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지소미아 논란과 위태로운 동북아 안보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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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교수
입력 2019-08-0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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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교수 ]


지난 2일 일본이 ‘화이트 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공식 제외하기로 결정한 후 우리 정부는 올 11월 연장이 예정된 일본과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파기로 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다양한 대응책 구비에 대한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꺼내든 대응책이 지소미아 파기다. 이를 두고 대응 방법의 적절성과 효과에 많은 국민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결과는 미진할 것이다. 가시적인 결과는 한·미·일 3국간이 어렵게 만든 안보협력 기초에서 우리의 이탈이다. 그러나 대응책의 부적절성과 미진할 효과를 고려하면 우리 상황이 더 좋아질 리 만무하다.

지소미아 파기 조치가 부적절한 이유는 국가 간의 약속 파기를 우리가 자처한 데 있다. 작금의 한·일경제전이 1965년 한일협정서와 위안부 합의 등과 같은 국제적인 약속에 대한 일방적인 법리적 재해석과 부정에서 시작되었는데 또다시 2016년에 맺은 첫 안보관련 협정을 폐기하면 일본의 제재와 보복행위에 힘만 더 실어주는 격이 된다. 다시 말해, 한·일 양국 간 합의 파기의 파급 영향은 한·일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의 국제적 위상, 국가이미지, 대외 신인도와 신뢰 문제로 귀결된다. 그래서 더 슬기로운 대응전략이 요구된다.

지소미아 파기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아마 정부는 한·일관계의 악화로 한·중관계의 개선 가능성이라는 ‘제로섬’ 전략계산으로 지소미아 파기의 효과 극대화를 노리는 것 같다. 정부는 2017년 중국에 제시한 사드 ‘3불 정책’의 내용 중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의 근간인 지소미아를 파기함으로써 한·중관계 개선이라는 반사이익을 꿈꾸는 것 같다. 이는 지극히 안일하고 순진한 외교적 꼼수에 불과하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물리적으로 이 땅에 존재하는 한 그런 결과가 있을 수 없다. 아마도 우리 정부는 비핵화의 진전이 사드의 필요성을 무효화시켜 철수로 이어질 수 있는 철없는 계산을 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사드배치로 한·미·일 안보관계 강화를 우려했던 중국이 지소미아 파기의 대가로 우리에게 우호적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지략이 없는 전략적 사고다. 이런 순진한 발상이 위험천만한 것은 중국의 전략적 속셈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외교안보의 최종 목표는 자국의 주변지역 및 국가에서 이른바 ‘외세’를 완전히 축출하는 것이다. 당시 중국의 이런 목표는 ‘식민주의, 제국주의, 강권정치’에 반대하는 이른바 ‘제3세계의 해방’이라는 전략사상으로 포장되었다. 냉전시기에는 ‘제국주의, 패권정치, 반혁명’ 세력에 대응하는 전략사상으로 재포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1951년 처음으로 ‘아시아 문제는 아시아인의 것이고 아시아인들이 해결해야한다’는 입장을 공식 밝히면서 아시아에서의 외세 배척 목표를 공식화했다. 이런 중국의 입장은 2014년 시진핑에 의해 이른바 ‘신아시아안보관’으로 다시 소개되었다.

