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中과 함께 한국영공 찔러본 이유…그 나라 가보니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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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가천대 교수
입력 2019-07-3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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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교수 ]

[곽재원의 Now&Future]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야간 고속열차 ‘삽산’을 타자마자 묘한 상념에 빠져들었다. 탑승 4시간 동안 내내 ‘러시아의 현재’를 놓고 온갖 생각을 꺼내 보았다.

그 단초는 삽산의 객석을 꽉 채운 중국인들의 끊임없는 재잘거림과 ‘매’라는 뜻의 고속열차 삽산이었다. 전자는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는 두 대국 러시아와 중국의 밀착을 상징하는 것이고, 후자는 독일 지멘스가 만들고 시스템 운영까지 해주는, 러시아와 독일의 굳건한 기술·경제협력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러시아와 중국 두 거상(巨像)은 4000㎞의 긴 국경을 접하고 있다. 국경분쟁을 일으켰던 1969년은 지금은 먼 역사가 되어버렸다. 러시아는 국내총생산(GDP) 러시아의 8배, 인구는 약 10배로 커진 중국과의 밀월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그려 나가고 있다. 삽산이 이 노선에 투입된 지 올해 꼭 10년이 되었다. 독·러 전쟁과 독일분단으로 얼룩진 역사는 없어지고, 독일은 이제 러시아의 최대 무역국으로 올라섰다. 영자지 모스크바 타임스는 러시아어와 곁들여 러·독 경제협력 특집을 실어 여러 호텔에 비치하고 있다. 러시아와 독일의 밀월 여행도 장대하게 펼쳐지고 있다.

며칠 전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돌아봤다. 1990년 10월 한‧소 수교 때 러시아(소련)를 첫 방문한 이래 10회는 넘게 드나든 기억이 남아있다. 그런데 이번 방문은 어느 때보다 마음에 남는다. 시계추를 돌려본다. 2015년 6월 1일~6일까지 러시아가 미국 실리콘 밸리를 본떠 건설하고 있던 모스크바 근교의 ‘스콜코보 테크노 밸리’의 초청으로 모스크바에 머물렀을 때다. 둘쨋날인가 모스크바시가 처음으로 중국어로 된 모스크바 지도를 만들었다는 발표 기사를 보았다. 필자는 2015년을 중국의 본격적인 러시아 상륙의 해로 기억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중심가 넵스키대로의 명소, 싱어빌딩. 사진=곽재원 위원]



4년이 흐른 지금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는 중국인들로 마치 점령당한 듯하다. 상트의 명소 에르미타지(겨울궁전), 여름궁전을 비롯해 유명 성당도 중국인들로 넘친다. 상트 중심가 넵스키 대로도 이들로 꽉 찼다. 넵스키의 명물 싱어빌딩의 문방구와 커피숍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야간 발레공연 티켓은 중국 관광객들이 독차지했다. 중국어 지도도 넘쳐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750㎞ 떨어진 모스크바도 중국인으로 붐비기는 마찬가지다. 붉은 광장과 굼백화점은 물론이고 주요 공연장들도 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러시아는 북극을 머리에 인 채 오른손은 독일, 왼손은 중국과 붙잡고 유라시아 대륙을 내려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러시아-독일 상공회의소(ECP)에 따르면 독일 기업들의 2018년 러시아 투자는 33억 유로(약 37억 달러)로 지난 10년 이래 가장 많은 규모를 기록했다.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독일기업은 약 6000개로 집계된다. 독일 기업들은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 가장 활발한 투자를 하는 파트너들이다. 전 독일총리인 게하르트 슈뢰더는 러시아의 최대 지지자로, 블라드미르 푸틴 대통령과 친교를 유지하며 가스프롬의 일을 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정권을 잡은 이래 두 나라 관계는 매우 좋은 편이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리미아 합병으로 다소 냉랭해지는 듯했으나 지금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 비즈니스에서 러시아 시장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이런 분위기속에 독일 소매체인의 대부분은 러시아에 근거를 두고 있다. 독일과 러시아 간의 2018년 무역규모는 전년보다 8.4% 늘어난 619억 유로에 달했다. 독일에서 러시아로 향한 수출은 14.7% 늘어난 360억 유로, 러시아에서 독일로 향한 수출은 0.6% 늘어난 259억 유로를 기록했다. 러시아는 중소기업 대국인 독일의 가장 매력적인 시장으로 꼽히고 있다.
 

[모스크바 크레믈린궁 푸틴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필자. 사진=곽재원위원]



최근 러시아와 중국의 경제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낸 뉴스는 모스크바 타임스 7월 26일자에 실렸다.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수출하는 데 사용하는 달러화의 비중을 사상 처음으로 50% 이하로 떨어뜨렸다는 내용이다. 즉, 2019년 1분기에 45.7%로 낮췄는데 2018년 한해 전체로는 75.1% 였다. 두 나라 재화와 서비스의 수출입을 고려할 때에도 달러비중은 크게 떨어졌다. 수출입 전체로 1분기 264억 달러어치의 55.7%인 147억 달러어치가 달러결제됐다. 반면 유로화 비중은 2018년 1분기의 0.7%에서 2019년 1분기에 37.6%로 높아져 금액으로는 10배나 늘었다. 유로화는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무역거래에서 피난처가 되고 있다. 특히 원유거래에서는 미국의 경제제재 리스크를 회피하는 수단이 된다. 이제 러시아의 탈(脫)달러와 탈(脫)미국이 독일과 중국을 배경으로 추세로서 정착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프랑스와 일본의 움직임이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무역거래는 2018년 전년보다 11% 늘어난 170억 달러를 기록했다. 프랑스 기업들은 현재까지 200억 달러를 투자했다. 예컨대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털은 최근 210억 달러규모의 러시아 북극 가스 프로젝트에서 10%의 지분을 획득했다. 토털은 이미 북극에서 280억 달러 규모 가스프 로젝트의 20% 지분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러시아와 독일이 주도하고 있는 가스프롬의 ‘노르트 스트림2’ 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에서도 프랑스는 미국의 대러 경제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요 펀딩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과 손잡고 지난주 러시아 두 번째 천연가스 생산업체인 노바테크의 차기 프로젝트에 지분 30% 비율로 참여하기로 협약을 체결했다.

‘러시아-독일-프랑스’와 ‘러시아-중국-일본’이라는 연결은 러시아가 펼치는 이른바 ‘투 트랙’접근법이다. 막대한 자원을 바탕으로 한 풍부한 외자로 미국의 제재가 거의 먹혀들고 있지 않은 가운데 프랑스와 일본은 러시아와 손을 잡고 있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현재 배럴당 60달러대에서 머물고 있는 국제 유가가 40달러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 러시아의 위상은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러시아와 중국의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입한 사건은 이러한 일련의 지정학·지경학적 환경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으면서 대한민국의 외교 전략을 새로 짜야할 때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곽재원)


 

[곽재원 교수 제공] [2015년 6월 나온 첫 중국어 모스크바 지도 표지] ]

 

[곽재원 교수 제공] 상트 페테르부르크 중국어지도와 고속열차 삽산 안내책  (좌)  모스크바 타임스 러시아-독일 경제협력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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