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중국의 대출 주도 성장…'소비 대국'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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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19-05-1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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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역전쟁 등 경제위기 내수 활성화 대응

  • 지난해 6000만명, 3년간 2억명 신규대출

  • 은행은 빚 권하고, 온라인 고리대출 기승

  • 부동산 포기한 젊은층 과시용 소비 급증

[그래픽=환구시보·이재호 기자 ]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하자 중국이 '소비 대국'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대외 악재에 따른 경기 침체를 내수 활성화로 극복하겠다는 심산이다.

올 1분기 중국의 소비지출 규모는 9조7790억 위안(약 1683조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8.3% 증가했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에 대한 소비 부문 기여도는 65.1%로 집계됐다.

관영 신화통신은 이 소식을 전하며 "소비가 국가 경제의 메인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가처분소득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를 늘리려다 보니 대출을 받아 충당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17~2018년 중국의 가계부채 잔액은 무려 14조5000억 위안(약 2500조원)이나 급증했다. 올해는 더 늘어날 게 뻔하다.

기업대출 대신 개인대출에 집중하는 금융권의 영업 방식, 정보기술(IT) 발달에 따른 온라인 대출 확대, 젊은층의 과시용 소비 수요 증가 등은 중국의 가계부채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빚 권하는 사회'가 돼 가는 중국이 불안하다.

◆3년새 신규 대출자 2억명 급증

인민은행 신용조회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권 대출을 받은 사람은 5억4000만명 수준이다. 일년 새 12.3%, 약 6000만명 증가했다.

지난 3년간 신규 대출자는 1억6000만명가량인데, 현금서비스와 대부업체 이용자까지 포함하면 2억명 정도가 새로 늘었다는 추산도 있다.

중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5년 39.2%, 2016년 44.9%, 2017년 48.9% 등으로 상승해 왔다. 2008년 17.9%에서 지난해 51.1%로 10년 동안 33%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100%에 육박하는 한국과 비교할 바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인구 수와 소득 수준 등을 감안하면 단순 비교는 무의미하다.

지난해 말 중국 최대 민영은행인 초상은행은 개인 고객 재무 현황 보고서를 통해 "전체 개인 고객 1억2000만명의 자산 총액은 6조8000억 위안으로 1인당 평균 5만6700위안"이라고 밝혔다.

이어지는 내용이 흥미롭다. 보고서는 "자산 총액의 81% 정도를 1.88%에 해당하는 고객이 보유하고 있는데 평균 233만 위안 수준"이라며 "남은 98% 고객의 평균 자산은 1만 위안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2017년 기준 중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11.2%로 미국(102.5%)을 넘어섰다.

금융정보 조사기관인 베이커(貝殼)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국의 20대는 월수입의 43.5%를 대출 상환 용도로 지출한다. 30대는 40.8%, 40대 이상은 32.0% 수준이다.

지난해 베이징 소재 대학을 졸업한 한 직장인은 "각종 대출을 상환하는 데 월급의 70~80% 정도가 소진된다"며 "대출 상환액이 월급보다 많은 경우도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그래픽=이재호 기자]


◆은행·온라인 등 도처에서 빚 권해

은행 등 금융기관도 리스크가 큰 기업대출보다 안전하고 수익성 높은 개인대출 업무에 더욱 힘을 쏟는다.

중국 은행은 기업이든 개인이든 기본적으로 담보를 잡고 대출을 해준다. 월급도 담보가 될 수 있다. 조작된 측면이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국 은행권의 대손율이 낮게 유지되는 이유다.

지난 2010년 이후 중국의 GDP 성장에 대한 투자 기여도는 34%포인트가량 하락했다. 투자의 주체는 기업이다. 경제성장률이 차츰 하락하면서 기업의 투자 여력이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중국 제조업 분야에 직격탄이 됐다. 대기업 협력업체나 중소기업의 경우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

이 같은 추세와 맞물려 은행권의 개인대출 비중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쑤닝금융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중국 15대 은행의 전체 여신 중 개인대출 비중은 2014년 30.0%로 처음 30%대로 올라선 뒤 2015년 31.7%, 2016년 35.4%, 2017년 38.4% 등으로 상승했다. 지난해의 경우 40%를 돌파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현금서비스 이용을 독려하기 위한 신용카드 발급도 늘고 있다.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는 지난 3년간 새로 발급된 신용카드가 2억5000만장을 넘는다고 전했다.

IT 기술의 발달 역시 중국 내 개인대출 확대에 일조하고 있다. 별다른 심사 없이 간편하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P2P(개인 간 거래) 금융과 온라인 대부업체 중 5곳이 상장에 성공했다. 미국 나스닥에 각각 9억 달러와 5억 달러 규모로 상장한 취뎬(趣店)과 러신(樂信)핀테크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이들 5개 상장사의 순이익은 100억 위안(약 1조7200억원)을 돌파했다.

광저우에서 의류 도매업을 하는 황(黃)모씨가 지난 1년간 이용한 모바일 대출 건수는 180건. 이틀에 한 번꼴이다.

급전이 필요할 때 빌렸다가 의류 판매 대금이 들어오면 갚는 식으로 자금을 운용하는데 최저 금리가 연 37%에 달한다. 자칫 연체가 발생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황씨가 이용하는 대출 플랫폼은 2010년에 설립된 페이따이(飛貸)다.

지난해 기자가 만난 쩡쉬후이(曾旭暉) 페이다이 창업자 겸 회장은 "본격적으로 대출 업무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1000만명의 고객을 확보했다"며 "대출액은 300억 위안(약 5조1600억원)을 넘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페이따이 모바일 앱을 열면 안면 인식 기술로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업계 최초 사례다. 신분증이나 사업자 증명서를 스캔하면 빅데이터 기반의 리스크 심사 과정을 거쳐 대출 가능 여부가 결정된다.

대면 심사도, 언더라이팅(서류 기반 심사)도 없다. 대형 은행들도 긴장감을 느낄 만한 사업 모델이다.

◆대출 부담에 짓눌려, 소비여력 지속될까

젊은층의 과시용 소비 욕구는 개인대출 규모가 갈수록 증가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한 채에 수십억원을 호가할 정도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집을 사겠다는 의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자동차와 고가의 의류를 구매하고 해외 여행을 가는 데 막대한 금액을 소비하고 있다.

최근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 '폼나는 인생의 기준'이라는 게시물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게시물은 30세에 BMW 320Li(6000만원), 32세에 포르쉐 718(1억원), 34세에 아우디 Q7(1억1000만원), 36세에 마세라티 르반떼(1억3000만원), 38세에 벤츠 S400L(1억6000만원)를 타는 게 성공한 인생의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말 기준 대출자 1인당 평균 대출액은 48만 위안(약 8300만원) 정도다. 중국 인구로 환산하면 1인당 3만4000위안(약 590만원)의 빚이 어깨를 누르고 있는 셈이다. 대졸 초임 연봉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이다.

중국 GDP 성장에 대한 소비 기여도는 2015년 66.4%, 2016년 64.6%, 2017년 58.8% 등을 기록하다가 지난해 76.2%로 최고치를 찍었다. 올해 1분기 수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65.1%로 뚝 떨어졌다.

중국의 '대출 주도 성장'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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