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정권의 실체]요시다 쇼인서 아베까지...日보수우익 심장부 야마구치현

김신회 기자입력 : 2019-08-14 10:23
②日보수우익, 정한론의 본산 야마구치현 요시다는 조선 식민지화 사상적 뿌리 아베 고조부 오시마 요시마사도 제자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 도발에 곳곳에서 '극일(克日)'의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다. 일본을 이기려면 먼저 상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아베 정권과 이를 떠받치고 있는 극우세력의 뿌리와 실체부터 짚는 게 급선무다. 앞으로 5회에 걸쳐 이를 집중 분석해본다.<편집자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도쿄에서 나고 자랐지만, 정치적 고향은 야마구치현이다. 그는 아버지 신타로에게서 물려받은 '야마구치 4구(구 야마구치 1구)'를 1993년 중의원에 입성한 이후 줄곧 자신의 지역구로 지켜왔다. 이 선거구에는 야마구치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시모노세키시가 들어있다. 야마구치현은 일본 열도 가운데 가장 큰 혼슈의 남서부에 있고, 시모노세키는 야마구치에서도 서쪽 맨 끝에 있다. 그만큼 한반도와 가까워 우리와 역사적으로 인연이 깊다.

조선통신사가 대표적이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이 일본에 파견한 외교사절단이다. 혼슈 최초 기항지가 시모노세키였다고 한다. 시모노세키에서는 2004년부터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연하는 행사를 이어왔다. 이 지역 최대 여름 축제인 '바칸마쓰리'의 백미 가운데 하나다. 시내 공원에는 조선통신사 상륙기념비도 세워졌다. 덕분에 야마구치현은 방문객 절반이 한국인일 정도로 우리 여행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최근 대일 불매운동의 표적이 된 일본 의류브랜드 유니클로의 본사도 이곳에 있다.

한반도와 시모노세키를 잇는 길은 일제 침략과 수탈의 길이기도 했다. 부산과 시모노세키 사이에 정기연락선(관부연락선)이 취항하기 시작한 1905년 일본은 러일전쟁 승전보를 울렸다. 여세를 몰아 5년 뒤인 1910년에는 한반도를 식민지로 집어삼켰다. 부관(관부)연락선은 막 개통된 철도와 연결돼 도쿄와 경성(서울)을 60여 시간 만에 연결하며 일본의 식민지 경영을 뒷받침했다. 일본이 패망한 직후 시모노세키에는 귀국하려는 조선인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한때 시 전체 인구의 10% 이상이 조선인일 정도였다고 한다.

'야마구치 4구'에는 시모노세키시와 함께 나가토시가 포함된다. 나가토는 아베 총리의 할아버지인 아베 간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시모노세키 역에서 북동쪽으로 약 50㎞를 가면, 현재 나가토시에 편입된 옛 오쓰군 헤키촌(현재는 오쓰군 유야정)의 와타시바라는 곳에 간의 생가가 있다. 시모노세키 역에서 자동차로 2시간, 1시간마다 다니는 환승열차로는 1시간 50분을 달린 뒤에 2㎞를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마을이라고 한다. 과거 대저택이었던 간의 생가는 개축 후 아들 신타로에 이어 손자 신조에게 상속됐다. 생가 인근 '아베가의 묘'에는 간과 신타로 부자가 잠들어 있다.

아베 총리와 야마구치현의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야마구치현은 일본 보수우익의 본산이다. 아베의 정치사상도 이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요시다 쇼인[사진=위키피디아]


◆日보수우익 키운 요시다 쇼인

야마구치현은 에도막부 시절 '조슈번'으로 불렸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죽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시 전국 패권을 쥐면서 에도막부시대가 됐다. 당시 싸움에서 진 이들이 쫓겨온 곳이 바로 조슈번이다. 에도막부에 대한 감정이 좋았을 리 없다.

이때 요시다 쇼인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훗날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보수우익의 정신적 지주가 된다. 아베 총리는 첫 집권 때인 2006년 10월 총리관저 공식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요시다에 대한 경외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아베 신조입니다. 총리대신에 취임한 지 1개월. (중략) 그런데 내일은 저의 고향이 낳은 위인, 존경하는 요시다 쇼인 선생님이 돌아가신 날입니다. 사형되기 전날인 오늘, 26일, 요시다 선생님은 밤을 새워 유서가 되는 유혼록을 쓰셨습니다. '내 몸이 무사시의 들판에 묻히더라도 마음은 야마토의 혼(일본의 혼)이 되어 이 세상에 남으리' (하략)"

요시다는 1830년 조슈번 하기라는 곳에서 가난한 하급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20세 때부터 규슈와 에도에서 신문물을 접하고 서양 근대문명에 자극받는다. 그의 '존왕양이(尊王攘夷)', '일군만민(一君萬民)' 사상은 천황을 중심으로 질서를 바로잡아 근대화를 이뤄야 한다는 대의명분의 근거가 됐다. 요시다는 에도막부 타도를 외치다 29세의 나이로 사형당해 죽는다.

유혼록대로 요시다의 정신은 길이 남았다. 그의 제자들이 천황을 중심으로 한 근대국가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1868년 에도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에 성공한 것이다. 요시다는 무사들의 자녀 교육기관인 명륜관과 사립학교인 쇼카손주쿠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이들이 메이지유신의 주역이었다.

