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in]문화창고 된 창동·달큰한 벚꽃향 분홍비에 취하는 경화역…'꽃도 예술도 '봄의 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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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창원=기수정 기자
입력 2019-03-1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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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에 봄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골목골목 문화예술의 향기가 흘러넘치는 창동 예술촌이 그렇고, 빼곡히 들어찬 벚꽃이 꽃대궐을 이루는 진해 경화역이 그렇다. 

살랑살랑 봄바람 맞으며 그저 천천히 걷고 천천히 둘러본다. 예술촌이 주는 울림은 깊고, 벚꽃이 선사하는 풍경은 싱그럽다. 가슴이 뛴다.

◆전성기 무색한 황량함 가득했던 창동, 제2의 전성기를 누리다
 

창동 불종거리에서 부림시장까지 이어지는 155m 거리에 전 세계인 2만3000명의 이름이 새겨진 '상상길'[사진=기수정 기자]

마산 창동은 한때 경남에서 상권이 가장 번성했던 곳이다.

1760년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 '조창(漕倉)'이 창동에 들어섰다. 관원과 상인이 오가며 상권의 핵심을 이룬 창동은 250년 넘게 마산 합포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창동의 전성기는 계속됐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수많은 젊은이가 모여들었다. 거리에는 최신식 레스토랑과 카페, 유행하는 옷가게가 들어섰다. 

'경남의 명동' 창동의 전성기는 계속될 듯 보였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마산의 공장이 중국으로 옮겨 가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선 급격히 몰락했다. 문화와 낭만이 넘치던 거리 창동은 그렇게 생기를 잃었다. 

한때 원도심의 부흥을 이끌었던 창동을 이대로 둘 순 없었다. 창원시는 2011년, 540여억원을 쏟아부어 도시재생사업을 단행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텅 빈 상점만 덩그러니 남은 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뻔했던 거리는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이 살렸다. 지역 예술가들이 창동 골목 골목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고, 회색빛 거리는 서서히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떠나갔던 젊은이들도 다시 이곳을 찾았다. 

마산 출신 세계적 조각가 문신 선생을 재조명하는 '문신예술골목'이 조성됐고 예술의 도시 마산을 증언하는 '마산예술흔적골목'도 생겼다. 여기에 예술가의 창작 공간과 상가를 융합한 '에꼴드창동골목'이 더해졌다. '창동'이 예술촌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창동 예술촌에는 젊은 작가의 실험적인 작품부터 나이 지긋한 화가의 수채화까지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가 많다.

색색의 물감이 묻은 앞치마를 두르고 밖을 나선 화가의 모습도, 공방과 아틀리에 유리창 너머로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 벽화와 조형물을 감상하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한낮의 북적임이 사라진 새벽, 고요한 낭만을 품은 창동 예술촌도 퍽 흥미롭다. 은은한 불빛, 그리고 바람소리를 오롯이 느끼며 천천히 걷는 내내 가슴은 벅차오른다. 

이름은 예술촌이지만 걸음마다 역사와 문화를 만나는 것 또한 창동의 매력이다.

1955년에 문을 연 서점 '학문당', 고소한 팥빵 내음이 코끝을 자극하는, 60년 역사의 '고려당'도 그대로 남았다. 

창동 불종거리에서 부림시장까지 이어지는 155m 거리에 전 세계인 2만3000명의 이름이 새겨진 '상상길'도 들러볼 만하다. 

한국관광공사가 2015년 '당신의 이름을 한국에 새겨보세요'라는 글로벌 캠페인을 통해 조성한 이 길은 연인과 함께 걷기 좋다고 해 '쌍쌍길'이라고도 불린다.

마산의 의로운 역사도 빼놓을 수없다. 1960년 이승만 정권에 대항한 3·15의거의 발원지도, 1979년 10월 유신 독재의 종말을 가져온 부마민주항쟁이 시작된 곳도 마산이다. 

