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일본의 제재와 구한말 외교의 암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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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교수
입력 2019-07-15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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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교수 ]



지난달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는 우리나라에 치욕을 안겨준 행사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사드 해결 방안 검토’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면서 사드 관련 제재가 유효함을 재확인했다. 폐회 즉시 일본마저 지난 7월 1일 우리에 대한 경제제재를 발표했다. 이에 미국은 수수방관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고위인사를 워싱턴에 급파하면서 미국의 중재를 요청하러 갔지만 성과는 우리의 기대에 만무할 것이다. 우리 외교가 지금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이 모든 사태가 오래전에 예약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인지하지 못했다. 현 정부는 ‘북한 감싸기’에 매몰되어 사태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21세기에 들어서 중국 부상에 대한 견제책을 일찍이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가 미국이 2001년 ‘9·11 테러사태’로 ‘테러와의 전쟁’을 하는 동안 동아시아와 중국 문제에는 소홀했다고 인식했다. 오바마 정부의 ‘재균형 정책’ 채택 때 우리는 비로소 미국이 동아시아로 회귀하는 줄 알았다. 이로써 미국의 대 중국 견제의 경종이 울렸지만 우리는 사대주의 늪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었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미국과 일본의 '인도-태평양'전략 참여 문제, 북한 제재 완화의 중재 문제,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 미군의 전시작전권 조기 환수 문제 등을 둘러싸고 논란은 격화될 뿐이었다. 

국내정치의 ‘진보’와 ‘보수’ 세력 간의 진영싸움이 외교에서 ‘친중’, ‘친미’, ‘반미’, ‘반일’, ‘친북’, ‘대북 강경파’ 등의 분파싸움으로 번졌다. 그러면서 우리의 국익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묻혀졌다. 전문가들은 학자의 양심까지 팔아먹고 개인의 욕심과 출세를 위해 사대파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데 정신없었고 정권의 나팔수를 자청했다. 그 결과 오랫동안 우려되었던 구한말의 비극 재현 가능성이 사욕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보인다.

이제 대한민국에는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1905년 체결된 동 밀약은 표면적으로 미·일 양국이 각각 필리핀과 조선의 식민지화를 서로 용인하는 것을 양해한 것이다. 이들이 서로를 양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 장악이라는 궁극적인 목표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의 원활한 실현을 위해 이들은 필리핀과 조선의 식민지화가 필요했다.

오늘날 제2의 '가쓰라-태프트' 그림자는 '인도-태평양'전략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이 전략은 밀약과 유사한 목표와 전략에서 추진되고 있다. 미·일의 최종 목표는 중국의 부상과 패권야욕에 대한 견제다. 이의 원활한 실현을 위한 양국 간 전략의 분업화가 필요하다. 미국은 따라서 '인도-태평양'전략의 이른바 미·일·호주·인도 등 '4자전력협력국가(QUAD States)'를 이끌면서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에게 한반도지역에서의 영향력 강화를 위한 필수적인 역할과 임무의 확충을 용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본이 동중국해와 대만해협을 포함한 중국의 이동(以東)지역을 견제해야 하는 중책의 정당성을 제공하기 위한 전략적 복선이 깔려있다.

미국의 이런 전략구상은 G-20 정상회의 이후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겨졌다. 비록 6월 30일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에서의 조우가 있었지만 이미 한반도에 드리워지는 암운을 막을 수 없었다. 일본은 7월 1일 우리 전략산업의 관건 품목 세 가지(불화수소, 불화 폴리이미드, 레지스트)에 대한 수출 제재를 발표했다. 이로써 이들 품목의 수입은 일본 경제산업성의 허가 없이 불가능해졌다. 미국 측은 한반도 유사시 주한미군의 작전 수행을 돕기 위한 UN연합사령부의 ‘전략제공국’의 참여 필요성을 언급하는 책자 <2019 주한미군 전략 다이제스트>를 9일에 발간했다. 여기에서 UN의 후방사령부가 주둔하는 일본의 ‘전략제공국’ 자격 여부가 쟁점으로 부상했다.

매우 안타깝고 답답한 것은 미·일 양국의 대 중국 견제 전략 행보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사실이다. 주한미대사와 6자회담의 미국대표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의 회고록을 보면 2005년 미국은 이미 ‘인도-태평양’의 지리적 개념 구상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동맹국 관계의 판단 기준을 동맹 자체가 아닌 역내 핵심역량국가와의 관계로 전환하면서부터라고 밝혔다. 즉, 미국은 역내 국가와의 관계 가치와 중요성을 동맹 차원이 아닌, 일본, 호주와 싱가포르 등의 역내 핵심역량국가와 어떤 성격과 성질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판단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국가는 미·일과 호주와 인도다. 이들 국가와의 관계가 중요하게 된 이유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역내 동맹국가 간의 관계 강화 전략 구상이 재추진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 간의 관계(intra-alliance relations) 강화 구상은 어제 오늘에 고안된 것이 아니다. 1955년부터 진행된 숙원사업이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당시 SEATO(오늘날의 ASEAN의 전신)를 중심으로 추진했으나 국내외적인 문제로 실패했다. 오늘날까지 미국이 미·일안보조약을 부단히 수정하면서 조약의 제약을 완화시킨 이유가 미국의 동맹국 간의 관계 강화를 실현하기 위한 데 있다. 

이의 정점에 한국의 사드배치가 있었다.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국 간 동맹관계의 가장 관건적인 연결고리가 사드배치를 통한 미국의 동아시아 미사일체제의 통합이었다. 미국이 당시 대립적인 한·일관계의 중재자로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목표를 달성한 미·일 양국이 중국의 제재 보복에 뒷짐 지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제2의 '가쓰라-태프트' 비운을 피하기 위해서는 진영논리에 따른 사대주의식의 당파싸움이 한국 외교에서 사라져야 한다. 앞으로 그만큼 외교안보전문가의 역할이 중대하다. 특히 대국을 상대하는 우리로서는 대국의 목표와 저의를 통찰할 수 있는 혜안을 길러야 한다. 강대국들은 사대주의에 빠진 우리의 진영 인사의 면전에서 감언이설로 우리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안다. 따라서 우리 관료나 학자는 사욕과 개인의 영위를 위한 ‘양심팔이’를 중단해야 한다.

국내 대부분의 미국전문가는 한미동맹 연구자다. 이제 겸손한 자세로 지엽적 관점을 확충해 세계를 통찰할 수 있는 혜안과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중국전문가는 반미감정과 역사적 유대관계에 기반한 ‘감성팔이’에서 탈피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대통령에 대한 홀대를 홀대라고 말해야 한다. 북한전문가는 북한이 미·일의 대 중국 견제 전략의 매개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정정당당한 통일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일본문제는 더 이상 민족주의에 의존한 국민의 지지 획득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민족주의 같은 극단적인 정치수단은 사활을 걸 만큼의 ‘이판사판’의 의지와 방안이 없으면 결과는 공존이 아닌 자멸임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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