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 to G7]'팍스아메리카나'의 종언?.."美패권시대는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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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회 기자
입력 2019-02-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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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립주의 내세운 트럼프?...통상·기술·금융·에너지 패권 강화 노리는 미국

  • 무역전쟁 치르는 중국 "미국·달러, 2035년에도 패권 유지할 것" 몸 낮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AP·연합뉴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시대는 끝났다."

2016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하자 곳곳에서 쏟아진 말이다. '미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를 앞세워 고립주의를 강조한 트럼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됐으니, 미국이 전 세계를 호령하는 시대가 종언을 고하게 됐다는 의미였다. 탄식이 터져나오기도 했고, 화색이 돌기도 했다.

탄식은 불안감에서 비롯됐다. 미국이 세계 패권을 내려놓으면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미국의 독주를 못마땅해한 쪽은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세를 불릴 절호의 기회를 만났다는 판단에서다.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팍스시니카(Pax Sinica) 시대가 열리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했다.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르면서 불안과 기대는 모두 현실이 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우려했던 대로 일방주의 행보를 가속화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 등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를 주도한 국제기구의 분열을 조장하고,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전지구적 노력의 결실인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한 게 대표적이다.

그 사이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키우며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핵심 사업인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건설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트럼프의 반무역 행보에 맞서 자유무역의 수호자로 거듭나기도 했다.

그렇다면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는 정말 저물고 있는 걸까. 상당수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미국이 여전히 패권국으로서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은 반무역 공세로 세계 통상질서를 흔들고 있고, 첨단기술 경쟁에서도 상대적 우위에서 공세를 취하고 있으며 글로벌 금융시장 또한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국무원 싱크탱크인 발전연구센터(DRC)는 미국과의 고위급 무역협상을 이틀 앞둔 지난 12일에 낸 보고서에서 미국과 달러가 2035년에도 패권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통상패권...트럼프발 무역전쟁 세계 통상질서 흔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미국이 일본과 함께 주도해 맺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다. 캐나다, 멕시코와 재협상을 통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으로 갈아치웠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개정했다. 일련의 무역협정이 미국에 피해를 준다는 게 이유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협정을 뜯어고칠 때 경제·외교적 압박을 지렛대로 활용했다. 폭탄관세 위협과 방위비 부담 확대 압력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이 불공정 행위로 막대한 무역흑자를 거두며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명분에서다. 지난해 본격화한 대중 무역전쟁을 통해 연간 2500억 달러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폭탄관세를 물렸다. 무역전쟁에서는 승자가 있을 수 없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지만, 미·중 무역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건 미국이다. 중국 또한 수세적인 입장에서 협상에 임하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산 수입품에 똑같이 추가 관세를 물리는 식으로 대응했지만, 미국이 연간 257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을 추가 폭탄관세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데 반해 중국은 여지가 별로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불사하는 반무역 공세로 세계 경제의 성장판 역할을 해온 자유무역질서를 뒤흔들면서 제시한 메시지는 뚜렷하다. 손해 보는 거래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기술패권...미·중 무역전쟁은 하이테크 전쟁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은 기술전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1974년 제정한 통상법 301조를 근거로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를 문제 삼아 보복 조치를 정당화한다. 주목할 건 미국이 중국의 첨단산업 육성정책인 '중국제조 2025'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중국 정부가 미국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해 첨단기술을 훔치고, 부당한 지원을 통해 자국 기업을 육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주항공, 정보통신기술(ICT), 로봇공학, 반도체, 전자부품 등 중국 첨단산업을 폭탄관세 부과 대상으로 삼은 이유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통신장비회사인 화웨이와 ZTE 등 중국 기업들을 표적으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니얼 그로스 유럽정책연구센터(CEPS)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위험천만한 무역전쟁을 벌인 게 지식재산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구경제(old economy)의 무역전쟁에선 하드웨어 수출입이 관건이었지만, 신경제(new economy) 무역전쟁에서는 지식재산권을 기반으로 한 소프트웨어가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최첨단 기술의 경쟁터인 '제4차 산업혁명' 시대는 핵심 기술의 지식재산권을 가진 이가 승리하고, 승자가 모든 걸 갖는 기술 경제 체제다. 트럼프의 대중 무역전쟁은 미래 기술 패권을 쥐려는 미국의 야심을 보여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금융패권...연준만 바라보는 글로벌 금융시장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금융 패권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미국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터지면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시장이 무너졌고, 이는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을 비롯한 파생상품시장을 쓰러뜨렸다. 급기야 2008년 9월 당시 미국 4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본격화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금융위기가 터지자 미국의 금융 패권, 달러 패권이 흔들릴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미국의 위상은 오히려 더 탄탄해졌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소방수로 나서면서다. 연준은 금융위기가 터지자 기준금리를 제로(0)로 낮추고 국채와 MBS를 대거 매입해 돈을 푸는 양적완화를 통해 경기부양을 주도했다. 다른 주요 중앙은행들도 연준의 뒤를 따랐다. 연준을 중심으로 한 주요 중앙은행들의 공조는 세계 경제를 금융위기 수렁에서 건져냈지만, 금융시장의 왜곡도 초래했다.

그 사이 세계 금융시장은 연준의 행보, 관련 인사들의 말 한마디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연준이 경기부양 기조를 재확인하면 안도했고 양적완화 축소·중단, 금리인상 등을 신호하거나 거론하면 공포에 떨었다. 2013년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 이른바 '테이퍼링'을 언급한 뒤에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긴축발작(taper tantrum)'이 일어났을 정도다.

◆에너지패권...'셰일혁명' 세계 최대 산유국 부상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2014년 6월 배럴당 110달러를 훌쩍 웃돌던 게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이듬해 초 50달러 선이 무너지고, 2016년 초에는 20달러선까지 추락했다. 국제유가는 여전히 2014년 정점 수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국제유가가 급락한 배경엔 미국이 있었다. 미국이 셰일원유 증산에 박차를 가하면서 원유 공급량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셰일은 단단한 진흙 퇴적암층이다. 여기서 원유나 천연가스를 추출하려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 셰일 개발은 한동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수압파쇄법'이라고 하는 프래킹 공법이 개발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프래킹은 물과 모래, 화학약품 등을 섞은 혼합액을 고압으로 분사해 퇴적암층을 깨는 공법이다. 비용 부담이 극적으로 낮아지면서 미국에서 셰일유전 개발 바람이 일어났다.

셰일혁명 덕분에 미국의 산유량은 최근 10년 새 2배 이상 늘었다. 이 결과 미국은 지난해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다. 미국의 부상에 오랫동안 세계 원유시장을 장악해온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러시아 등과 손잡고 영향력 확대에 나섰지만 미국에서 쏟아지는 원유를 감당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의회는 최근 OPEC의 가격담합 등 반독점 행위를 법무부가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노펙(NOPEC)' 법안의 입법을 추진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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