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포커스] ‘면세점 찬가’에 취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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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생활경제부 차장
입력 2019-01-0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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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생활경제부 차장]

“아이고, 어쩌냐. 공항 면세점에서 니가 사준 설화수 세트를 잃어버린 것 같다.”

몇년 전 일본여행 도중 어머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일 낮 숙소 체크인을 기다리며 호텔 로비에 잠시 둔 면세쇼핑백이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가이드가 패키지여행 멤버들의 면세품을 모두 체크한 결과, 뒤섞인 쇼핑백 속에서 문제의 설화수 세트를 겨우 찾았다. 어머니는 딸의 선물을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하룻밤 사이 몇십년은 더 늙은 것 같다고 겸연쩍어하셨다.

이처럼 해외여행 도중 면세품을 분실하기 쉬운 국민들의 편의를 위해 정부가 ‘입국장 면세점’ 도입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해외여행 3000만명 시대가 눈앞인데도 입국장 면세점이 없어서 (관광객들이) 시내나 공항 면세점에서 산 상품을 여행 기간 내내 휴대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자, 입국장 면세점 도입은 일사천리였다.

기획재정부와 관세청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해 설문조사를 진행, 국민 1000명 중 81%가 도입을 찬성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에 정부는 올해 6월 인천공항에 입국장 면세점 1호점을 내고 시범운영에 나선다.

그런데 입국장 면세점은 그 한계가 분명하다. 담배 및 검역대상 품목 등은 판매가 제한된다. 특히 1인당 총 판매한도는 현행 600달러가 유지된다. 여기에는 출국 전 면세한도가 포함돼, 실제 입국장 면세점의 매출은 높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입국장 면세점의 특허를 중견·중소기업으로 한정했다. 대기업 면세점에 비해 낮은 가격 경쟁력이나 부족한 상품 구색이 자칫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수도 있다. 기내 면세점과 얼마나 차별화될 지도 미지수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올해 시내 면세점의 특허를 추가로 더 발급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가 제시한 명분은 ‘전방위적 경제 활력 제고’다.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편의를 제고해 한국 방문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기대다.

신규 특허요건도 대폭 완화해 진입장벽을 낮췄다. 기재부는 △지자체별 면세점 매출액, 전년 대비 2000억원 이상 증가 △지자체별 외국인 관광객 수, 전년 대비 20만명 이상 증가 등 두 가지 요건 중 하나만 충족해도 대기업 면세점을 추가로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서울 12곳을 포함해 전국의 시내면세점은 총 26곳에 달한다.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롯데, 신라, 신세계 등 ‘빅 3’ 외엔 대부분 현상 유지를 하거나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높은 매출도 '따이공(대리구매상)' 때문이지, 실익은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한풀 꺾인 후 회복이 쉽지 않다. 

업계는 글로벌 문화 관광 콘텐츠를 육성하지 않고, ‘면세점 쇼핑’만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발상이 관료주의의 전형이라고 질타한다. 무엇보다 특허제에 따른 입찰경쟁 방식이 변하지 않는 이상, 또 한번 ‘면세점 특허’를 둘러싼 업계의 출혈경쟁은 불가피하다고 울상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무분별한 면세점 특허 남발은 롯데면세점의 월드타워점 면허 취소-재특허 등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의혹의 도화선이 됐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그로 인해 8개월간 구속되는 고초를 겪었다. 정부가 관광산업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없이 ‘면세점 찬가’만 부를 경우, 또 그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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