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구로후네(黑船) 쇼크와 대한 수출 규제

곽재원 가천대 교수 입력 : 2019-07-09 09:26
 

[곽재원 교수 ]

[곽재원의 Now&Future] 지난 4일부터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 수출규제를 발동했다. 우리 경제의 급소인 반도체를 첫 대상으로 삼았다. 아베 정권이 취한 이러한 일본의 공격을 역사적인 시각에서 보면 의미있는 ‘데자뷔’를 발견하게 된다. ‘구로후네(黑船) 쇼크’가 바로 그것이다.

1853년 7월 8일 흑선(黑船)이 도쿄만 입구인 우라가(浦賀)에 나타났다.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해군 함대가 들어온 것이다. 구로후네는 원래 유럽에서 만들어진 대양 항해용 대형함으로 타르로 선체를 검게 칠하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페리 제독은 7개월 만인 1854년 2월 13일 우라가에 다시 나타났다. 잔뜩 겁을 먹은 일본 에도 막부는 초기부터 유지해 온 쇄국정책을 폐지하고 개항했다. 1854년 3월 31일 미일화친조약에 이어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구로후네’는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도화선이다. 일본 역사상 나라 밖에서 온 가장 큰 충격이었고, 개국(開國)의 단초가 되었다. 일본인들에게 구로후네는 ‘트라우마 DNA’로 핏속에 녹아있다. 이 트라우마는 어떤 때는 개혁과 혁신의 엔진이 되지만 어떤 때는 콤플렉스의 발현이라는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일본은 구로후네라는 외압(外壓)을 개국과 혁신으로 대응하며 근대화를 꾀했다. 흑선 출몰 15년 뒤인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 바로 그것이다. 일본은 250년 도쿠가와 무신정치에 종지부를 찍고 메이지 국왕을 중심으로 한 혁신국가로 재탄생했다. 새 나라는 ‘부국강병’(富國强兵)과 ‘식산흥업’(殖産興業)을 기치로 내세우고 국가총동원 체제를 확립했다. 이후 아시아를 벗어나 선진 제국주의 국가군에 진입했다.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실현이다. 이는 개혁의 엔진이 작동한 결과였다.

일본은 1876년 운요호(雲揚號)를 앞세워 조선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했다. 미일 수호 통상조약체결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서구의 제국주의를 본떠 식민지배에 나선 것은 구로후네 콤플렉스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은 이후 전쟁도발과 1945년 패전으로까지 이어지는 끈질긴 ‘구로후네 트라우마 DNA’를 보여주었다.

일본은 지난해 메이지 유신 150주년을 맞으며 향후 150년 번영을 다짐했다. 일본이 1988년부터 30년간 유지해온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끝내고 올 5월 1일부터 연호를 레이와(令和)로 바꾼 것도 ‘구로후네’ 쇼크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다. 19세기 구로후네는 미국발이었지만 21세기 구로후네는 중국발이다. 일본은 지난 2010년 세계 경제대국 2위의 자리를 중국에 내주었다. 1968년 서독을 앞지른 후 42년간 2위를 지켜왔던 일본으로선 중국의 부상은 ‘구로후네’에 버금가는 쇼크였다. 1995년 ‘플라자 합의’에 의한 엔고(高)라는 미증유의 외압도 이겨낸 일본이었다.

미·중 간에 벌어지는 무역전쟁과 기술패권경쟁은 ‘신제국주의’이며, 일본의 레이와는 ‘신 메이지 유신’으로 비견된다. 구로후네 출몰에서 메이지 유신까지 15년이 걸렸다면, 중국의 대두에서 레이와까지는 9년이 걸린 셈이다. 일본은 레이와 시대의 세계 전략 수립에 고심하고 있다.

중국발 구로후네 쇼크를 경험한 일본은 지난달 28, 29일 양일간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특히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놓고 벌이는 각축전을 분석하고, 신메이지 시대의 세계전략을 탐색했을 것이다.

일본이 G20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한국에 대해 경제공세를 취한 것을 두가지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패권국 G2(미·중)가 펼치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파워의 실행을 따라해 보려는 의도다. 이 점에서 한국을 정치·경제·외교 등에서 일본과 수많은 이슈를 가진 훌륭한 리트머스 시험지로 여길 수 있다. 또 하나는 일본 기술로 커온 삼성 등 한국 전자기업들이 일본기업을 세계시장에서 몰아내고 압도적인 존재감을 갖게 된 데 대한 저항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는 누가 보기에도 일종의 콤플렉스 발현임을 알 수 있다.

그런가하면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면서 일본은 미국의 ‘스푸트닉 쇼크’를 배우기 시작했다. 스푸트닉 쇼크는 1957년 옛 소련이 미국에 앞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쏘아 올려 미국을 경악시켰던 사건이다. 이로써 미·소간의 우주경쟁이 시작됐고, 미국은 50년 전인 1969년 7월 20일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유인우주선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시켰다. 미국 기술혁신의 본거지로 인터넷을 탄생시킨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도 스푸트니크 쇼크의 산물이다. 

일본은 이런 미국의 사례를 본떠 최근 총리실 산하 ‘종합과학기술이노베이션회의’의 주도 아래 ‘문샷(moonshot) 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우주인을 달에 올려놓듯이 국가가 야심적인 목표를 내걸고 보다 담대한 발상으로 도전적인 연구개발을 추진토록 하는 연구개발 프로그램이다. 일본은 이에 앞서 전략적 이노베이션 프로그램(SIP), 혁신적 연구개발 촉진 프로그램(IMPACT), 관민연구개발투자 확대 프로그램(PRISM)을 추진함으로써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국가 연구개발 혁신체제를 갖췄다. 새로운 구로후네 쇼크에 근거한 혁신의 엔진이 발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에 한국에 수출규제를 발동한 경제산업성은 제4차 산업혁명의 총괄부서로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바이오, 로봇, 헬스케어 기술 등을 동원한 새로운 초연결사회인 ‘소사이어티 5.0’의 실현을 선도하고 있다. 이런 경제산업성이 제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한국을 옥죌 수 있는 무역 규제 시리즈를 마련해 놓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레이와 시대가 시작되면서 ‘구로후네 쇼크 트라우마’가 훨씬 복잡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집권 최장기를 겨냥하고 있는 아베 총리가 연호 개원을 넘어 군사대국을 향한 개헌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지 유신의 ‘데자뷔’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중 무역전쟁은 지금은 소강상태지만 장기화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무역 공세도 장기화되고 있는 미·중 무역 전쟁의 복사판이 될 수 있다.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를 이러한 일본의 과거 역사와 글로벌 패권 다툼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해 미래지향적인 종합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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