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와 접경지 관광, 체감할만한 매력이 안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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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 2019-07-12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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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 교수]



지난 주말에 학생들과 함께 철원의 접경지역을 답사하였다. 대마리에 있는 백마고지전적지와 양지리의 DMZ 철새평화타운, 생창리의 생태평화공원을 방문하여 마을의 역사와 함께 주민들이 느끼는 애로사항을 듣고, 평화생태관광의 가능성과 한계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마을들은 1968년부터 1972년 사이에 만들어진 ‘재건촌’이다. 바로 옆에는 1973년 조성된 ‘통일촌’, 유곡리가 있다. 이들은 민간인통제구역에 있는 황무지를 개척하여 식량생산과 안보에 활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성했기 때문에 전략촌이라고 부른다.

철원은 한탄강이 보여주는 것처럼, 독특한 지질환경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전장이었다. 또한 ‘수복지구’이고, 최전방이자 민간인통제구역이 넒은 범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은 군사화가 되었고, 동시에 전쟁폐허가 그대로 방치되었다. 그러나 새로 입주한 주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황무지는 최고 품질의 쌀을 생산하는 농경지로 변화하였고, 청정 환경과 풍부한 먹이 때문에 겨울철에는 세계적 희귀조인 두루미와 재두루미를 비롯한 각종 철새가 찾아오는 장소가 되었다.

이곳이 ‘볼 거리’가 많은 관광의 장소로 변하는 계기가 된 것은 1975년에 발견된 땅굴 때문이었다. 철원군은 이 땅굴과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고석정을 함께 묶어서 국민안보관광지로 만들려고 했다.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1985년에 건립된 철의 삼각 전적관은 이런 노력의 결정체였다. 비무장지대와 가까운 곳에 1988년에 세워진 철의 삼각 전망대는 안보관광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산물이었다. 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남북을 가로지르는 철책과 비무장지대뿐 아니라 경계를 넘어 보이는 북한의 모습이었다. 정부는 이 전망대에서 분단현실을 직시하고 안보의식을 가다듬을 것을 주문했다. 이 지역의 생태환경은 안보관광을 통해 의미있는 냉전경관이 되었고, 잔해로 남아 있던 ‘노동당사’도 북한의 폭력을 증거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중요한 구경거리에 포함되었다.

1998년 시작된 금강산관광, 2000년의 남북정상회담은 비무장지대나 접경지역의 냉전경관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민간인 출입금지로 인해 만들어진 생태적 환경이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재해석되고, 또 평화라는 용어가 이를 바라보는 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84년 고성의 통일전망대와 2006년 강화의 평화전망대, 2007년 철원의 평화전망대를 비교하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프레임에 변화가 오는 데 20년이 걸린 셈이다. 흥미롭게도 평화를 내세우는 경향은 2008년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녹색성장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생태평화공원을, 통일대박론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는 세계평화공원을 비무장지대나 접경지역에 만들려고 노력했다.

문재인 정부가 핵심정책으로 내세운 것이 H자로 형상화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이다. 그것은 남북으로 연결되는 환동해 벨트와 환황해 벨트, 그리고 비무장지대를 따라 형성되는 새로운 경제벨트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런 구상을 뒷받침하고 있는 개념이 평화경제이다. 문제는 이런 아이디어나 개념이 추상적이고 모호하여 주민들에게 잘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화경제는 전략촌 주민들이 겪었던 토지분쟁이나 지뢰피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줄 것인가? 비무장지대를 따라 형성되는 경제벨트가 과연 이 지역의 냉전경관의 평화적 활용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인가?

생태평화공원이 문을 열었고, 또 올해 ‘평화의 길’들이 열리게 되어 접경에 대한 접근성은 매우 좋아졌다. 그러나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냉전경관에 대한 설명방식이나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작년에 군사합의에 의해 해체된 감시초소의 모습도 촬영할 수는 없다. 66년간 누적된 냉전의 관행을 깨트리기가 쉽지 않지만, 정부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주민들이나 관광객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것 사이의 괴리가 클수록 그 정책은 실패하기 쉽다는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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