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흥미로운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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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호 변호사
입력 2019-06-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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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방신기 사건

  • 서울중앙법원 2009카합2869 결정

1. 들어가며

엔터테인먼트계약과 관련하여 일련의 글(“흥미로운 전속계약, 출연계약의 세계”, “흥미로운 전속계약, 광고모델계약의 세계” 참조)을 쓰는 동안 공교롭게도 강다니엘씨의 가처분 사건이 진행되었고,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51부는 전속계약의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을 인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위 인용결정을 소개하는 대중매체는 강다니엘씨를 대리한 법무법인 율촌의 담당변호사 인터뷰 내용을 기초로 매우 부정확한 보도를 하고 있다. 마치 본안판결이 내려진마냥 “전속계약 분쟁에서 승소”했으므로 “자유롭게 연예활동”을 할 수 있다고 소개하는 것이다.

가처분 인용결정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본안판결 선고시까지 임시지위를 정하는 것일 뿐이다. 더욱이 가처분에서 요구하는 입증의 정도(‘소명’)는 본안판결에서 요구하는 입증의 정도(‘증명’)와 사뭇 다르다. 가처분이 인용되었다고 본안판결이 승소되는 것도 아니다. 긴급성을 요하는 가처분의 특징상 이의신청으로 그 결과 뒤집어 지는 경우도 상당하다.

오늘 소개할 판례는 본격적으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 동방신기 사건(서울중앙지방법원 2009카합2869 결정)이다. 문제는 “계약의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이 가지는 의미이다.


2. 사건의 개요

198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연예산업 규모가 확장됨에 따라 SM은 연예인의 일정관리, 출연계약 중개와 같은 단순 보조업무를 넘어 장기적인 투자와 기획을 통하여 유망주를 직접 발굴·육성하고, 음반 등 작품의 제작·유통을 주관하며, 적극적인 홍보와 관리로 소속 연예인의 인기를 형성·유지하는 전문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국내에 선도적으로 도입하였다. 그룹 ‘동방신기’ 역시 위와 같은 SM의 전문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통하여 육성된 사례로, 연예인 지망생 시기부터(김재중의 경우 약 3년, 김준수의 경우 약 6년간의 연습생 기간을 거쳤다) 대단한 인기를 구가하게 된 현재까지 연예활동은 물론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SM의 전면적 관리에 의존하여 왔다.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소속의 5인조 가요그룹 ‘동방신기’는 2004. 1. 14. 1집 음반을 출시하여 공식 데뷔한 이래 국내외에서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여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남성 5인조 가요그룹이었는데, 그 구성원 김재중, 박유천, 김준수(이하 ‘신청인들’)는 2009. 7. 31. SM을 상대로 전속계약의 효력정지를 구하는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동방신기의 데뷔 무렵 이전부터 국내 가요계는 SM과 같이 전문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갖추고 시장을 분점한 소수의 연예기획사 소속 가수들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이들 연예기획사들이 오디션 등을 통해 유망주들을 조기에 발굴하여 장기간의 훈련·준비 과정을 거쳐 대중문화에 대한 주소비층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이미지를 구현하거나 직접 유행을 선도하는 기획력을 바탕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개인적 자질 못지않게 소속사의 명성이나 기획력 또는 홍보력 등 마케팅 능력이 가수로서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가 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갈수록 고착화되면서 대형 연예기획사들의 시장지배력은 점차 강화되어 왔다.

한편, 위와 같은 전문 매니지먼트 시스템의 정착은 연예기획사들 입장에서는 연예인 육성·관리 등을 위한 투자비용 및 위험의 급증을 의미하고, 이에 연예기획사들은 투자비용 회수를 담보하고 이윤 극대화를 도모하고자 이 사건 계약과 같이 소속 연예인과 사이에 다른 매니지먼트사를 통한 연예활동을 제한하는 전속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3. 동방신기 사건에서의 판례의 태도(2009카합2869)

(*주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사소송법적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이 사건과 같이 구체적인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계약의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에서라면, ① 현존하는 권리관계에 관하여 다툼이 있고(피보전채권), ② 현저한 손해를 피하거나 급박한 위험을 막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보전의 필요성)가 인정되어야 한다.)

