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고립되는 한국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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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입력 2019-01-0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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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얼마 전 민간 연구 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은 자체 세미나에서 2019년 한국 외교의 고립 가능성을 진단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 일변도 외교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국제 무대에서 고립될 수 있다”는 것이 요지이다. 북핵 외교를 통해 미국과 북한 사이에 중재 외교를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2018년을 보냈지만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이끈 것 말고는 별다른 성과가 없는 마당에서 한국 외교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북한의 비핵화가 바라는 만큼 시원스럽게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새해에는 미·북 간에 다시 대결 양상이 벌어질 수 있고 여기에서 한국은 양자 택일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설 수 있다. 한국이 북한의 편을 들어 미국의 제재 완화를 먼저 요구했기 때문에 한·미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이고 이 때문에 한국의 중재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 코리아 패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진단이다.

가까이 일본과의 관계는 더욱 심각하다. 해군 광개토대왕함의 일본 초계기 레이더 조준 논란은 양국 관계를 거의 적대국 수준까지 끌어내렸다. 아베 총리는 이를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해 지지율 만회를 꾀한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한국 정부도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어 양국 간의 응어리가 풀어지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그 배경에는 최근 위안부 및 강제 징용 논란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파괴, 그리고 대법원의 강제 징용 피해자 승소 판결은 일본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했고, 이 연장선 상에서 최근 레이더 조준 문제까지 불거져 나왔다.

중국과의 관계는 어떤가? 사드 배치와 이에 따른 보복으로 악화된 양국 관계는 어느 정도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봉합된 것은 아니다.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고, 미·북 관계가 나빠지면 한국은 다시 북한을 지원하는 중국이냐 아니면 혈맹인 미국이냐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더구나 최근 미·중 간 통상 전쟁의 와중에서 한국의 선택 폭은 더욱 좁아진다. 이미 최대 교역국이 되어버린 중국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역시 전통 우방국인 미국을 택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일본이 최근 발 빠르게 움직이며 중국과 관계 개선을 이뤘고 양국 정상의 교환 방문이 계획된 마당에 한국의 처지는 위태로울 지경이다.

우크라이나와 시리아 사태로 촉발된 미국, 러시아 간의 대결 구도는 신냉전 시대를 초래했고 이 역시 한국에는 크나큰 부담이다. 한·러 관계는 북핵 문제 해결에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 시점에 크게 기대할 바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러시아와 미국의 대결이 심화될수록 북핵 문제에는 악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순탄치 않은 주변 4강과의 관계를 보며 혹자는 구한말 한국의 상황을 떠올린다. 4강이 빠르게 이합집산을 벌이는 과정에서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한말 주변 열강이 세력 각축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손 놓고 넋 놓고 있다가 나라를 빼앗긴 상황을 연상하기도 한다. 한때 국제 무대에서 고립된 북한 외교를 논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한국 외교의 고립을 얘기하는 것이 그 이유이다. 주변 4강 외교뿐 아니라 4강을 넘어선 신남방·신북방 정책에 있어서도 아직은 아무런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요란한 구호 외에 구체적인 실체도 불분명하다.

물론 여러 가지 긍정적인 평가도 가능하다. 북핵 외교를 통해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었고 남북 간 대화의 물꼬가 트여 평화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감지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한 해 이를 위해 전력투구를 했고 지구 몇 바퀴를 도는 일정으로 순방을 다니며 4강을 비롯한 각국 수반들과 정상외교를 펼쳤다. 남북 회담에 이어 북·미 회담을 주선했고 이를 통해 새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속단하기 어렵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도 이 정도까지 평화의 분위기가 진전된 바 있었다. 울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평양을 방문해서 대화의 기반을 다졌고,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 말 평양 방문을 계획하고 있었다. 남북 관계도 해빙의 무드를 타고 있었고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실질적인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화해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대결의 구도로 바뀌었고, 이 후에 찾아온 한반도 긴장은 그 이전보다 훨씬 수위가 높아진 바 있다.

그런 면에서 북핵 외교에 올인하는 현재 문재인 정부의 외교는 많은 위험성을 안고 있다. 잘되면 대박이지만 못 되면 쪽박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전혀 과하지 않다. 그것은 한국 외교의 기본 구도가 북한 문제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신범철 안보통일센터장은 앞서 언급한 세미나에서 “자유주의적 기본 질서 속에서 대북 정책을 전개해야 하나 대북 정책에 맞춰 대외정책을 변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을 모든 외교 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그보다 중요한 우리의 가치 및 이념을 부속물로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 밖에도 한국 외교부의 문제도 지적된다. 지난 정부 시절에 핵심 역할을 해 오던 미국통·일본통 외교관들이 대거 후퇴한 것이 좋은 예이다. 이들 핵심 인력은 전 정부의 적폐 세력으로 몰려 옷을 벗거나 한직으로 물러났다. 이 때문에 미국, 일본을 아는 외교 인력이 드물고 이는 곧 서투른 외교로 나타난다.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한·미동맹도 약화되는 것이 이를 잘 증명한다.

얼마 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한국 외교 문제를 지적하며 자질 없는 4강 대사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전문성이 없거나 언어 능력이 부족한 것을 큰 문제로 삼았다. 특히 현지어나 영어 구사가 어려운 인사가 4강 대사로 나가 있는 점을 개탄했다. 외교가에 따르면 미국같이 강대국 대사가 아닌 경우 언어 능력이 없는 대사들은 현지에서 고립된다고 한다. 고립되는 한국 외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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