실제로 중국의 목표는 점진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아시아에서 발생한 일련의 전쟁과 군사적 갈등이 중국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었다. 중국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북한과 베트남 인민의 해방뿐 아니라 한반도와 인도차이나반도에서 미군 척결의 호기로 인식했다. 그래도 참전 결정이 쉽지 않고 상당히 고민스러웠던 이유는 후자 목표의 달성 가능성에 대한 불확신 때문이었다. 미군이 당시 워낙에 상대하기 버거운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중국의 국방현대화가 가속화되면서 1930년대 이후 오랫동안 묵힌 이른바 ‘9단선’ 개념이 다시 중국의 군사전략에 접목되기 시작했다. 이 개념을 근거로 중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포함한 ‘9단선’ 내의 해역을 자신의 영해로 획정하면서 이 지역에서의 방어능력 증강을 위한 해군력 강화에 나섰다. 중국의 ‘9단선’ 내 해군력 증강의 목적은 역내에 대한 외세의 진입, 접근, 침입이나 주둔 기회를 철저히 부정하기 위함이다. 즉, 역내에서 미국의 ‘항행의 자유’를 제약하는 데 있다. 이는 미국의 동맹국과 우방이 반도나 열도 국가라는 지리적 현실을 감안하면 이들의 안보이익과 미국의 역내 군사안보이익 수호 전략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중국의 군사적 노력에 승리의 여신은 지금까지 중국의 손을 들어주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냉전의 시작과 함께 중국은 5개의 주변 지역 및 국가에서 외세(미국)와 각을 세우고 있었다. 자의에서든 타의에서든 중국은 이미 3개 지역과 국가에서 미국의 군사적 존재를 척결하는 데 성공했다. 베트남전쟁으로 인도차이나반도에서의 미국 철수(1975), 미중수교로 대만에서의 미군 철수와 동맹조약 폐기(1979)와 필리핀 국민투표로 미군 철수와 동맹폐기(1991)라는 성과(?)를 올렸다.

이제 남은 건 한국과 일본의 미군주둔과 미국과의 동맹관계다. 중국은 미·일동맹문제에 있어 아직 유보적이다. 미중수교협상에서도 드러났듯 일본의 군국주의의 부활이나 ‘정상국가화’의 군사적 함의를 두려워한 나머지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을 미·일동맹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과 한미동맹 문제에 있어 중국은 당연히 북한과 입장이 같다. 북·중 양국은 주한미군과 한미동맹문제의 해결 주장을 전쟁이후 포기한 사실이 없다. 이는 오늘날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 해결 방안으로 주장하는 ‘쌍궤병행’ 방안에서도 입증된다. 이는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통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기제 구축을 포함한다. 이 기제의 선결조건의 함정은 주한미군과 한미동맹문제의 해결에 있다.

이에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북한은 1992년 미·북회담에서 한반도 통일 후 주한미군의 주둔을 허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00년 김정일은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에 안정적인 역할을 인정했다. 그러나 액면가로 받아들이기에는 비현실적인 발언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북한은 자신의 체제 하에 한반도의 통일을 원한다. 이런 식의 통일 하에서 미군 주둔의 허용은 북·미동맹으로만 가능해 어불성설이 된다. 둘째, 이와 모순적인 입장을 북한이 견지한 사실이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래 냉전 시기 동안이나 90년대 말 4자회담에서나 지금까지 자신의 안보보장 조건으로 주한미군철수와 한미동맹폐기의 주장을 포기한 적이 없다.

작금의 중국은 영해 방위선을 ‘제1열도선’까지 확대할 기세다. 9단선 방어를 위해 일본과 대만, 필리핀을 잇는 ‘제1열도선’을 대 미국 해상방어의 완충지역, 즉 방어선의 마지노선으로 삼기 위함이다. 그러면서 판세는 미국의 수세적인 상황으로 전환되고 있다. 최근 들어 미국 군함이 대만해협을 순항한 사실로 위안이 조금 되지만 우리의 안보 현실은 암울해지고 있다. 중국은 2010년부터 우리의 서해를 자신의 ‘앞바다’로 주장했다. 우연인지 2013년 이후 미국의 항공모함도 서해에 발길을 끊었다. 최근 우리 동해바다의 주권마저 중러 연합세력에 위태롭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한반도의 군사지정학적 전략 가치를 적극 활용해야한다. 미국이 ‘9단선’이든 ‘제1열도선’이든 중국 ‘영해’ 내에서 중국을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제일 근접한 거리에서 견제할 수 있는 지역이 한반도다. 정부는 이런 이점을 적극 활용해 우리나라가 동아시아안보게임에서 꽃놀이패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질서 속에서 외교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국과 제3국간 역학관계의 속성을 철저히 파악하는 지혜와 통찰력이 발휘되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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