 환경파괴에 있으며, 이것은 우리가 부른 재앙이기에 이후에 그 파괴를 멈추지 않으면 더욱 큰 시련으로 닥칠 것이라는 '묵시록' 또한 받아들게 되었다.

모두가 그 기한을 알 수 없는 '시한부 삶'을 살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오히려 상황에 겸허해지고 작은 일에 감사하며 더 고통받는 타인을 위해 팔을 걷을 수 있는 '낮은 자아'를 지닐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성찰은 코로나 이후의 세상을 조금 더 성숙한 인류들로 채우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보태보는 것이다.

아직은 지구촌의 전염병 확산이 멈추지 않고 있고, 주위에서 들려오는 염려스런 소식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지만 지금껏 해온 지혜로움으로 고난을 떨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태양은 우리 등뒤에 언제나 가득하다. 우리가 이토록 쩔쩔 맬 때조차도. 먹구름 뒤에 그 환한 은빛 수평선처럼.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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