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근의 차이나 무비⑬] 영화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거세당한 권력과 남성성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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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입력 2018-11-0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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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7년 홍콩영화 역사상 최초로 100만 홍콩달러 흥행수익 돌파

  • 한국서도 개봉해 흥행…중국 전통극 특징, 스크린에 재현해 화제

오른팔을 잘리고 고통스러워하는 방강. [사진=영화 스틸 캡처]


사부의 딸 제패(齊佩)가 칼을 휘두르자 방강(方剛)의 오른팔이 수북이 쌓인 흰 눈 위로 나뒹군다. 빠른 리듬의 음악이 스크린을 채우고, 피범벅이 된 손으로 어쩔 줄 모르고 돌아서는 방강과,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제패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1960년대 후반, 홍콩영화의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獨臂刀, 1967)’의 명장면이다.

방강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제여풍(齊如風)을 스승으로 모신다. 제여풍은 그의 아버지가 목숨을 버리면서 구해낸 인물이다. 은인의 아들을 애제자로 삼아 무술을 연마케 하는 제여풍과 철없는 그의 딸, 그리고 방강을 시기하는 사형들 사이에서 사건은 벌어진다.

사형들은 방강을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다. 제패는 내심 방강을 좋아하면서도 사형들과 짝이 되어 그를 못살게 구는 일에 앞장선다.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한 방강은 길을 떠나려 하고, 그를 막아선 제패는 순전히 실수로 그의 팔을 내리친다.

방강에게는 아버지가 남긴 부러진 칼 한 자루뿐이다. 부러진 칼과 잘린 팔은 힘을 잃은 남성의 상징이다. 무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칼과 팔의 부재는 핵심적인 결핍을 상징한다. 이런 식의 결핍은 무협 장르에서 자주 나타난다.

이 영화가 김용의 소설 ‘신조협려(神雕俠侶)’에서 모티프를 따왔다고 생각하는 건 그런 유사성 때문이다. 칼로써 자신의 실력을 보여줘야 할 무사에게 남겨진 부러진 칼, 그 칼을 휘둘러야 할 팔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할 무사에게서 잘려나간 오른팔. 다시 말하건대, 잘려나간 건 왼팔이 아니라 오른팔이다.
 

떠나가는 방강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제패(위). 방강과 소만이 먼 길을 떠나려는 마지막 장면(아래). [사진=영화 스틸 캡처]


직전에 선보인 호금전(胡錦銓)의 영화 ‘대취협(大醉俠: 한국 개봉 제목은 방랑의 결투)’은 남장 여협 금연자(金燕子)의 이야기를 다뤘다.

남성의 세계 안으로 들어오고자 했던 여성의 서사가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에 이르러서는 여성이 남성을 거세해 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절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감독 장철(張徹)은 세계를 구성하는 관계들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했다. 물론 쓰러진 방강을 구출하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는 여인 소만(小蠻)의 등장은 그런 권력 관계의 전복이 영구히 허락되지 않는 시대적 상황을 보여준다.

호금전의 느릿한 연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쇼브러더스는 대신 장철을 내세워 빠른 리듬의 대중적 무협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다.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는 제작사의 요청에 잘 부응하는 영화였다.
 

장철 감독 [사진=바이두]


영화를 빨리 찍는 데 중점을 뒀던 장철은 평생 90편이 훨씬 넘는 필모그래피를 완성했다. 호금전의 연출 목록이 20편도 안 되는 걸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을 만한 숫자다. 그런데도 장철은 평생 이 영화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영화는 그만큼 거듭되는 절찬 가운데 놓여 있었다.

방강은 소만의 도움으로 새로운 무술을 익힌다. 소만의 아버지가 남겨준 왼팔 신공을 완벽하게 연마해낸다. 결핍의 보완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방강은 옛일을 생각지 않고 위험에 처한 사부와 제패를 구해준다.

비록 자신은 제패 때문에 팔을 잃었지만, 주저하지 않고 이들을 구하는 결정을 선택하는 그의 태도 때문에 ‘의리의 사나이’라는 우리말 제목이 붙었을 것이다.

‘의리’란 무릇 법치와 인치를 모두 넘어서서 개인적 은원 관계를 지켜가는 태도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결국 남성적 관점으로 귀결된다.

남성의 신체를 훼손한 여성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하게 되지만, 자신이 ‘권력’을 잘라버린 그 남성의 도움으로 구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영화는 도발적인 도입부, 그러나 역시 상투적인 결말부가 맞닿아 있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한 여성, 즉 제패에 대한 원망의 마음과 또 다른 한 여성, 즉 소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이입하게 된다. 그리고 두 여성 사이에서 그야말로 ‘남자답게’ 위험에 처한 여성을 구해준다.

하지만 결국 자신을 아껴준 여성과 손을 잡고 길을 떠나는 모습에 동조함으로써 그 남성성을 정당화한다.

물론 영화가 남성 대 여성의 대립 구도만 보여주는 건 아니다. 무협 영화로서 남성 집단 간의 투쟁과 결투는 요즘 영화의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지만, 그래도 흥미롭다. 당시 홍콩영화가 보여주는 양식적 특성으로서 중국 전통극의 무대와 복장, 분장 등이 스크린 위에서 재현하는 스타일 또한 흥미롭다.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는 홍콩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당시 100만 홍콩달러가 넘는 박스오피스를 기록했다. 국내에도 1968년에 개봉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방강 역을 맡은 주인공 왕우(王羽)는 대스타가 됐고, 지금까지도 옛 무협을 그리는 팬덤은 열렬하다. 영화의 성공 이후 ‘외팔이’라는 제목을 단 영화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다.

장철 자신도 돌아온 외팔이(獨臂刀王, 1967), 신외팔이(新獨臂刀, 1971) 등을 잇달아 만들었지만, 평가는 앞선 영화에 훨씬 못 미친다.
 

[임대근 교수의 차이나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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