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SKY캐슬’과 메리토크라시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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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민 기자
입력 2019-02-1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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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상민 기자]


광풍(狂風)과도 같았던 드라마 ‘SKY캐슬’이 막을 내렸다. 갑자기 모든 등장인물이 선해지는 다소 황당한 결말로 시청자들을 당혹감에 빠뜨리긴 했지만, 이 드라마가 대한민국 엘리트 사회의 속살과 허상을 까발렸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SKY캐슬의 의사, 법률가 등 주인공들은 그들만의 견고한 성을 쌓는다. 그 과정에서 자녀들에게 상상할 수 없을 강도의 학업을 강요한다. 의학·법학·경제학·정치학은 근대세계의 성장과 밀접한 학문이다. 중세에 기술직으로 천대받던 이 직업들이 현대에 들어서도 강한 영향력을 가진 이유에는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교육도 한몫했다.

법과 의학을 모르고는 제국의 힘이 뻗어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집중 양성된 의사, 법률가라는 직업이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주목 받는 이유 중 하나다.

의대·법대 진학을 최고로 쳐온 한국 입시 풍토는 수많은 소모적 사교육을 유발해 왔다. 연 18조원을 넘는 사교육시장의 폐해는 가계당 가처분소득은 차치하고라도, SKY캐슬 영재 엄마와 혜나의 비극적인 죽음이 보여주는 것처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청소년 자살률 1위와도 연관돼 있다.

힘든 과정을 통과하고 의사나 법관이 돼도 문제다. 사법농단 사태나 의사협회가 보여주는 폐쇄적인 카르텔을 보노라면 지천명(知天命)을 넘기고도 여전히 마마보이인 SKY캐슬 강준상은 오히려 순진하게 다가온다.

한국사회가 이토록 학력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너선 거슈니 옥스퍼드대 교수(사회학과)는 “학력에 집착하는 한국사회는 능력을 중시하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에 대한 믿음에 기반을 둔다”고 분석한다.

문제는 실력 위주의 사회가 겉으로는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 끝이 없는 경쟁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경쟁의 끝에는 상위 0.1%의 SKY캐슬과 상대적 박탈감을 가진 절대다수가 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한복판에서 메리토크라시 신화에 젖은 SKY캐슬 한국사회는 과연 변화될 수 있을까? 드라마 결말처럼 모두가 갑자기 선해지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무의식적으로 좇아온 기득권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함께 연대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점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내는 자 흥한다’는 속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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