요시다는 정한론(征韓論·일본의 조선 정복론)의 주창자이기도 하다. '신(천황)의 나라'인 일본은 우월하기 때문에 조선을 침략해 합병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가 감옥에서 쓴 '유수록(幽囚錄)'에서 주창한 정한론은 대동아공영론으로 발전해 일본 제국주의 팽창의 불쏘시개가 됐다. 일본에서 요시다는 근대화를 이끈 위인으로 추앙받지만, 우리에겐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데 사상적 기반을 제시한 원흉인 셈이다.

요시다의 제자로는 △메이지유신의 주역 가운데 하나로 정한론 이론가인 기도 다카요시 △일본제국 초대 총리이자, 초대 조선통감으로 고종에게 을사조약을 강요한 이토 히로부미 △초대 조선총독으로 무단통치를 한 데라우치 마사다케 △일본 육군, 군국주의의 아버지 야마가타 아리토모 △명성황후 살해 사건(을미사변) 배후로 꼽히는 이노우에 가오루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주인공으로 대만 총독을 지낸 가쓰라 다로 등이 있다. 이들의 면면은 요시다를 우상으로 삼으며, 자신을 '우익 군국주의자'라고 불러도 좋다는 아베 총리의 극우성향이 어디서 왔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이토를 비롯한 죠슈번 출신 인물들이 요시다 등의 위패를 가져다 세운 '죠슈신사'가 'A급 전범'이 합사된 지금의 야스쿠니신사가 됐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요시다의 '야마토의 혼'은 메이지유신 이후에도 남아 일본 정계의 보수우익 성향을 고착화했다. 일본에서는 제국 시절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를 시작으로 현재 아베까지 98대의 총리 자리가 있었는데, 야마구치현(조슈번) 출신 9명이 이 가운데 21대(약 21%)를 차지했다. 민주당 소속으로 2010년 6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제94대 총리를 지낸 간 나오토를 제외한 8명이 사실상 요시다의 계보를 잇는 이들이다. 윗대는 침략전쟁을 수행했고, 아랫대는 모두 자민당 출신이다.
 
◆아베 고조부도 요시다 제자

주목할 건 아베 총리의 가계도에 요시다의 영향이 직접 반영돼 있다는 점이다. 아베의 할아버지인 간은 반전·평화주의자였고 부친 또한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제동을 건 '평화헌법'을 옹호했지만, 그 윗대에는 요시다의 제자로 조선침략을 주도한 이가 있다. 바로 오시마 요시마사다. 간이 배필로 맞은 시즈코가 그의 손녀다. 아베 총리에겐 고조부인 셈이다. 간과 시즈코는 아들 신타로를 낳은 지 얼마 안 돼 이혼했는데 이유는 알 수 없다. 증언에 따르면 시즈코는 자존심이 매우 강했다고 한다. 

1850년 조슈번에서 태어난 오시마는 청일·러일전쟁에서 무공을 세워 육군대장까지 오르고, 옛 만주 경영에도 참여한다. 자작 작위까지 받은 정한론의 군국주의자였다. 1894년 갑오동학농민혁명에 여단장으로 출정해 경복궁을 기습점령하기도 했다. 이는 결국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요시다와 함께 아베 총리의 양대 정신적 지주로 꼽히는 이가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 총리다. 'A급 전범 용의자'인 기시 역시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기시 전 총리의 본가인 사토 가문 또한 요시다와 직접적인 인연으로 얽혀 있다고 한다. 기시의 장녀이자, 아베 총리의 어머니인 요코는 1992년에 쓴 회상록 '나의 아베 신타로'에서 기시 전 총리의 증조부인 사토 노부히로가 요시다에게 군학(軍學)을 가르친 스승이라고 했다. 노부히로는 요시다의 제자인 이토 등과도 친교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베 총리는 "조부(기시)는 일청전쟁(청일전쟁) 직후 시기인 메이지 29년(1896년)에 태어났다. 일본이 부국강병의 노선을 달리며 크게 비약하던 영광의 시대가 그의 청춘이었고, 그의 젊은 날 자체였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요시다 바람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던 만큼 '청년' 기시도 그 사상의 세례를 듬뿍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베 총리는 2015년 4월 29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외할아버지 이야기로 시작했다. 전후 일본 총리 중에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 건 당시 아베가 처음이었다. 이 자리에서 아베 총리가 가장 먼저 불러들인 게 외할아버지 기시였다는 사실은 그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1957년 6월, 일본의 총리대신으로 이 연단에 섰던 제 조부 기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일본이 세계의 자유주의 국가와 연대할 수 있는 이유는 민주주의의 원칙과 이상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 58년이 지나 이번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일본국 총리로서 처음으로 연설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천황제를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신념체제로 삼아 군국주의를 추구해온 요시다의 후예 기시와 아베가 '민주주의의 원칙과 이상'을 거론했을 때 '민주주의의 나라' 미국의 국회의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참고문헌
▲<아베 삼대>(서해문집)
▲<아베는 누구인가>(돌베개)
▲<아베 신조의 일본>(세창미디어)
▲<아베 신조, 침묵의 가면>(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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