지금으로부터 250여년 전, 조창으로 대동미를 운반하는 수레가 다녔던 골목길 '250년길'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산의 원도심을 지키며 르네상스를 꿈꾸던 멋이 어우러진 골목길은 이렇게 메마른 우리네 감성을 촉촉히 적신다.

◆은은하거나 화려하거나···'꽃대궐'에 마음 뺏겼네···진해 경화역
 

창원시는 폐기차를 사들여 경화역 한쪽에 전시했다. 내부는 전시관으로 꾸몄다.[사진=기수정 기자]

'벚꽃'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진해에는 약 36만 그루의 왕벚나무가 식재돼 있다. 군항제가 열리는 4월 초순, 고즈넉한 항구도시 진해는 화려한 꽃대궐을 이룬다. 

마산을 떠나 진해 경화역으로 간다.

길게 이어진 철길, 화사한 벚꽃이 선사하는 감동이 진한 경화역은 사실 뼈아픈 역사를 품었다.

일제의 대륙 침략을 위한 핵심적 수단으로 개발·발전된 우리나라 철도 교통······. 경화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 강점기에 해군 기지의 유지와 진해항의 연결을 위해 마산~진해 간에 연결된 경화역은 1926년 11월 개통했다.

이후 1987년 지역 주민 등이 역에 근무하며 승차권을 발매하는 을종 승차권 대매소로 격하된 이곳은 2006년 통근 열차가 없어짐에 따라 완전히 역의 기능을 상실했다. 

역 본연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사람은 열차가 운행되던 당시보다 오히려 더 몰려든다. 철길을 따라 쭉 펼쳐진 벚꽃이 터널을 이루어 안민고개나 진해 여좌천 다리와 함께 벚꽃 사진명소로 유명세를 타는 덕이다.

벚꽃이 만발한 철길 위를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경화역은 연분홍빛 벚꽃비가 내리는 시기에 더 환상적이다.

경화역에서 세화여고까지 이어지는 약 800m 철로변 벚꽃은 여좌천보다 한가해 연인들과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인기 만점이다. 여기에 군항제 기간에는 기차가 운행돼 서정적 풍광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창원시는 이곳을 '여행 명소'로 꾸몄다. 폐기차를 사들여 경화역 한쪽에 전시했고 내부는 군항제 전시 홍보관으로 꾸몄다. 작은 경화역사도 설치했다. 
 

보타닉 뮤지엄에서 본 복수초[사진=기수정 기자]

벚꽃만 보기 아쉽다면 천자봉 아래 자리한 진해 보타닉 뮤지엄도 들러볼 만하다. 뒤엔 장복산과 천자봉이, 앞엔 진해 바다가 한눈에 보여 가슴 트이는 나들이를 할 수 있다.

△암석원△이끼정원△사각정원△솟대정원△꽃대궐△온실△행복의길△하늘길 등 주제별 정원을 비롯해 통창 밖으로 꽃과 나무를 볼 수 있는 카페와 야외 정원은 '힐링명소'로 인기몰이 중이다.

변산 바람꽃, 복수초 등 계절별로 피어나는 자생 야생화와 진귀한 식물이 자라는 이곳에서는 계절별 전시회와 음악회, 시 낭송회, 체험 프로그램, 교육 등도 다양하게 진행된다.
 

경화역 기차 내부에 마련된 전시물[사진=기수정 기자]

낭만이 있는 경화역 [사진=기수정 기자]

창동 예술촌의 한 꽃집[사진=기수정 기자]

창동 예술촌 곳곳에 그려진 벽화가 예술촌의 낭만을 더한다.[사진=기수정 기자]

1955년 문을 연 학문당은 지금도 영업 중이다.[사진=기수정 기자]

조창으로 대동미를 운반하는 수레가 다녔던 '250년길'[사진=기수정 기자]

3.15의거 발원지 동판[사진=기수정 기자]

변산 바람꽃[사진=기수정 기자]

분홍빛을 띄는 이스라지[사진=기수정 기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경화역 [사진=창원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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