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스페셜-영원한 청년 의사 윤봉길⑨] 이 육신도 늙으면 無用… 마음의 폭탄 안고 국경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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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라 기자
입력 2018-08-1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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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부출가생불환’ 출사표이자 유서를 남기고…

[중국 안동현(오늘날 단둥시) 쪽의 압록강변 전경]


이흑룡과 신의주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날(1930년 3월 8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매헌의 마음은 바빠졌다. 생전에 마지막 모습이 될지도 모르는 고향의 모습을 눈에 담고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발길 닿는 곳마다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신작로 주막거리 부근 사촌형 순의의 가게 앞에선, 며칠간 친정에 다니러 가시는 어머니를 뵈었다. 매헌은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억누르고, 어머니께 과자와 쌀쌀한 날씨에 머리에 두를 수건 한 장을 사드리며 속으로 ‘작별의 인사’를 올렸다. 어머니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장부출가생불환
3월 6일 결행(決行)의 날이 밝았다. 이른 새벽, 매헌은 사랑방에 들러 혹여 자신으로 인해 가족이 일경으로부터 고초를 당할까 싶어, 빌미를 제공할 노트 등을 말끔히 정리했다. 떠날 만반의 준비는 끝났다.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은 후, 매헌은 붓에 먹물을 흠뻑 붙여 화선지에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일곱 자를 한 자 한자 힘 있게 눌러 썼다. ‘사나이가 집을 나섰으니(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글을 보는 매헌의 머릿속은 가족걱정으로 시작해 온갖 상념이 꼬리를 이었다. ‘이 일은 농촌부흥사업의 성과를 본 후 해도 되지 않을까?’ 강한 유혹도 생겼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장부출가생불환’을 보고 이내 미련을 떨쳤다. 먹물이 마르자 화선지를 잘 접어 책갈피에 끼어 두었다. 이것이 바로 매헌의 비장한 출사표(出師表)이자, 유서(遺書)였다.
날이 완전히 밝자, 매헌은 부엌으로 가서 아내에게 물을 한 그릇 부탁하여 마시고 아버지께는 매부 될 사람 선을 보고 오겠다는 말로 작별인사를 드린 후 집을 나섰다. 늘 있어 왔던 일이기에 가족 그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이향시
매헌은 정든 고향을 떠나며 절절한 마음과 비장한 각오를 담은 이향시(離鄕詩)를 남겼다.

“슬프다 내 고향아 / 자유의 백성몰아 지옥 보내고 / 푸른 풀 붉은 흙엔 백골만 남네 / 고향아 네 운명이 / 내가 어렸을 때는 / 쾌락한 봄동산이었고 / 자유의 노래 터였네
지금의 고향은 / 귀 막힌 벙어리만 남아 / 답답하기 짝이 없구나 / 동포야 네 목엔 칼이 씌우고 / 입 눈엔 튼튼한 쇠가 잠겼네 / 고향아 옛날의 자유 쾌락이 / 이제는 어데 있는가?
악마야 간다 나는 간다 / 인생의 길로 정의의 길로 /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면 / 유랑의 가는 길은 / 저 지평선 가리켜 / 오로지 사람다운 인류세계의 / 분주한 일꾼 되려네
갈 곳이 생기거든 나를 부르오 / 도로가 울툭불툭 험하거든 / 자유의 불꽃이 피려거든 / 생명의 근원이 흐르려거든 / 이곳이 나의 갈 곳이라네
떠나는 기구한 길 / 산 넘고 바다 건너 / 구렁을 넘어 뛰고 / 가시밭 밟아 가네 / 잘 있거라 정들은 고국강산아”


 

[야간 국경경비대에 검문당하는 한인들]

‘약속의 땅’ 밟기 전 체포되다
20리 길을 걸어 삽교에서 기차를 타서 서울역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경이었다. 매헌의 수중에는 월진회 공금 60원이 있었다. 매헌은 월진회원인 사촌동생 윤신득을 만나 자초지종 설명과 함께 월진회를 부탁하려고, 그가 묵는 종로 봉익동 하숙집으로 갔으나 만나지 못했다. 이흑룡과의 약속 때문에 서둘러 신의주행 열차를 올랐다.
기차에 오른 매헌은 긴장과 가중되는 피곤을 풀기 위해 잠을 청했다 깨기를 반복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열차는 신의주를 향해 달려갔다. 매헌은 고향친구며 월진회원인 황종진(黃鐘震)에게 편지를 썼다.

“…(중략)…형은 이 편지를 받으면 크게 경악하리라 믿습니다. 이 아우는 가정과 사업과 동지를 다 버리고 00사업을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났습니다. 현하(現下) 청년이 할 사업은 바로 이런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이 아우는 넓고 넓은 만주 벌판에서 자유롭게 뛰어 놀려고 합니다.”

