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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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 기자
입력 2019-04-1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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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진 정치사회부장]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에 빨간불이 켜졌다.
 불과 몇 달 사이에 골든 크로스 선이 무너지며 급전직하한 것은 ‘촛불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뀐 탓이 크다. 오랜 경제 침체와 최근 잇따라 터진 인사 논란으로 일부 지지층과 중도층이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진보정치 진영을 향해 뼈아프게 쐐기로 박혔다. 국민의 눈높이는 진보와 보수에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 도덕적 우월성을 정치적 생명으로 내세웠던 한국사회의 진보정치 진영이 스스로를 올가미에 얽어맨 결과다.

‘자기 눈에 들보가 가득 찬’ 보수정치권은 비합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정치공세를 퍼붓고 있다. 반면 ‘티 하나밖에 없다'고 여기는 문재인정부로서는 다소 ‘억울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역시 자업자득이다.

반칙과 적폐로 얼룩진 우리 사회에 공정과 정의를 다시 세우고 새로운 100년으로 나아가겠다는 문재인정부의 다짐은 불과 출범 2년도 안 돼 ‘공수표’가 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게 하고 있다.

출범 초부터 이어지고 있는 인사 논란은 인사검증시스템이라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에서 비롯됐다. 폭 좁은 인재풀 속에서 오직 ‘자기 사람’만을 자리에 앉혀야 한다는 강박, 이른 바 패권주의가 낳은 참사는 아닌지 겸허하게 돌아봐야 한다.

친노 세력에서 친문 세력으로 이어지는 폐쇄성 또는 배타성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만기친람, 고위직 낙하산 인사, 야당과의 협치 실종, 언론 및 국민과의 불통은 민주당이 과거 야당 시절 단골 메뉴처럼 지적해오던 보수정권의 구태다.

국민의 눈은 문 대통령과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국민 앞에 ‘잘못했다’는 대통령의 진정성 어린 사과 한 마디를 원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자신의 팔을 베어내는 아픔을 감수하며 국민 앞에 공정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국가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문 대통령이 국민에게 한 약속은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아니었던가.

문재인정부는 국민에 의해 세워진 ‘촛불정부’다. 핵심국정과제인 소득주도성장 경제정책과 포용국가 비전은 분배냐 평등이냐는 경제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만인을 위한 공공성과 공동선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특히 사회양극화, 경제불평등 심화와 맞물려 공정과 정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공적 질서의 원칙에 대해 엄정한 새로운 정치도덕을 확립해야 한다.
 
요즘 가톨릭사제가 주인공인 코믹수사극 '열혈사제'라는 드라마가 인기몰이중이다. 탐욕으로 가득찬 우리 사회 권력층을 향해 통쾌한 주먹 한방을 날리는 분노의 사제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열광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도덕과 공정, 정의에 목말라했음을 방증한다. 

주인공 김해일 신부는 악을 응징하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최소한의 정의 속에서 사람들이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최소한의 정의'란 적어도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예의, 가장 기본적인 도덕과 상식,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 국가가 아닐까. 

전 세계에 ‘정의 신드롬’을 일으킨 하버드의 정치철학 교수 마이클 샌델은 공동체주의자다. 샌델은 건강한 공동체가 시민의 행복을 지켜준다고 주장하며, 공동체에 대한 연대나 의무를 강조한다. 즉 정의는 공동체를 벗어나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다.

샌델 교수는 "도덕적 딜레마를 피하려 하지 말고, 직면해서 고민하는 것이 곧 '정의'"라고 밝혔다. 그는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몇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공정한 사회적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재인정부가 이제 2기를 맞았다. 레임덕이 시작되는 집권 3년차 정부라기보다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새정부다.  늦지 않았다. 위기가 기회다.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다. 정부 출범 직후 문 대통령이 거침없이 보여준 개혁과 국민을 하늘로 섬기는 리더십은 얼마나 감동을 자아냈던가.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두터운 보수층이 건재하고 있다. 개혁은 현재를 유지하려는 세력들의 강력한 관성의 힘에 의해 가로 막혀 더디게 나아가고 있다. 적폐청산과 개혁의 피로감에 시달리는 지지층의 이탈을 최소화하면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개혁의 수위를 정하고 국민의 힘을 모아 한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국민만 바라보며 가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이사야서 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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