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4th BIFF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최송희 기자입력 : 2019-10-10 06:00
중앙아시아 초원을 배경으로 유목민의 목가적 삶과 어두운 이면을 담아낸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이 지난 3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첫 공개 됐다.

영화 '말도둑들. 시간의 길' 스틸컷[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카자흐스탄의 작은 마을. 아버지는 말을 팔기 위해 읍내로 나선다. 함께 가겠다는 의젓한 아들과 깊이 잠든 어린 두 딸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내를 두고 떠나는 발걸음이 여느 때보다 무겁다. 그러나 가족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아이들을 위한 선물도 준비했지만 돌아오던 길 말 도둑들에 의해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만다.

아내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남편의 장례를 치른다.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두 딸을 챙기는 건 아들의 몫. 아들은 묵묵히 어머니를 도와 아버지를 자연으로 보낸다.

장례를 마친 아내는 아이들과 친정으로 돌아가려 한다. 마을 사람들의 눈총과 빚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 이사를 준비하던 도중 아내는 8년 전 소식 없이 떠났던 남자와 재회하게 된다. 남자는 묵묵히 여자의 이사를 돕기로 하고 아들에게 말 모는 방법도 알려준다. 어딘지 닮은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두 사람은 함께 말몰이에 나섰다가 우연히 아버지를 죽인 말 도둑들과 맞닥뜨린다.

영화 '말도둑들. 시간의 길'은 2015년 '호두나무'로 그해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상을 수상한 카자흐스탄 감독 예를란 누르무함베토프와 일본 감독 리사 타케바 감독이 공동연출한 작품. 카자흐스탄과 일본의 합작 영화지만 카자흐스탄의 요소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이색적인 '합작'은 예를란 누르무함베토프 감독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그는 칸 영화제에서 만난 리사 타케바 감독에게 '말도둑들. 시간의 길' 공동제작을 제안했고 중앙아시아와 공동제작이 많은 일본 측의 적극적인 협조로 이번 작업이 성사됐다고 한다.

다소 느린 호흡의 '말도둑들. 시간의 길'은 표면적으로는 죽음을 맞닥뜨린 소년이 성장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그리지만, 내면에는 중앙아시아의 해방과 재건에 관해 묘사하고 있다고.

개막작 기자회견장에서 리사 타케바 감독은 "이 영화는 소년의 성장담을 담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이 두 번 묘사되는데 이는 제가 중앙아시아에 관심을 두게 된 바와 닮아있다. 하루아침에 구소련에서 해방된 국가가 재건되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잃어버린 것 같은, 미아가 된 것 같은 상황이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소년이 아버지를 잃어버리는 과정과 국가를 잃어버리는 과정이 겹쳐지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며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설명했다.

리사 타케바 감독의 말대로 영화는 삶과 죽음, 아버지의 부재 등 여러 상징과 은유를 심어 관객들에게 발견의 재미를 선물한다.

영화 '말도둑들. 시간의 길' 스틸컷[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이 외에도 영화는 장르적 재미도 챙겨보려고 했다. 와이드스크린으로 구현된 중앙아시아의 드넓은 초원과 푸른 하늘은 압도적 비주얼을 선사하고 초원 위를 달리는 수십 마리의 말들은 스펙터클한 긴박감을 조성해 카자흐스탄판 '서부극'을 완성해냈다.

'말도둑들. 시간의 길'만의 미학을 완성한 건 촬영감독 아지즈 잠바키예프의 공이 컸다. 2013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감독답게 뛰어난 영상미로 관객들의 눈을 트이게 한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반은 성공이고 반은 실패다.

영화 '아이카'로 2018년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사말 예슬라모바와 2016년 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 초청작 '분노'의 주연 모리야마 미라이는 각각 아내 아이굴과 말몰이꾼 카이랏 역을 맡아 절제된 감정 연기를 선보였다. 절제와 여백으로 인물의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건 '성공'이다. 이들의 여백이 오히려 깊은 슬픔과 황망함을 엿 볼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감독과 배우의 관조적 태도가 관객으로 하여금 동조를 끌어낸다는 건 '말도둑들. 시간의 길'의 특이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실패는 '불협화음'이다. 앞서 리사 타케바 감독은 "처음에는 제가 일본 배우에게 디렉션을 주고 예를란 감독이 카자흐스탄 배우에게 디렉션을 주기로 역할 분담을 했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혼돈이 있었다. 저는 그림의 연결성을 지켜보는 역할을 했다. 모니터 앞에 있으면서 그림이 제대로 이어질 수 있는지 객관적으로 봤다. 예를란 감독은 배우도 했기 때문에 배우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걸 즐겼다. 그런데 엄밀하게 역할 분담을 했다기보다 상황에 맞게 대응을 하면서 작업을 해나갔다"며 두 감독이 공동 연출하는 방법에 관해 설명한 바 있다.

"혼란이 있었다"는 리사 타케바 감독의 고백처럼 영화는 군데군데 매끄럽지 못한 매무새를 보인다. 소통하지 못한 바가 느껴진다는 이야기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배우들이다. 각각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는 건 변함없지만 앙상블을 이루지는 못했다. 카자흐스탄과 일본의 '합작'이라는 의미가 무색할 정도다. 관람 등급은 12세고, 러닝타임은 83분이다.

한편 지난 3일 개막해 12일까지 진행되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의전당,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CGV센텀시티, 메가박스 해운대(장산), 동서대학교 소향씨어터, 롯데시네마 대영까지 총 6개 극장 37개 스크린에서 상영된다. 상영작은 초청작 85개국 299편, 월드+인터내셔널 프리미어 145편이다.
어린이꽃이 피었습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네티즌 의견 0
    0 / 300

    실시간 급상승

    9.9초 더보기

    아주 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