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흔들리는 안전자산] ②저성장·저금리에 짓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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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국제경제팀 팀장
입력 2020-02-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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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정건전화 위한 증세 경제성장률에 큰 타격

  • 저금리 탓 투자금 이탈하며 엔화 수요를 줄어

일본 엔화가 장기간 안전자산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 및 탄탄한 재정 덕분이었다. 그러나 7년에 거친 아베 노믹스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무역전쟁과 내수 부진의 지속 등을 이유로 경기침체 우려가 지속되자 엔화의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일본은행(BOJ)가 경기부양을 위해 장기간 펼친 초저금리 정책도 엔화의 매력을 떨어뜨리면서 국제시장에서 엔화의 가치는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성장과 저금리가 엔화의 위상을 흔드는 가운데 터진 코로나19사태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엔화는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악화하는 경제지표에 글로벌 투자자들도 돌아서 

엔화는 글로벌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질 때마다 투자자들이 찾는 대표적 안전자산이었다. 지난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결정됐을 당시 엔·달러 환율은 7%가 넘게 급등했다. 한때 달러당 엔화의 환율은 100엔 선마저 깨졌다. 이는 엔화의 가치가 달러보다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중무역전쟁이 진행되면서 위기상황 때 엔화의 상승폭은 예전보다 훨씬 낮아졌다. 글로벌 무역의 위축은 일본 경제에도 직격탄이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는 그동안 내수의 부진을 수출로 만회해오던 차였다. 일본 재무성이 19일 발표한 올 1월 무역통계(속보치)에 따르면 일본의 무역적자는 1조3126억엔을 기록했다. 3개월 연속 적자다. 수출은 14개월 연속 감소했다.

사사키 토오루 JP모건체이스 일본시장 분석가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을 받을 만한 일이 발생해도 예전만큼 엔화가 급등하지는 않는 것은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늘어난 재정적자도 엔화엔 악재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0월 재정건전화를 명목으로 소비세율을 높였다. 그러나 증세로 인한 소비감소는 경제에 바로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4분기 일본 경제성장률은 연율로 6.7% 하락하면서, 지난 2014년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경제성장률이 1분기에도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기술적 경기침체'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졌다. 

로보뱅크는 보고서를 통해 "엔에 대한 시장의 태도가 변한 것은 코로나19의 근원지인 중국과 일본이 매우 인접해 있다는 점과 일본이 경기침체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부진한 경제지표는 외환시장에서 엔화의 가격을 끌어내렸고, 4분기 경제성장률이 발표된 이번주에만 엔·달러 환율은 2%나 올랐다. 

BNP파리바는 일본의 중국 수출의존도가 지나치게 커지면서 안전자산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당분간 금을 비롯해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과 엔화 가격이 따로 움직이는 '디커플링' 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저금리로 빠져나가는 투자금···엔 캐리 인기도 시들 
 
장기간 이어진 일본의 저금리는 엔화 수요 감소를 불러왔다. 일본은 경기부양을 위해 지난 2016년부터 기준금리를 -0.1%대로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일본 내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일본의 은행 및 연금기관 등은 더 높은 수익을 찾아 국외로 투자처를 옮기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지적했다. 

저출산·고령화로 내수가 위축되자 일본 기업들도 국외로 나가고 있다. 일본은 최근 국외 기업들을 인수·합병하면서 활로를 찾고 있다. 일본 기업의 국외투자 증가는 다른 통화의 수요를 늘린다. 이같은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JP모건의 사사키 도루 환율 전략가는 보고서에서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의 금리가 낮아지면서 저금리인 일본에서 엔화를 빌려 다른 곳에 투자하는 이른바 '엔 캐리 트레이드'의 열기가 식은 것도 안전자산으로서의 엔 가치를 하락시켰다고 지적했다.

과거 투자자들은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엔을 빌려 금리가 높은 신흥시장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했다. 때문에 경기가 안좋아질 경우 신흥국에 투자했던 돈을 빼 엔화로 바꾸면서 엔화 수요가 급등했다. 다만 경기가 좋을 경우에는 엔화를 빌려 다른 통화를 사면서 엔화가 약세를 보였기 때문에 엔화는 글로벌 경제상황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엔 캐리 트레이드의 규모가 줄어들며서 글로벌 금융시장 내 엔화 수요도 줄었다고 FT의 도쿄 특파원 레오 루이스는 지적했다.

엔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던 엔·달러 환율과 금 가격이 급격히 탈동조화하고 있다. 최근 몇 달간 금 대비 엔화 가치가 빠르게 낮아졌으며, 현재 엔화 표시 금 시세는 1979년의 최고치 기록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외신은 지적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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