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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칼럼-중국정치7룡] "공화당 '온탕' 민주당 '냉탕'"…미·중관계 70년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입력 : 2018-11-15 06:00수정 : 2018-11-15 06:00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19) 시진핑의 대외 외교관계― 미국②
◆오바마, “미중양국은 일본에 맞서 함께 싸운 연합국”

시진핑(習近平)의 제6차 방미는 그가 국가주석에 취임한 직후인 2013년 6월 7일~8일에 이뤄졌다. 시 주석은 중남미 3개국 순방길 마지막 일정에 미국 캘리포니아에 들러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났다.

모하비 사막에 위치한 휴양지 서니랜즈에서 개최된 당시 회담의 형식은 정상회담이 아닌 ‘만남’ 이었다. 미국은 이를 ‘미팅(meeting)’으로 불렀고, 중국 외교부는 ‘회오(會晤·회견)’라고 했다. 두 정상은 노넥타이 차림으로 함께 산책을 하며 여러 대화를 나눴다. 시 주석은 “양국이 협력하면 세계 안전의 닻과 세계평화를 이끄는 프로펠러가 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시 주석은 오바마 대통령을 2014년 11월 10일~13일 중국으로 초청해 베이징 국빈관 댜오위타이(釣魚台) 의 '달밤산책'을 즐긴데 이어 2016년 9월 항저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에는 '시후(西湖) 산책' 등 격식 없는 만남을 두루 가졌다.

[사진=신화통신]


시 주석의 7차 방미는 2015년 9월 22일~26일에 이뤄졌다. 당시 시 주석은 국빈방문이었고, 오바마 대통령과 비공식 '회오'가 아닌 공식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 내외는 백악관에서 시 주석 부부를 위해 성대한 국빈만찬을 베풀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건배사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대공포에 맞아 불시착했던 미군 전투기 조종사가 중국의 한 마을에서 큰 도움을 받았던 사례를 언급하면서 미·중 양국은 일본에 맞서 같이 싸운 연합국이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당시 메인 테이블에는 중국 측 기업인 마윈 알리바바 총재, 리옌훙 바이두 총재, 마화텅 텐센트 총재와 미국 측 기업인 로버트 아이거 월트디즈니 CEO, 팀 쿡 애플 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대표 등이 두 정상과 자리를 함께 했다. 그들은 검은 송로버섯을 곁들인 수프와 중국 명주 '샤오싱주(紹興酒)'를 즐기며 담소를 나눴다.

◆미·중관계 70년 약사(略史)··· 공화 '온탕' 민주 '냉탕'

시 주석의 제8차 방미는 2017년 4월 6일~7일에 이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등 최근 2년간의 미·중 관계를 얘기하기 전에 우선 지난 수십년 간의 양국 관계의 궤적을 잠시 회고해본다.

미국의 대중정책은 냉전종식 이후 다음 네 가지 패턴을 보였다.

첫째, 기존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부분별·사안별로 제한된 갈등 양상을 보였다.

둘째, 대선 유세에서는 대중 강경책, 집권 후에는 협력 관계로 선회했다.

셋째, 집권 전반에는 긴장 관계, 후반에는 긴밀한 관계를 보였다.

넷째, 진보적 성향의 민주당보다 보수적 성향의 공화당 집권 때 미·중 관계가 더 원만했다. ‘공화당 시절 온탕, 민주당 시절 냉탕’이라 할까?  특히 이는 1990년대 초 냉전종식 이후 뿐만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949년 이후 재작년 2016년까지 거의 일관되게 이어져 온 패턴이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당시 미국 33대 헤리 트루먼 대통령(민주)은 중국을 소련과 함께 미국의 주적국으로 취급했다. 그는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한국전쟁때 약 30만 미군을 한반도에 파견,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의 명분으로 출병한 약 60만 ‘중국인민지원군’과 직접 맞서 싸워 혈투를 벌였다.