가. 피보전권리에 관한 판단

이 사건 계약의 주된 골격은 SM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부당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신청인들에게는 지나친 반대급부나 부당한 부담을 지워 그 경제적 자유와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로서 그 계약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가 무효이거나, 합리적 존속기간의 도과를 이유로 그 효력이 소멸되었다고 볼 여지가 상당하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신청인들은 SM을 상대로 이 사건 계약 내용에 따른 전속관계의 존속을 전제로, 신청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제3자와 공연 및 출연 기타 연예활동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는 행위의 중지를 요구하고, 나아가 신청인들이 피신청인의 관여나 개입 없이 별도로 하는 연예활동에 대하여 이의제기 기타 방해 행위의 금지를 구할 피보전권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나. 보전의 필요성에 관한 판단(2009카합2869)

이 사건의 경우, 연예인 전속계약은 당사자 사이의 고도의 신뢰관계를 전제로 유지된다 할 것인데, 기록 및 심문 전체의 취지에 의하여 소명되는 이 사건 신청 전후에 표면화된 갈등요인과 그에 대한 쌍방의 대처방식 및 행태를 보면, 신청인들과 SM 사이의 매니지먼트 계약의 토대가 되는 기본적 신뢰관계는 이미 무너진 것으로 보여 이 사건 계약의 유·무효를 논하기에 앞서 양자 간에 더 이상 정상적인 전속관계가 유지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뿐만 아니라, 국내 연예시장에서 SM이 갖는 영향력을 감안할 때 이 사건 본안판단이 장기화될 경우 그 기간 동안 신청인들의 독자적 연예활동은 크게 제약될 것으로 예상되고, 이것은 계약관계의 단순한 경제적 측면을 넘어 신청인들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활동의 자유 등 헌법적 기본권에 대해서까지 심각한 침해요소로 작용될 우려가 있다. 반면, 이 사건 가처분이 인용될 경우 발생할 유무형적 손해에 관한 SM의 주장은 대부분 소명이 없거나 부족하다.

따라서 본안소송에서 권리관계의 다툼이 최종적으로 가려지기 전까지 신청인들이 독자적인 연예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임시의 지위를 정할 보전의 필요성 또한 소명된다.

다. 인용범위

동방신기 사건에서 신청인들(김재중·박유천·김준수)이 구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의 주된 신청취지는 “전속계약의 효력을 정지한다”이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전면적인 ‘전속계약의 효력정지’는 인정되지 아니하였다. 즉 신청인들의 10억원 공탁을 조건으로, 본안판결 선고시까지 SM의 계약을 교섭하거나 자유로운 연예활동을 방해할 수 없다는 신청부분만 인용하였다,

따라서 그 범위를 넘어서 전속계약의 효력을 전면적으로 정지하거나, SM의 신청인들에 대한 연예활동 요구행위 등의 금지를 명하거나, 또는 피신청인의 금지명령 위반에 대비하여 미리 간접강제를 명할 실익이나 보전의 필요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동방신기 사건에서 나타나는 판례의 태도는 ‘전속계약의 전면적 효력정지’가 아니라, ‘본안판결선고시까지 자유로운 연예활동의 보장’으로 설명될 수 있다. 연예활동은 대표적으로 방송출연계약, 광고모델계약의 체결과 그에 따른 계약상 급부의무의 이행이라 할 것이고, 여기서의 급부의무는 다른 사람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연예인 고유의 연예활동(*법적으로는 비대체적 작위의무)이라 할 것이고, 이는 헌법상 보장된 직업의 자유, 일반적 행동의 자유의 영역이기에, 전속계약의 효력이 소송상 다투어지는 기간 동안 그러한 지위를 보장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4. 결론

동방신기 사건 이후 전속계약 분쟁에서 “전속계약 효력부인 가처분”은 중요한 소송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강다니엘씨 사건의 경우로 돌아와 보면, (인용결정의 전문이 공개된 것이 아니기에 법무법인 율촌이 제공한 보도자료에 기초하여) “강다니엘과 LM엔터테인먼트 간의 전속계약의 효력을 정지하고 LM엔터테인먼트는 강다니엘의 각종 연예활동과 관련하여 계약 교섭, 체결, 연예활동 요구를 하여서도 안 되고 연예활동을 방해하여서도 안 된다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되고 있다.

그런데 강다니엘씨의 자유로운 연예활동은 그 뒷문장인 “LM엔터테인먼트는 강다니엘의 각종 연예활동과 관련하여 계약 교섭, 체결, 연예활동 요구를 하여서도 안 되고 연예활동을 방해하여서도 안 된다”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넘어 “전속계약의 효력까지 정지”하였다는 주문에 관하여는 법적인 논란의 소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속계약의 분쟁은 민사소송을 통해 권리구제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보전처분을 통해 권리구제가 이루어지는 것(형성적 가처분)은 매우 기형적이기 때문이다.

많은 팬들이 강다니엘씨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지만, 재판을 통한 해결은 더디기만 하다. 최근 LM엔터테인먼트에서 가처분이의신청을 하였고, 이후에는 (극적인 화해가 없는 이상) 본안재판을 통해 1심, 2심이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이고, 1년 이상 2년까지도 분쟁이 장기화될 수 있다. 따라서 가처분 인용결정이 내려진 이상, 본안재판 만큼은 단심제인 중재(仲裁) 판정에 의할 것을 당사자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강다니엘씨가 원하는 것도, LM엔터테인먼트가 원하는 것도 결국 남자아이돌 평판 1위를 달리고 있는 강다니엘씨의 활발한 연예활동이 아닐까?
 

유인호 변호사 [사진=You In La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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