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북미회담이 열리는 하노이의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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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한국베트남학회 회장(조선대 교수)
입력 2019-02-2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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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정 분위기·각국 취재 열기에 들떠 있는 하노이"

  • "베트남전 적국·우방국을 동시에 초대한다는 의미"

  • "많은 전쟁 겪은 베트남, 평화의 절실함 알고 있어"

[안경환 한국베트남학회 회장(조선대 교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다. 정상회담 의제, 베일에 싸인 일정 등 세인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하노이는 들떠 있다. 구정 분위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데다 세계 언론인들이 구석구석을 찾아 북미정상회담 분위기를 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직접적인 베트남 전쟁 개입을 유도했던 통킨만 사건(1964년 8월 2일)이 발생한 북 베트남, 그 가운데서도 하노이는 심장부에 있다. 1957년 미국의 특수부대 파병으로 고조되던 전운은 1963년 12월 베트남 호찌민 정부가 미군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결의하면서부터 날로 격화됐다. 이후 1973년 1월 27일 파리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전쟁은 계속됐다. 중국은 베트남 전쟁에 연인원 32만명을 지원했고, 204비행대(203명)을 파병한 북한에서는 조종사 12명과 정비사 2명을 잃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각각 호찌민 정부의 적과 우방이었던 미국과 북한이 하노이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셈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북한은 현금(5000만 달러), 대포, 수송차량, 피복류 등 전쟁 물자 지원과 베트남 대학생 2000여명에 대한 북한 유학지원, 산업실습생 교육·훈련 등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끼리의 유대차원에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베트남은 북한군 사상자 14명에 대해 열사 칭호를 내렸고 박장 성에 북한 열사들을 안장했다. 2002년 9월 김양점 북한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당시 북한군 유해 14구를 모두 북한으로 송환하여 현재는 묘비만 존재한다. 베트남은 지금까지 북한 핵문제와 미사일 발사 문제 등에 관해서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대화를 통한 핵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지지하며, 남북 정상회담 및 남북 공동선언을 전폭 지지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지로 예상되는 하노이의 정부 영빈관 건물로 프랑스가 건축했다. 길 건너에는 또 다른 회담장 후보지인 메트로폴 호텔이 있다. [사진=안경환 교수 제공]

미국과는 1995년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외교관계를 정상화했다. 이후 2000년 11월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2006년 11월에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016년 5월에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오바마 전 대통령은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먹는 쌀국숫집에 들러 식당의 유명세를 더해주었고 베트남 사람들의 반미감정을 없애주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후 4번째로 베트남을 방문하는 미국 대통령이다. 
 
​갖가지 억측 속에 진행되는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 베트남 사람들은 흥미로운 내기를 걸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 대중음식점을 찾을 것인가? 김정은 위원장이 호찌민 주석의 향리를 방문할 것인가? 또는 향후 북한이 개방화를 단행할 경우 미래형 경제발전 모델인 하이퐁 산업단지와 할롱만 관광지를 둘러볼 것인가? 북한은 베트남의 ‘도이머이’ 정책을 모델로 하는 개방화로 외국인 투자유치를 통해 경제적인 궁핍에서 벗어나게 될 것인가? 등에 대해서 말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회담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를 변함없이 유지하면서도 시장 경제를 도입해 경제개발에 성공한 중국과 베트남의 경제발전상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번 베트남 방문을 계기로 북한에 그러한 발전상을 전수해주고 싶은 것이 모든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인 것 같다. 어떤 경우를 위해서도 베트남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서도 북·미간 간접 전쟁이 전개됐던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열리는 북·미 회담에 자못 귀추가 주목된다.

회담 일정이 다가오면서 하노이는 분주해졌다. 세기의 회담을 성공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두 정상이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요소요소마다 도로 보수, 간판 수리, 경비 강화 등을 위해 인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하노이는 베트남의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던 천년고도로써 역사와 전설이 살아 숨쉬고 있는 도시다.
 

베트남의 리(李) 왕조를 세운 리꽁우언(이태조·Ly Thai To) 동상. 베트남 하노이 시청과 영빈관 등과 함께 하노이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 [사진=안경환 교수 제공]

베트남의 리(李) 왕조를 세운 리꽁우언은 1010년에 다이라 성(城)으로 천도했고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었다. 일단 천도하면서는 다이라 성의 이름을 탕롱 성으로 바꾸었다. 탕롱은 승용(昇龍)의 베트남어 발음으로 용이 승천하였다는 뜻이다. 리꽁우언이 건국후 새로운 도읍지를 찾아다니다가 다이라 성에 이르자 황용이 나타나 하늘로 올라가는 현상을 보고 이를 길조라고 여겨 탕롱으로 개칭하고 도읍지로 정했다. 

승천한 용이 동해바다로 날아가다가 내려앉은 곳이 할롱만이라는 베트남 최고의 절경이다. 할롱만에는 용의 비늘이 1969개의 기암괴석으로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1994년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공인한 베트남 최고의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후 여러 이름을 거치던 탕롱은 응우옌(阮) 2대 임금인 민망 때에 하노이 성(省)으로 행정 구역이 개편됐는데 그것이 바로 현재 하노이다. 

하노이는 ‘평화의 도시’이다. 수많은 전쟁을 겪은 베트남은 평화의 절실함을 잘 알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전쟁의 잔학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베트남학의 대가인 마이꾸옥리엔 교수는 “민족 문제는 외세에 의존하지 말고 민족끼리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한다. 베트남 최초의 외교부 여성 차관을 역임한 베트남친선협회 총연합회의 응우옌프엉응아 회장은 회담 결과에 매우 큰 기대를 나타내면서 “회담이 성공하고 북한이 베트남의 도이머이와 같은 개방화 정책을 추구한다면, 잘사는 나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또 양국 정상이 상대국의 역사와 국제관계에 있어서 다양한 입장이 있음을 충분히 고려한다면, 하노이에서의 회담은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노이는 이제 다시금 ‘탕롱-하노이’로 불리기 시작했다. ‘탕롱-하노이’는 하노이 정도 1000주년 기념해인 2010년도부터 새롭게 출현한 이름이다. 용이 승천한 것처럼 '하노이여 승천하라'는 베트남 사람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그래서 하노이는 신령한 도시다. 베트남은 전통적 우방인 북한 그리고 필사적으로 싸웠던 과거의 적을 동시에 안방에서 맞이하게 됐다. 북·미 회담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협상 결과에 달려 있다. 이제 두 지도자가 하노이에서 용이 되어 승천할 것인지 아니면 회담이 결렬되어 이무기가 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하노이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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