반면, 미국 34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공화)은 취임 첫해인 1953년 7월 27일 중국과의 종전협정을 체결, 한국전을 종전시키고 임기 내내 중국을 입으로만 성토했다. 이어 35대 존 F 케네디 대통령(민주)은 1962년 쿠바사태로 소련과의 긴장을 극대화시키는 한편 중국을 소련의 한통 속으로 사갈시 했다. 그가 암살된 후 승계한 36대 린든 존슨 대통령(민주) 역시 베트남 전쟁에 개입, 중국을 북베트남과 베트콩의 배후로 적대시했다.

 

[사진=강효백 교수제공]


그러나 37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공화)은 1972년 2월 21일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악수하고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함께 마오타이(茅台)주를 즐기면서 미·중 화해의 전기를 마련했다.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로 탄핵당한 후 뒤를 이은 38대 제럴드 포드 대통령(공화) 역시 대중 유화정책을 유지했다.

39대 지미 카터 대통령(민주)은 인권문제 등으로 중국과 첨예하게 대치했으나 그를 누르고 당선된 40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공화)은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의 숙적 소련을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41대 조지 부시 대통령(공화)은 초대 주중대사를 역임한 지중파 정계인사로서, 1991년의 제1차 이라크전쟁 등 각종 국제 현안 문제에서 겉으로만 '으르릉'거리지 속으론 중국과의 은밀하게 코드를 맞추었다. 반면 42대 빌 클린턴 대통령(민주)은 인권, 대만·티베트 문제, 최혜국대우, 지식재산권, 투자, 통상교역, 환율 등 전방위로 중국에 애를 먹였다.

이어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주중대사를 지낼 때 베이징에서 청년시절을 보낸 43대 조지 부시 2세 대통령(공화) 재임 시에는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 침공 등의 미국 국익 극대화 전략이 소수민족 문제 해결이라는 중국 국익과 부합하는 등 임기 내내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껴안아 미·중 밀월관계를 구가했다.

44대 버락 오바마 대통령(민주)은 중국에 인권, 대만문제, 티베트, 남중국해, 대중무역적자 문제 등 첨예한 대립의각을 세우며 전임자 부시 대통령 시절에 비해 긴장상태를 유지했다.

◆ 내심 트럼프 대통령 당선 바랬던 習

사실 시진핑 주석은 내심 2016년 미국 대선 정국에서 공화당 소속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희망했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인권과 민주주의, 소수민족 문제 등 중국의 각종 약점을 지적하면서 강경한 태도를 고수한 반면 미국을 우선시하고 고립주의 성향을 띠는 트럼프가 해양영토분쟁 등 미·중 간 문제에서도 상대하기에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당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지지했다.)

'시진핑 시대'의 메가 프로젝트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로·해상 실크로드)’ 건설이다. 일대일로는 “미국은 북미와 중남미 신대륙을 맡아라. 중국은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아우르는 구대륙의 맹주가 되겠노라’는 선언문과 같다. 미국은 비록 ‘아시아로의 회귀’를 외치지만 대규모 재정적자에 따른 국방비 삭감으로 ‘힘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力不從心)’ 상태이니 말이다.

자연히 세계 경제질서 개편에 따른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질서 재편은 불가피해 보인다. 즉, 미국이 과거 아시아를 일본 손에 남기고 몸을 빼려 했듯, 가까운 미래에는 미국이 ‘제2의 닉슨 독트린’, 즉 ‘아시아를 중국 손’에 맡겨 놓고 미 대륙으로 퇴각하는 날을 중국은 학수고대한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태평양은 매우 넓어 중국과 미국의 이익을 모두 담을 수 있다”고 한 말은 제2의 닉슨 독트린을 재촉하는 중국의 주문과 다름없었다. 그러던 차에 고대하던 고립주의를 내건 미국 대통령이 출현했으니, 시 주석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에 버금가는 고마운 존재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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