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레이와시대]저무는 '헤이세이' 30년…파란만장했던 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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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회 기자
입력 2019-04-2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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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①파란의 헤이세이...원년에 절정 이른 거품 터져 장기불황 수렁으로

일본이 오는 30일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끝내고 다음달 1일 '레이와(令和)' 시대를 맞는다. 1989년 1월 8일 아키히토 일왕이 즉위하면서 시작된 헤이세이 시대는 '나라 안팎의 평화가 이뤄진다'는 연호의 뜻대로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였지만, 경제적으로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대혼란의 시대이기도 했다.

아키히토 일왕이 오는 30일 일본 헌정 사상 처음으로 생전 퇴위하면, 이튿날 나루히토 왕세자가 즉위해 레이와 시대를 열게 된다. '아름다운 조화'를 뜻한다는 레이와 시대의 일본 경제 전망도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 1일자 석간신문 1면에 일본 정부가 레이와를 새 연호로 결정했다는 소식과 함께 유일한 별도 기사로 제조 대기업들의 체감경기 악화 소식을 다뤘을 정도다. 앞으로 두 차례에 걸쳐 헤이세이 시대의 일본 경제를 되돌아보고, 레이와 시대의 일본 경제를 조망해본다.<편집자주>

나루히토 왕세자(왼쪽부터)와 아키히토 일왕, 미치코 왕비[사진=EPA·연합뉴스]

아키히토 일왕이 즉위한 1989년 1월 일본 경제는 안팎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버블(거품)이 최고조로 치닫는 중이었지만, 붕괴 가능성을 우려한 이는 별로 없었다. 일본의 경제 호황 속에 주식,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그해 가을 소니는 미국 할리우드 맹주 가운데 하나인 컬럼비아를 인수했고 미쓰비시토지는 뉴욕 랜드마크인 록펠러센터를 손에 넣었다. 일본 기업들이 해외로 생산거점을 확대하고, 대형 인수합병(M&A)에 열을 올리자 미국에서는 일본 위협론이 팽배했다.

◆헤이세이 원년 거품 절정..."日증시 파란만장 30년"

헤이세이 바람은 오래 가지 못했다. 도쿄증시 간판지수인 닛케이225는 3만200선에서 새 시대를 맞아 1989년 12월 29일 사상 최고인 3만8915선에 도달한 뒤 꺾이기 시작했다. 지수는 지난 26일 2만2258.73으로 헤이세이 시대 마지막 거래를 마쳤다. 30년 새 26% 추락한 셈이다. 니혼게이자이는 헤이세이 시대의 일본 증시를 파란만장했던 30년이라고 평가했다.

닛케이225지수는 1990년부터 하루 낙폭이 1000포인트를 넘더니, 4월에는 2000포인트 가까이 빠지는 날도 있었다. 블룸버그는 당시 일본 증시의 거품 붕괴를 대공황의 시작을 알린 1929년 미국 뉴욕증시 대폭락 사태에 빚댔다. 그러면서 가장 충격적인 건 일본 증시가 30년이 지나도록 거품 붕괴 이전의 고점을 회복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1950년대 들어 대폭락 이전의 고점을 꿰뚫었다.

1993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비자민당 연립정권이 출범하면서 증시 하락세가 다소 진정되는 듯 했다. 38년 만에 이룬 정권 교체가 경기회복 기대감을 자아냈다. 하지만 기반이 약한 비자민당 정권은 정정불안 속에 1996년 자민당에 밀리게 된다. 이듬해 자민당 정권의 소비세율 인상(3→5%) 조치는 경기를 다시 냉각시켰고, 금융기업들의 부실채권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다. 일본 금융사에서 1997년이 '악몽의 해'로 통하는 이유다.

그해 7월 태국 바트화 폭락사태로 시작된 아시아 외환위기와 맞물려 11월에 산요증권, 홋카이도척식은행, 야마이치증권 등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이 여파로 같은 해 닛케이225지수는 21% 추락했다. 이듬해에도 일본장기신용은행, 일본채권신용은행 등의 파산행렬이 이어졌다.

일본의 주요 경제지표도 1997년을 정점으로 이듬해부터 곤두박질쳤다. 지금까지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디플레이션,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의 악몽이 이때부터 본격화한 셈이다.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이다. 앞으로 물가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소비 및 투자 위축에 따른 경기불황으로 이어진다.

1999년에는 대형은행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비롯한 재정부양과 일본은행(BOJ)의 '제로(0)금리' 선언 등 극약처방에 힘입어 닛케이225지수가 37% 가까이 반등했지만, 이듬해부터 다시 시련이 몰려왔다.

2000년 3월 미국에서 정보기술(IT) 거품이 터지고, 이듬해 뉴욕에서 9·11테러가 일어나면서 지수는 약 17년 만에 1만선에서 내려왔다. 그 뒤에도 이라크 전쟁(2003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본격화한 리먼브러더스 파산(2008년), 동일본 대지진(2011년) 등 안팎의 악재들이 일본 증시를 괴롭혔다. 
 

[사진=AP·연합뉴스]


◆'세계 2위 경제국' 中에 내줘..."개혁 않고 쇼와 유산만 탕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2년 말 집권할 때 내건 '디플레이션 탈출' 공약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BOJ가 제로금리에 이어 자산매입 규모(양적 완화)와 대상(질적 완화)을 대폭 늘려 돈을 푸는 2차원 완화, 마이너스 금리 등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침체의 골이 그만큼 깊었다는 방증이다.

헤이세이 시대 초 자산거품이 터진 뒤 일본 경제는 장기불황 속에 급격히 뒷걸음질쳤다. 일본은 1968년 독일(당시 서독)을 제치고 미국 다음 가는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지만, 2010년 이 자리를 중국에 내줬다. 이때부터 지난해까지 8년 동안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0.9배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미국은 1.3배, 중국은 2배, 독일·영국은 1.1배로 GDP를 키웠다. 세계 5위권에서 일본만 역성장한 셈이다.

일본은 줄어든 GDP를 부채로 메웠다. 이 결과, GDP 대비 부채 비율이 253%(2017년 기준)로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아졌다. 경기부양을 위한 초저금리 환경이 국채 발행을 부추겼다. 일본의 국채 발행잔액은 올해 말 897조 엔(약 9318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헤이세이 시대 들어 6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 된다.

일본 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져 있는 동안 소니, 샤프, 파나소닉 등 한때 일본 위협론을 주도하던 간판기업들도 뒤안길로 밀려났다. 일본 주요 기업들이 요 몇 년간 BOJ의 통화부양에 따른 엔화 약세(엔저)로 사상 최대 수익을 내고 있지만, 첨단기술 부문의 글로벌 경쟁력을 둘러싼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불황의 늪에 빠져 혁신을 게을리 한 탓이다.

일본 유력 출판사인 고단샤가 내는 온라인 경제매체 현대비즈니스는 최근 일본이 헤이세이 30년 동안 세계 2위 경제국 자리를 중국에 내준 건 근본적인 개혁을 소홀히 하고, 최고 호황을 맞았던 쇼와시대(1926~89년)의 유산을 탕진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레이와 시대에 지금까지보다 더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일본 경제의 파탄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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