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속 이야기] 누명 쓴 '팝의 황제', 한국땅을 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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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준무 기자
입력 2018-10-1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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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클 잭슨, 1996년 10월 11일 첫 내한 공연…기대에 못 미쳤던 예매율의 이유

[사진=마이클 잭슨 내한공연 실황 중계 캡처]


1996년 10월 11일. 요란한 불꽃 소리와 함께 마이클 잭슨이 무대 위에 등장했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이 순식간에 관중의 환호 소리로 채워졌다. '팝의 황제'가 첫번째 내한 공연을 시작한 순간이다.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초대형 콘서트였다. 폭 70m, 길이 25m의 거대한 무대에 미국에서 공수된 스피커 144개가 설치됐다. 장비 설치에만 꼬박 사흘이 걸렸다. '20세기 최고의 이벤트'라는 극찬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틀간 두 차례의 공연에서 잭슨은 '빌리 진', '스릴러' 등 24개의 히트곡을 소화했다.

돌발 상황도 있었다. 둘째 날 공연 도중 한 관객이 무대 위로 뛰어든 것이다. 잭슨이 유압 리프트에 오르는 순간 대학생 김모씨가 함께 올라탔다. 리프트가 지상 10m 높이로 솟구치는 와중에도 잭슨은 노래를 멈추지 않고 김씨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공연 후 잭슨은 "우리가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었던 기막힌 쇼"라며 오히려 감사를 표했다.

공연은 뜨거웠지만 객석은 썰렁했다. 6만여개의 전체 좌석 중 70%만 간신히 채워지는 정도였다. 전날에는 예매 실적이 저조해 공연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소리까지 나돌았다. 공연 당일 암표상들은 10만원짜리 S석을 8만원에 팔다가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주최 측은 25억원 가까운 적자를 봤다고 주장했다.

의외의 흥행 저조에는 이유가 있었다. 국내 시민단체들이 아동 성추행 의혹을 들어 내한에 반대했던 것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잭슨은 1993년 13세였던 조디 챈들러를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고소당한 바 있다. 그가 2300만 달러(약 260억원)에 피해자 가족과 합의했다는 소식은 심증을 확증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잭슨은 "대규모 투어를 앞두고 있어서 변호사의 권고로 합의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잭슨을 따라다녔던 추문은 그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그의 곁을 떠났다. 2009년 7월 조디 챈들러가 "마이클 잭슨은 나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돈에 눈이 먼 아버지가 꾸민 일"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잭슨을 고소했던 아버지 에반 챈들러는 아들의 실토 4개월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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