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을 더 튼튼히 고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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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원 증권부 부장
입력 2019-10-2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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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부원 증권부 부장

 

몇 년 전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친구는 회사에서 새로 출시된 금융상품을 두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니 한 계좌 가입해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정부까지 나서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사실상 관치 상품이었다. 금융사 직원들의 고충이 꽤 컸을 것이다.

고위험 상품도 아니고, 소액으로도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이었기 때문에 선뜻 친구의 부탁을 들어줬다. 다행히 이 상품은 아주 적은 가입액으로 손실을 내지 않고 지금까지 잘 굴러가고 있다.

그러나 큰돈을 넣어야 하는 고위험 상품이라면 가입에 신중해야 한다. 고위험 상품일수록 판매하기 어렵기 때문에 불완전판매 가능성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직장 생활, 특히 상품을 팔아야 하는 영업사원들이라면 늘 실적에 대한 부담을 떠안고 산다.

마감일이 닥쳐오고, 회사 압박이 심해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품을 판다. 고객에게 거짓말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만약 평소 친분이 있던 지인이 특정 상품을 제안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나에게 필요한 상품이 아닌데도, 지인을 조금이나마 돕겠다는 생각으로 구매할지도 모른다. 특히 큰 수익을 낼 금융상품이었다면 더 솔깃했을 것이다. 이렇게 금융상품 불완전판매가 이뤄진다. 

이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펀드(DLS·DLF) 사태가 금융시장을 흔들었다. 은행은 사전에 상품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고, 위험성을 인지한 뒤에도 상품 판매를 중단하지 않았다. 직원들은 고객들을 감언이설로 꼬드겨 상품에 가입하게 했다.

또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국내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의 대형 환매 연기 사태가 터졌다. 유동성 문제로 사모펀드 환매를 중단한 라임자산운용 측은 "14일까지 8466억원 규모의 펀드 환매가 중단됐다"고 밝혔다.

환매 연기 규모가 10일 1차 환매중단 때의 6030억원보다 2436억원이나 늘었다. 만기 때 상환금 일부가 지급 연기될 가능성이 있는 4897억원을 합치면 라임자산운용의 최대 환매 차질 규모는 1조3000억원에 달한다.

잊혀질 만하면 이런 금융사고가 재현된다. 2005년부터 1700억원가량 팔린 파워인컴펀드는 피해자를 대거 양산했다. 2300여명의 피해자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증시가 바닥을 치자 원금 전액 손실에 처했다. 2014년이 돼서야 대법원은 20~40% 배상 원심판결을 승인했다.

이른바 '키코 사태'도 2008년부터 지금까지 불완전판매 여부로 논란이다. 키코는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출시된 상품이었다. 하지만 파생상품의 옵션 때문에 환율이 급등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출기업들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2012년 동양그룹이 발행한 회사채를 매수했다가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동양 사태'도 대표적인 금융사고이자 불완전판매 사례다. 투자자 1254명의 증권 관련 집단소송 결과 대법원은 '불완전판매 손실 60% 배상' 판결을 냈다.

동양 사태 후 금융당국도 서둘러 대책을 마련했다. 당연히 사후약방문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대책을 내놔도 같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게 더 문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란 속담이 있다. 이미 일이 잘못된 뒤에는 후회하고 손을 써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놔둘 수는 없다. 소를 잃은 뒤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그래야 새로 소를 데려와 키울 수 있다. 그 대신 더욱 튼튼히 고쳐야 한다. 다시는 소가 외양간을 뛰쳐나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만약 외양간을 고장 내 소를 잃도록 한 사람이 있다면 책임을 명확히 물어야 한다.  

늘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로 지적된다. 징계 수준을 만만하게 느끼니 금융사고에 둔감한 것이다. 일단 이익을 내고 보자는 금융회사들의 도덕적 해이도 심각하다. 말로만 고객 우선, 금융소비자 보호를 외쳐선 안 된다. 

외양간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답은 나와 있다. 정부와 금융회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실천을 안 했을 뿐이다. 몇 년 전 한 개그맨의 유행어인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란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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