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스카이 캐슬'과 비현실적 결말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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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창희 미디어미래연구소 실장
입력 2019-02-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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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창희]


인간이 ‘이야기’라는 양식을 발견한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조현욱 역, 서울: 김영사)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종족들을 물리치고 살아남은 가장 중요한 이유를 서사를 발명하는 힘이라고 규정한다. 서사는 신화와 종교를 만들어내 인류를 결속시켰다. 인류는 그 힘으로 세상의 주인이 되었다. 이야기는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영화와 드라마라는 형식으로 이어져 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익숙한 이야기의 형식은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는 드라마일 것이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 '킹덤'의 편당 제작비가 20억원 들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드라마 시장의 경쟁력은 제작비 규모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게 되었다. 이 와중에 최고 시청률 23.8%를 기록한 드라마가 나왔다. 바로 '스카이 캐슬'이다. 편당 제작비가 채 4억원이 되지 않는 드라마가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스카이 캐슬'이 우리에게 환기해 주는 것은 삐뚤어진 한국적 욕망이다. 자식 교육을 통해 부모의 욕심을 채우려는 세태는 한국인의 불편한 민낯이다. 그럼 왜 많은 한국인들이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드라마에 열광했을까? 그것은 '스카이 캐슬'이 한국적 욕망을 제대로 포착해서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불편한 이야기라도 정확하게 재현해 내면 인간에게 쾌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기원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의 기능을 얘기하면서 흉한 동물이나 시신처럼 불쾌감을 주는 대상일지라도 정확하게 그려 재현한다면 인간에게 쾌감을 줄 수 있다고 얘기한다(천병희 역, '시학' 37쪽, 서울: 문예 출판사). 좋은 서사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재현이며, '스카이 캐슬'의 성공 요인은 한국사회의 현실을 잘 포착해 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좋은 서사는 그 사회의 욕망을 잘 반영해 낸다. 하지만 욕망을 잘 반영해 낸 서사가 모두 사랑 받지는 않는다. 사랑 받는 서사는 사랑 받을 수 있는 형식 안에 담겨야 한다. 안방에서 드라마를 보는 일이 더 이상 범상한 풍경이 아닐 만큼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였지만 여전히 16부작에서 20부작 사이의 장편드라마는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형식이다. 이 내러티브 형식이 과거만큼 사랑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만 있지는 않다. 그 형식 자체가 자기 혁신에 소홀히 해온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스카이 캐슬'에 아쉬움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출생의 비밀이 포함되어야 하는가? 악한 인물은 처벌 받고 죄지은 인간은 회개해야 하는가? 이러한 전형을 따라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드라마라는 대중문화가 가지고 있는 미학적 가치와 관련되는 영역이며, 이 미학적 가치가 서사가 사랑 받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드라마라는 형식이 계속 사랑 받기 위해 중요한 것은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구조를 얼마나 정확히 표현해 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스카이 캐슬'은 잘 보여주었다. 이는 글로벌화하고 있는 미디어 시장에서 국내 콘텐츠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를 보여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진부한 형식에 의존해야 하는가는 '스카이 캐슬'이 남겨준 숙제다. 진부한 형식을 탈피하는 문제는 막대한 투자비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시청자가 기대하는 수준과 드라마라는 대표 서사가 얼마나 진부한 관성에 의존해 왔는지를 성찰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문제다.

권선징악과 개과천선은 시청자들이 '스카이 캐슬'에 바라는 결말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시청자들이 '스카이 캐슬'에 바란 것은 납득할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인 결말이었을 수 있다. 불안에 대한 집착은 전형에 의존하게 만들고, 이는 피로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오래된 장르라고 해서 오래된 형식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오래된 형식일수록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 지금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드라마라는 장르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이야기의 역사는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야기를 담아내는 미디어라는 형식은 혁신과 진화를 거듭해 왔다. 관습의 혁신은 불안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불가피하다. 이는 드라마뿐 아니라 모든 미디어 형식에 해당되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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