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15배 성장' 베트남 '도이머이', 北 롤모델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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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미 기자
입력 2019-01-2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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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 1986년 '도이머이' 추진해 30년 만에 GDP 15배 증가

  • 일당 체제 유지·외교 고립 탈출·고도 성장은 北에 매력적 요소

지난 9일(현지시간)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관광객들이 다인승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며 시내를 구경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내달 말로 예고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세계 유력 언론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나라가 있다. 베트남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재회 무대로 베트남이 낙점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베트남이 주목 받는 이유는 이게 다가 아니다. 김 위원장이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겠다고 천명한 가운데 북한 경제 발전에 가장 적합한 ‘롤모델’로 베트남이 떠오르고 있어서다.

현재 북·미 간 논의의 핵심은 북한 비핵화에 맞춰져 있지만 장기적으로 비핵화만큼 중요한 문제는 북한의 경제 개방과 번영이다. 

북한에 비핵화를 설득하는 조건으로 장밋빛 미래를 제시해야 하는 미국은 한때 총부리를 겨누던 적국이었지만 개혁·개방 정책으로 전환한 뒤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베트남을 북한의 경제 모델로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차 정상회담 장소로 베트남을 제안한 것이 미국이라는 보도를 내기도 했다. 미국이 김 위원장에게 베트남의 발전상을 직접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으로서도 비슷한 처지에 있다가 단기간에 경제 현대화를 일궈낸 베트남 모델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베트남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계획경제 체제 아래 경제난에 시달렸고, 베트남전쟁 이후 미국의 제재를 받으며 외교적으로 고립 상태였다. 이제는 세계 강대국들과 전략적 관계를 맺으면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전도유망한 신흥국으로 발돋움했다. 경제 성장과 더불어 공산당 일당 체제가 흔들림 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체제 유지가 우선인 북한 정권에 매력적인 부분이다.

실제로 북한은 베트남 모델을 눈여겨보고 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지난해 11월 말 하노이를 찾아 경제·산업·관광단지를 두루 시찰하면서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머이’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지 '더 디플로맷'은 김정은 체제에서 북한 관리들이 신경제 정책 모델로 도이머이를 자주 언급해 왔다고 지난 15일 보도했다.

베트남어로 ‘쇄신’이라는 의미의 도이머이는 베트남이 1986년 시작한 대대적인 개혁 정책을 말한다. 그 일환으로 베트남은 시장경제를 수용하고 국유기업을 민영화했다. 집단농장 폐지 같은 농업 개혁과 수출산업 육성책을 실시했다. 외자 유치에 물꼬를 튼 것도 이때부터다. 과거의 적국과도 손을 잡았다. 1992년 한국과 수교했고, 1995년에는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베트남의 글로벌 편입이 가속되면서 도이머이 30년 만에 경제규모는 15배 넘게 불어났다. 1985년 141억 달러(약 16조원)에 그쳤던 베트남 국내총생산(GDP)은 2017년 2160억 달러를 기록했다.

다만 북한이 베트남의 전철을 밟는다고 해서 베트남처럼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베트남은 중앙통제식 계획 경제의 역사가 10년 정도로 짧았기 때문에 시장경제로의 복귀가 비교적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었지만, 북한은 전후 65년 넘게 엄격한 공산체제가 유지된 만큼 시장경제로의 변화가 순탄치 않을 수 있다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노동력 면에서도 북한이 불리하다는 분석이 있다. 도이머이를 시작하던 당시 인구의 70%를 구성하던 베트남 농업 종사자들은 도시에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해 수출경제의 토대가 됐다. 하지만 북한은 인구 60% 이상이 도시에 거주 중인 데다 평균 연령 역시 34세로, 현재 베트남의 27세보다도 훨씬 높다. 베트남이 공산당 일당 체제이긴 하지만 북한의 유일 지배 체제와는 차이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북한 정권이 싱가포르 모델에 더 관심이 있을지 모른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사회적으로 권위주의를 유지하면서도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뤘다. 국제적인 금융 및 물류 허브로서 전략적 위상을 확보하고 정부 주도 하에 관광 산업을 성공적으로 육성했다는 점도 북한으로서 매력적인 부분이다. 김 위원장은 최우선 국책사업으로 관광특구 건설을 지시할 만큼 관광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는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 전날 밤 마리나 베이샌즈호텔 등 싱가포르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기도 했다.

북한의 롤모델이 베트남이건, 싱가포르건 북한이 비핵화와 개방을 통해 고립에서 벗어난다면 급속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한·중·일 주변국만 봐도 대북 제재가 풀리고 시장이 개방되면 투자를 아끼지 않을 태세다. 북한이 한시라도 빨리 개혁·개방에 나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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