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규 스페셜 칼럼] 미중 전략경쟁의 확산과 한국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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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
입력 2019-11-03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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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

지난달 말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9회 향산 포럼을 다녀왔다.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이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음을 목도했다. 이 포럼은 2006년부터 중국 군부가 자신들의 군사적 투명성과 평화적 부상의 목적을 세계에 알리고자 개최하였다. 중국 군부엘리트와 저명한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세계 유수의 외교안보 전문가들과 국제 안보 현안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을 벌이는 장이었다. 이 회의는 규모도 점차 확대되고,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중국의 세를 과시하는 장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2018년부터는 2년마다 개최하던 회의를 1년마다 개최하는 회의로 빈도수도 늘렸다. 금년에는 세계 64개국과 10여개 국제기구에서 국방장·차관, 안보 관련 최고위급 인사와 전문가들이 참석하였다. 한 국가가 개최하는 안보 ·관련 회의에 이리 많은 국가들이 고위급을 파견하는 일도 이 회의가 유일할 것 같다.







다음으로 놀라운 것은 중국의 주장이 점차 대담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중 전략경쟁의 여파로 중국이 위축되고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는 세간의 주장들을 무색하게 만든다. 중국의 국방장관 웨이펑허는 세계가 지난 100년 이래 대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이제 이 변혁의 시기에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인들이 해결하자고 대담하게 주장하였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2014년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시카)에서 주장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인데, 이제는 세계 60여개국의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드러내놓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이는 미국을 배제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왕지쓰 교수가 해명을 하기는 했지만, 이러한 추세라면 곧 중국판 먼로주의가 나올 날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중국은 지역협력을 강조하기 위해 “대가족의 일원”이란 표현을 종종 쓰는데, 그 의도와는 관계없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동아시아 문화에서 가족에 내포된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고전적 질서가 동시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미·중 전략경쟁의 시기는 우리에게 대혼란을 안겨주고 있다. 기존 미국 중심의 질서에 안주하던 한국이 이제는 스스로 각자도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가장 안정적인 안보 축이었던 한·미동맹의 가치를 그리 중시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안겨주고 있다. 모든 것을 경제적인 가치와 이익의 잣대로 파악한다. 나와 너를 구분하는 인식이 강해지고, 타자를 배려할 여력이 더 없어진 듯하다. 최근, 세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슬람국가(IS)에 대항하여 함께 싸웠던 쿠르드 민병대를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고 방기한 바 있다. 이는 거의 신앙에 가깝게 한·미동맹을 인식하였던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미국 자신이 주창하였고 한국이 이에 편승하여 경제적 성공을 이루었던 세계화, 세계적 차원의 가치사슬, 지역적 다자협력, 개방되고 포용적인 시장경제 등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중국이 오히려 세계화, 지역적 다자협력, 개방되고 포용적인 시장경제를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운명공동체로 상호 협력을 통해 발전과 평화를 달성하자고 강조한다. 중국의 소프트 파워가 미국을 앞서는 형국이다.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이러한 국력과 소프트 파워의 강화에도 불구하고 중국에는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정부의 강화, 사이버 상의 폐쇄성, 회유와 협박, 지적재산권의 강탈 등 불공정성을 일컫는 샤프 파워의 이미지도 여전히 강하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중국이 주도한 적이 없었던 것도 약점이다. 중국 특색의 강조는 과거 위계적 국제질서의 공포를 불러온다. 보다 강대해진 중국이 지향할 새로운 국제적 질서와 규범에 대한 비젼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주변국들은 물론 세계가 불안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중국은 그만큼 크고 강대해졌다.

문제는 한국이다.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가속화되는 형국에서 선택의 압박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미·중은 이제 경제와 안보를 분리하지 않고 준전시상태의 심리를 가지고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압박한다. 이 추세는 점차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각각 자신들의 경제가치사슬에 입각한 외교안보적 영향권을 구성하려 할 것이다. 한국과 같이 북한의 핵위협을 받으면서, 중국에 대해 거의 35%에 달하는 무역의존도를 지닌 '복합적 취약국가'에는 참으로 난감한 실정이다. 어느 누구도 대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답은 정해져 있다. 자주국방 역량 강화, 외교적 자율성 강화, 포트폴리오 다변화이다. 미국에 대한 안보의존도,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를 중장기적으로 낮춰가야 한다. 제3의 가치사슬 수립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일방적인 편승보다는 신중한 외교·안보·경제정책이 필수이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내적인 합의가 필요하고, 국내정치는 안정되어야 한다. 지도자는 전문성을 중시하고, 동시에 집단지(智)를 추진할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현재 참 난감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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