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82년생 김지영'…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지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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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9-10-16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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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날 지영(정유미 분)이 태어났다. 시댁 식구들에 큰 소리 한 번 낼 줄 모르던 어머니(김미경 분), 무뚝뚝한 아버지(이얼 분), 동생들을 위해 희생하던 언니(공민정 분),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남동생(김성철 분). '보통의 가정'에서 나고 자란 지영은 꿈 많은 어린 시절을 지나 매사 자신감 넘치던 직장생활을 거쳐 한 아이의 엄마가 됐다. 작가에 대한 꿈, 승진에 관한 열망은 접어둔 지 오래. 현실에 치여 하루하루 바쁘게 사는 지영은 누군가의 딸, 아내, 엄마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지영은 반복적 일상 속에서 마치 가슴이 내려앉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 종종 기억을 잃거나 입 밖으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남편 대현은 다른 사람인 양 굴기 시작하는 지영이 걱정스럽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영의 이상 행동은 점점 더 예측할 수 없어진다. 그는 친정어머니였다가, 대학 시절 가장 친했던 선배가 되기도 한다. 지영이 그들의 입을 빌려 속내를 털어놓자 대현은 지영의 삶과 아픔을 되짚어간다.

오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사진=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뜨거운 감자다. 2016년 출간 후 2년 만에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한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출간부터 영화 기획·제작·캐스팅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화장실 '몰카'(몰래카메라), 기혼여성을 '맘충'이라 부르는 혐오적 시선, 유리천장으로 승진이 어려운 직장인 여성, 깊은 밤 귀갓길에서 느끼는 공포심 등 '82년생 김지영'은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한 번쯤 겪거나 목도했을 법한 일을 차례로 엮어냈다. 그러나 일부 독자들은 "여성 편향적"이라며 불쾌함을 드러냈고 어쩌다 보니 성 대결 구도까지 빚게 됐다. 소설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악플의 대상이 되거나 낙인 찍히는 일도 벌어졌다. '젠더 갈등'은 심화 됐고 최근 벌어진 몇몇 사건으로 골은 더욱더 깊어졌다.

소설이 영화화되는 과정은 더욱 다사다난했다. 영화화 소식에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제작을 막아달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하고 배우 정유미, 공유 캐스팅 기사에는 낯부끄러운 악플이 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82년생 김지영'은 꿋꿋하게 영화로 완성됐다.

김도영 감독은 수많은 눈총과 우려 속에도 '82년생 김지영'의 아이덴티티(identity)와 작품성을 지켜냈다. 상업 영화 데뷔작임에도 흔들림 없는 그의 선택과 집중은 영화를 끓어오르거나 넘치는 법이 없도록 한다. 몇몇 설정을 비틀고 등장인물의 성격을 변형한 것도 싸움을 부추기지 않는 장치로 여겨진다.

또 김지영 일대기의 굵직한 사건을 취하고 가족 간의 서사를 확대해 더욱 더 많은 관객의 공감을 얻고자 했다. 원작을 흔들지 않으면서 영화만의 결을 살리는 영리한 연출이다. 특히 어머니와 지영의 서사를 단단하게 일궈내 서사적으로도 인물 간의 감정선으로도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작과 차별점은 갖는 건 결말부다. 여러 설정은 비튼 건 희망적인 결말을 말하고자 함이기도 하다. 한 번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지영이 제 목소리를 내고, 흐리터분한 눈에 총기를 띄며 영화는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김도영 감독은 "자신의 말을 할 수 없던 지영이가 결국 자기 생각을 이야기함으로써 성장해가는 이야기라 생각한다"라며 영화의 주제 의식을 밝힌바.

원작과 다른 부분에 관해 "원작에선 결말이 씁쓸한 이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었다면 시나리오에선 2019년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김지영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지영이의 엄마보단 지영이가, 그리고 지영의 딸인 아영이가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게끔 드러내고 싶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 깊다. 먼저 주인공 지영 역을 맡은 정유미는 보편적인 얼굴을 꺼내 관객을 동화시킨다.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히, 담백하게 지영을 그리는 그의 모습은 오히려 호소력 짙게 느껴진다. 지영의 남편 대현 역을 맡은 공유는 다소 기능적일 수 있는 인물을 깊이 파고들고자 했다. 기울어질 수 있는 관객의 시선과 영화의 중심축을 잘 잡아주었다. 또 지영의 어머니 김미경은 그야말로 모두의 '어머니' 같은 존재. 누구나 한 번쯤 자식으로, 부모로서 느껴봤을 감정을 완벽하게 묘사한다.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오래오래 회자될 만한 명장면을 만들기도 했다.

영화 자체로도 만족스럽다. 원작 소설을 쓴 조남주 작가도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두고 "소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김지영 씨에 대한 위로이자 저에게도 격려와 위로를 주었다"라며 호평하기도 했다. 오는 23일 개봉이며 관람등급은 12세 이상, 러닝타임은 118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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