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삭발史] 정치인은 왜 삭발을 하는걸까?

이승재 부국장·박연서 인턴기자 입력 : 2019-09-17 17:38


 


제 1야당 대표 초유의 삭발식
2019년 9월 16일 청와대 사랑채 분수대 앞,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조국 법무부 장관 퇴진을 요구하며 삭발을 단행했다. 제 1야당 대표가 장관 인사에 반발해 삭발을 한 것은 처음이다.
 
조국 임명 규탄 삭발은 지난 10일, 이언주 의원(무소속)부터 시작됐다. 뒤이어 11일 박인숙 의원(한국당)이 삭발식을 단행했다.
 
왜 정치인들은 삭발을 하는 걸까?
삭발은 '비장함'과 '의지'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식과는 다르게 단번에 내부적으로 강력한 결속을 다질 수 있고, 외부적으로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삭발은 주로 노동계와 일부 시민단체에서 투쟁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정치인들의 삭발 투쟁이 시작되었을까?
 
정치권 첫 삭발 투쟁 주인공은 박찬종 전 통일민주당 의원이다.
32년 전인 1987년 11월,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두고 김영삼(YS)·김대중(DJ) 후보의 야권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며 삭발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듬해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3선에 성공했다.
 

이후 2004년 11월, 설훈 새천년민주당 의원(옛 더불어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 처리에 반발해 삭발과 함께 단식에 돌입했다. 그러나 탄핵이 철회되지 않고 지도부 퇴진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당했다.
 
2007년 1월에는 이규택 한나라당 전 의원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경기도 이천시 시의원들과 이천 하이닉스 공장 증설 불허에 반발해 삭발했다.
 

한 달 뒤, 2월에는 김충환·이군현·신상진 한나라당 의원(옛 자유한국당·사진 왼쪽부터)은 사학법 재개정 관철을 위해 국회에서 단체 삭발식을 진행했다.
 
2010년 1월에는 임영호·류근찬·김창수·이상민·김삭성 자유선진당 의원(사진 왼쪽부터)이 신(新) 행정수도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여 월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집단 삭발을 했다.
 
2013년 11월에는 이상규·김미희·오병윤·김재연·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사진 왼쪽부터)은 정부의 정당해산심판 청구에 반발, 삭발했다. 그러나 그해 말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통합진보당은 해산됐다.
 

올해 5월에는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을 필두로 하여 김태흠·성일종·윤영석·이장우 의원과 이창수 충남도당 위원장이 삭발을 통해 '패스트트랙 (신속처리안건 지정) 처리 원천무효'를 주장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조국 임명 규탄 삭발 릴레이가 시작됐다.
 
/부록. 외국에서도 삭발을 한다고?/
2015년 8월 홍콩 민주화 지도자들이 홍콩 최고지도자인 행정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단체로 삭발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들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후 홍콩 시민들은 송환법 폐지를 요구하며 시작한 시위를 행정관 직선제 요구로 확대해 더욱 거세게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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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에서도 총기 규제를 주장하며 삭발한 사례가 있었다. 쿠바 이민자 가정의 여고생 에마 곤잘레스는 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을 통해 17명의 친구를 잃은 후 삭발했다. 이후 그녀는 미국 총기 규제 운동의 상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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