바로 이때, 매헌을 수상쩍게 여긴 차장과 형사로 보이는 사람이 차표를 요구하며 어디까지 가냐고 물었다. “신의주 친척집에 갑니다.” “친척의 이름이 뭔가?” “윤천의입니다.” “윤천의는 신의주부(府) 무슨 정(町)에 사느냐.” 생전 처음 가보는 신의주 동네(町) 이름을 알 턱이 없는 매헌는 결국 말문이 막혔다. 그러자 형사는 소지품을 검사해 수상한 편지가 나오자, 매헌을 선천역에 강제로 하차시킨 후 곧바로 선천경찰서로 넘겼다.
국경의 경비와 검문검색이 주 임무인 선천경찰서에서 매헌은 압력과 회유 등 호된 취조를 받았다. 워낙 강단과 뚝심이 센 매헌은 일경의 욕지거리와 심한 매질에도 사실을 실토치 않고 꿋꿋하게 버텼다. 열흘 동안의 심문에도 별다른 게 없자 일경은 무혐의로 방면했다.

정주여관에서 사귄 지사들
경찰서에서 풀려난 매헌은 일단 선천시내 ‘정주여관’에 몸을 의지했다. 고문으로 옷은 누더기가 되었고, 몸은 피멍으로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무엇보다 이흑룡도 만나지 못한 채 이런 신세가 되다 보니 온갖 회의(懷疑)가 몰려왔다. 일단 매헌은 사촌동생 신득에게 편지를 썼다. 그간의 일과 함께 이흑룡을 만나면 피치 못할 사정을 전해 주고, 옷도 한 벌만 부쳐 달라는 내용이다.
신득의 답장을 기다리며 며칠을 보낸 어느 날, 만주로 가기 위해 같은 여관에 묵고 있던 김태식이 매헌에게 인사를 청했다. 김태식은 매헌이 선천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풀려난 것을 알고 있었다. 목표가 같다는 것을 확인한 두 사람은 이내 의기투합했다.
김태식은 자신이 입던 양복 한 벌을 매헌에게 주며, 일행 선우옥과 한일진도 소개했다.
매헌이 한 집안의 장남이라는 처지를 안 김태식과 선우옥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집으로 돌아가 농촌개혁에 전념하고, 후일을 도모하라”고 설득했다. 매헌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선우옥은 “신의주에 일자리를 마련해 줄 테니 서류를 준비하라”는 제안을 했다.
매헌은 건강 회복과 월진회 공금 마련, 정세파악 등을 고려해, 어머니께 장문의 편지를 썼다. 그간의 경위를 소상히 밝히고, 취직에 필요한 호적등본과 토지대장 등 서류도 부탁했다.

이흑룡과의 재회, 압록강을 건너다
신의주에서 만나기로 한 3월 8일 이흑룡은 매헌을 기다리다 결국 허탕치고 돌아갔다. 혹시 매헌의 마음이 바뀐 것은 아닌지 궁금해 알아보던 이흑룡은 신득을 통해 매헌의 근황이 파악되자, 신의주로 득달같이 달려왔다. 극적으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감격했다. 둘은 그간에 있었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밤새 회포를 풀었다. 이때 김좌진 장군이 고려공산청년회 김봉환(金奉煥)의 지시를 받은 박상실(朴尙實)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비보도 접했다.
이흑룡과 재회한 매헌은 취업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에 일자리를 주선해 주려던 선우옥에게 양해를 구하고 만주로 떠날 결심을 했다. 이흑룡과 며칠 사전준비를 마친 매헌은 마침내 그의 뜻을 펼칠 만주를 향해 압록강을 건넜다. 함께 떠난 일행은 매헌을 비롯해 이흑룡, 김태식, 한일진이었다. 선우옥은 끼지 않았다.
이때 압록강을 건너는 매헌의 비장한 심정은 그가 쓴 <자서약력>에 잘 드러나고 있다.

“23세,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우리의 압박과 고통은 증가할 따름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각오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뻣뻣이 말라가는 삼천리강산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수화(水火)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대로 태연히 앉아 볼 수는 없었다. 여기에 각오는 별것이 아니다. 나의 철권(鐵拳)으로 적(敵)을 즉각 부수려 한 것이다. 이 철권은 관(棺)속에 들어가면 무소용(無所用)이다. 늙어지면 무용(無用)이다. 내 귀에 쟁쟁한 것은 상해 임시정부였다. 다언불요(多言不要), 이 각오로 상해를 목적하고 사랑스러운 부모형제와 애처애자(愛妻愛子)와 따뜻한 고향산천(故鄕山川)을 버리고, 마음의 폭탄을 안고 압록강을 건넜다.”

이 글은 의거를 결심하게 된 동기와 조국 제단에 몸 바칠 대지(大志)를 세우고 망명길에 오를 당시 매헌의 각오를 잘 나타낸 출사표다. 기개(氣槪)와 결기(決起)가 뚝뚝 묻어나는 명문(名文)으로, 그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가가 구구절절이 드러난다.

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
사진=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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