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나의 추키카마타

김유주 닉스 대표입력 : 2020-03-19 00:02
-김유주 닉스 대표
1년 중 이맘때면 생각나는 책과 일화가 있다. 한때 젊은이들 사이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리더가 있었다. 정치색을 떠나, 그의 삶에 잠시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체 게바라'로 더 잘 알려진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느라(이하 체)‘. 서방세계에는 게릴라 지도자, 주동적 급진 테러리스트, 쿠바 산업부 장관, 세기의 영웅 등 여러 가지로 불렸던 인물이다. 목숨까지 앗아갈 만한 심한 천식을 앓았던 그는 의사가 되고 싶었고, 젊은 날 대부분을 그가 원하던 의사가 되기 위해 학과 수업에 매진했다. 그런 체가 험한 혁명가로서의 삶을 결단하고 목숨까지 바치게 됐던 것은 라틴아메리카 여행에서의 체험 때문이었다.

체는 대학 시절 친구이자 형인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500cc 모터사이클에 몸을 싣고 장장 8개월간 남미 대륙을 횡단한다. 처음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흥미와 기대로 가득 찬 눈들이 라틴아메리카의 절망적인 민중의 삶을 목도하면서,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마음의 창으로 바뀐다. 칠레의 한 구리 광산, 추키카마타에서 체는 그전의 삶에서 보지 못했던 불결한 위생환경, 밀집된 주거, 그 안의 삶을 사는 노동자를 목격하게 된다. 1달러라는 적은 돈에 하루의 모든 시간을 뜨거운 광산 속에 던져넣는 인디오들, 그에 대비되는 사용자들의 사치와 방종, 그 참을 수 없는 경험이 병약한 천식환자를 쿠바의 바다를 넘고 볼리비아의 정글을 헤치는 강인한 군인이 되게끔 채찍질한다.

체의 평전 중 추키카마타의 장면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젊은 시절 나의 기억과 교차해 다가왔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을 체의 것과 빗댈 수는 없지만 말이다. 군복무시절 2주간의 봉사활동 명령을 받은 적이 있다. 독거 노인분들에게 나눠 드릴 도시락을 운반하는 것이 임무였다. 며칠 동안은 할머님, 할아버님 댁에 들어가지 않고 다른 봉사자들이 도시락을 전달하고 나오기까지 문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봉사활동의 전부였다. 그리고 어느 날, 한 봉사자의 권유로 직접 어르신께 도시락을 전해드리기 위해 집을 방문했다. 순간 잊지 못할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자 보이는 단층 건물, 그 안으로 보이는 수없는 문들, 몇 평 안 되는, 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방들이 일렬로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마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친 들판 같은 곳에 공동화장실이 있었고. 냉·난방기가 없는 방들은 온도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무겁게만 느껴졌다. 다른 한쪽에서 당뇨병으로 몸이 부어 눈뜨기조차 버거운 할머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방 안으로 보였던 인슐린 주사기들이 가슴을 무겁게 누르기 시작했다.

제대 후 한 할머님과 결연을 맺었고, 6년 동안 방문하며 봉사활동을 했다. 그런 할머님께서 어느 날은 귀가 편찮으신 적이 있었다. 할머님을 모시고 인근의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니었지만 갑작스럽게 아프시면 어떡하나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그 외에는, 여든을 훨씬 넘기신 나이셨지만, 다른 건강 이상은 없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곧잘 젊은 시절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는데, 그럴 때면 소녀처럼 미소 지으시던 것이 생각난다.

직장생활로 잠시 할머님 방문이 소홀해졌을 때, 나는 할머님께서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한동안 눈물을 삼키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든 방문해 초인종을 누르면, 웃으시면서 문을 열어주실 것만 같은 감정이 지워지지 않았다. 한참이 지났지만, 어제처럼 생각난다.

이맘때가 되면, 그때 기억이 난다. 체는 젊은 시절 경험을 통해 온 인생을 걸었지만, 나는 짧은 시간의 아주 작은 헌신만을 한 것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인생을 바꿀 만한 결단과 도전, 그 삶을 지금도 꿈꾼다.
 

[김유주 닉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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