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이야기①] “2020년의 시간, 만져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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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훈 기자
입력 2020-02-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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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동준 이원코리아 대표 인터뷰

[편집자주] 성수동은 매력적이었습니다. 트리마제,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등 초호화 주거시설 반대편에는 수제화 거리‧철물점의 낡은 흔적이 공존했습니다. 골목 곳곳에는 저마다 개성을 살린 카페와 음식점, 뷰티 전문점이 자리했습니다. 여기에 소셜벤처기업이 빈 공간을 채우면서 성수동은 문화의 용광로가 됐습니다.

성수동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테이블 하나 없는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며 남사장님과 건너편 꽃집 여사장님의 관계를 알게 됐습니다. 커피를 사면 꽃집 안에서 티타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정보도 얻었습니다. 반대편 음식점에선 도시를 떠나 귀농한 농부가 직접 채소를 길러 반찬을 만들고, 손님들에게 내놓는다고 했습니다. 이곳에선 각자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성수동이 궁금해졌습니다. 넓은 공간 속 작은 공간들, 그 한 곳 한 곳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성수동에 가게를 낸 자영업자, 세상을 향한 ‘임팩트’를 준비하는 소셜벤처 창업가, 본사 이전으로 성수동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수식 불가능한 문화예술인, 그리고 오랜시간 성수동의 변화를 함께한 평범한 사람들.


성수동은 그 사람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2020년,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수동을 이해해 보려 합니다. 이 과정은 ‘성수동을 기반으로 체인지메이커(changemaker) 성장을 지원하는’ 루트임팩트와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아주경제X루트임팩트의 ‘성수동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브래들리 타임피스.(사진=이원코리아)]


[글=루트임팩트 권용직 매니저] 2020년이 시작됐습니다. 어김없이 시간은 흐르고 초조한 마음에 시계를 ‘봅니다.’ 하지만 여기, 왜 시계를 눈으로만 본다고 생각하는지 당연한 것을 되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universal) 디자인 ‘브래들리 타임피스(보지 않고 만져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손목시계)’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고 판매하는 ‘이원코리아’ 임동준 대표입니다.


‘워치(Watch)’가 아닌 ‘타임피스(Timepiece)’ 관점의 차이가 바꾸는 것들

Q. ‘보고 만질 수 있는 시계’라는 점이 독특합니다.

이원코리아가 선보이고 있는 시계 ‘브래들리 타임피스’는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모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계, 즉 모두를 위한 시계입니다. 일반적인 시계에서의 숫자 부분이 양각으로 표현돼 있고 시침과 분침이 구슬로 돼 있어 시간을 볼 수도, 또 만져서 확인할 수도 있는 시계죠. 비시각장애인의 경우, 점자 이해가 없어도 시계를 만져 시간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는 분들도 많아요.


Q. 제품의 방향성을 ‘시각장애인 전용’으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Eone(이원)’의 창업자 김형수 대표(김 대표는 미국 법인을 운영 중인 창업자다. 임 대표는 한국 본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미국 대학원 재학 시절 함께 수업을 듣던 시각장애인 친구가 시계를 차고 있음에도 계속 시간을 묻는 것을 계기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이 원하는 것이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시계가 아니라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디자인 측면에서도 우수한 멋진 시계라는 점도 깨달았죠.

그렇게 탄생한 ‘브래들리 타임피스’는 미국의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브래들리 스나이더를 딴 이름입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복무 중 폭발 사고로 시력을 잃은 후 우리가 속한 사회 시스템이 대부분 장애가 없는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해요. 장애가 있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장애 그 자체가 아니라, 장애를 향한 사회적 불평등이었던 거죠. 때문에 제품 이름을 붙일 때도 영어로 시계를 뜻하는 ‘워치(watch)’가 아닌 보지 않아도 누구나 시간을 알 수 있다는 의미를 담기 위해 ‘타임피스(timepiece)’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담는 제품을 소개하는 일,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기

Q. ‘시간은 그냥 스마트폰으로 보면 되지’ 하는 사람도 많지만, 손목에 차는 시계는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며 구매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을 텐데요, 브래들리 타임피스는 어떤가요?

구매 고객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우리 브랜드 가치에 공감하는 분들이 얼마나 될 지 막연히 걱정도 됐고요. 한 부부는 브래들리 타임피스를 결혼 예물 시계로 사용한 분이었어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치가 담긴 제품을 사용하고 싶어 이 시계를 선택했다고 했죠. 다른 한 분은 웹툰 작가였어요. 시각장애인은 아니었고 다른 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브래들리 타임피스를 접하고 사용하게 된 과정을 웹툰으로 그렸더라고요. 장애 유무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 줘서 감사했죠.

브래들리 타임피스는 영국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 시계 컬렉션에 초대돼 영구 전시품으로 선정되기도 했어요. 보다 많은 이들에게 디자인 가치와 의미를 인정받고 있는 것 같아 기쁩니다.


Q. 언제 ‘이원코리아’와 ‘브래들리 타임피스’를 만났나요?

저는 원래 상사맨이었어요. 어린 시절 해외에서 살기도 했고요. 삶과 일의 영역에서 여러 문화와 사람들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가치를 일을 통해 실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아요. 2007년 직장을 그만두면서 처음으로 ‘탐스 슈즈’를 국내에 들여왔죠. 이후 이원의 창업자 김형수 대표와 만나면서 2014년에 이원코리아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상품 기획 및 기술개발은 한국, 미국과 홍콩에서 공동으로 진행하고 최종 생산은 한국에서 담당하고 있어요.
 

[임동준 대표.(사진=이원코리아)]


프로젝트와 팝업, 그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성수동.

Q. 성수동에서 꽤 오래 머무는 것 같습니다.

공식적인 커뮤니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수동에 자리 잡은 분들과 공유하는 정서가 있어요. 서울이라는 큰 도시 중심부 가까이 있지만, 너무 도시적이지도 상업적이지도 않고 적당한 템포로 생활하는 특유의 여유와 리듬감이 있습니다. 성수동에 자리 잡은 비영리 단체, 스타트업, 소셜벤처 또는 아티스트, 커피로스터, 플로리스트, 파티쉐 등 많은 분들과 만나고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이 동네가 좋더라고요.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해 ‘팝업 사진관’도 성수동스럽게 기획하고 있어요. 작은 브랜드를 위해 운영되는 프로젝트 렌트라는 팝업공간과 빈 투 바(bean to bar) 브랜드 ‘피초코’와 함께요. 피초코는 카카오 나무에서 초콜릿 바가 만들어지기까지 모든 과정에 전문 쇼콜라티에가 참여해 초콜릿을 만들고 있어요. 이 모든 공간과 선물은 성수동에서 준비할 수 있었어요. 단순히 물리적으로 가까워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멋진 공간과 좋은 품질의 초콜릿을 만드는 사람들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어요.


마치며

Q. 새해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세상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가치를 지닌 일에 뛰어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항상 시작이 어렵지만요.

처음부터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자’라고 선언하며 시작하는 것보다 자신의 일상을 통해 발견해 내는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는 ‘장애’나 ‘시각장애인’과 같은 이슈와 대상에 대해 아는 바가 크지 않았어요. 배경지식도 많지 않았고요. 하지만 가치 있는 브랜드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업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회적 이슈와 정보들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참여하게 됐습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성수동 이야기'는 아주경제와 루트임팩트가 함께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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