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 칼럼-중국정치7룡] 일과 가정 모두 잡은 펑리위안 성공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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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입력 2018-08-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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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⑬

시진핑 주석의 해외순방에 동행한 펑리위안 여사. [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필자는 중국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彭麗媛)이 만약 시진핑(習近平) 부인이 되지 않았더라도 그가 중국 성악계를 빛낸 여성으로 이름을 사해 만방에 떨쳤으리라 생각한다. 그가 1987년 시진핑과 결혼 후 현재까지 30여년간 일과 가정에 최선을 다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누구의 아내 또는 딸이 아닌, 독립 인격체 펑리위안으로서 항상 가슴 뛰는 삶을 살아왔다.

◆펑리위안이 일과 가정에 모두 성공한 비결 

1990년 5월 펑리위안은 중국음악학원 대학원 과정을 수료, 석사과정 논문이 통과되어 중국 사상 최초의 민족음악석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12월 딸을 출산한 후 육아에 전념하면서도 자아 실현을 위한 피와 땀과 눈물을 아끼지 않았다. 2002년 모교인 산둥예술학원 객좌교수로 초빙받았으며, 2004년 9월엔 중국음악학원 객좌교수가 되었다. 2005년 9월 유엔창립 60주년 기념위원회 초청을 받아 미국 뉴욕 링컨예술센터에서 사상 최초로 중국 가극 '무란시편(木兰诗篇)'을 공연하여 우수예술가상도 수상했다.

펑리위안은 1982년 데뷔곡 앨범 '희망의 들판에서 (在希望的田野上)'를 시작으로 '에베레스트(珠穆朗玛)', '우리는 황하와 태산(我们是黄河泰山)' 등 10여 개의 앨범을 꾸준히 발표했다. 2007년 시진핑이 정치국상무위원으로 등극, 20년간의 준견우와 준직녀의 생활을 끝내고 베이징에서 함께 살게된 2007년말 그는 '나의 군인 형제(我的士兵兄弟)'를 끝으로 성악계 일선에서 은퇴했다.

2008년 3월 시진핑이 국가부주석에 취임한 이후, 펑리위안은 시진핑의 해외방문에 곧잘 동행했다. 2011년 6월, 펑리위안은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폐결핵 및 에이즈병 예방친선대사로 임명됐다.

2013년 3월 시진핑이 국가주석에 취임한 이후엔 '퍼스트레이디(영부인)'으로서  시 주석의 해외 순방에 동행해 중국의 문화를 알리는 '1등 외교관' 역할을 하고있다. 펑 여사의 적극적인 대외활동은 그동안 밖으로 거의 드러나지 않았던 중국의 역대 퍼스트레이디들과 대조된다.

2017년 4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과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정상회담 도중, 펑리위안을 재능이 출중한 가수(talented singer)로 높이 평가하자 시진핑 주석이 미소로 화답하면서, 회담 분위기가 급격히 좋아졌다고 전해진다.

펑리위안 여사는 현재 인민해방군 문관직 2급(한국의 준장급), 베이징대학 겸직교수 겸 국방대학군사문학원 및 중국음악학원 박사지도 교수 겸 중화전국청년연합회와 중국음악가협회 부주석에 재직하고 있다.

펑 여사는 한국 김치, 과자, 드라마의 열성 팬으로도 알려져 있다.  필자는 2014년 7월 초 시진핑 내외의 국빈 방한시 한 행사에 초대된 바 있다. 산둥성 출신 펑 여사도 혹시 김치를 즐겨 먹지 않을까 추측하면서 주한 중국대사관 외교관 친구 A(실명을 밝히지 않겠음)에게 탐문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펑 여사는 둘도 없는 김치 마니아’ 였다. 또한 펑 여사는 한국 과자(구체 상표명 밝히지 않겠음)와 ‘대장금’과 ‘별에서 온 그대’ 등 한국 드라마 열성 팬이다.

◆중국의 퍼스트 도터(daugter), 시밍쩌
 

대학교 1학년 시절 시밍쩌. [사진=강효백교수 제공]

시진핑-펑리위안의 딸, 시밍쩌(習明澤)는 1992년 6월 27일에 푸젠성 성도인 푸저우시에서 태어났다. 당시 푸저우시 당서기였던 시진핑(당시 시진핑은 만39세, 펑리위안은 만30세)은 외동딸의 출생을 지켜볼 수 없었다. 때 마침 초강력 태풍이 푸젠성을 습격해 해안 일대를 초토화하고 있던지라 시진핑은 사흘 내내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당연히 아내가 출산하는 날에 병원도 갈 수 없었다.

시밍쩌의 이름은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이 지어 주었다. 시밍쩌의 ‘명(明)’은 밝고 투명하고 청렴하게 살며 ‘택(泽)’은 세상에 윤기를 더하듯 쓸모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시밍쩌는 보통 집안의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자랐다. 초등과정은 베이징의 친척집에 보내 징산(京山)소학교를 나왔다. 2006년~2008년(시진핑 서장성 당서기 시절) 항저우 외국어학교 불어과를 다녔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안개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다. 깊은 연못을 마주한 것처럼,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매사에 신중했다. 모가 나지 않았고 튀지 않았다.

시밍쩌가 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2008년 5월의 쓰촨성 대지진 때가 유일하다. 어머니 펑리위안이 중국중앙 CCTV와 인터뷰 중간에 "쓰촨 대지진 발생 며칠 후 16세 딸이 학교에 휴가를 청해 쓰촨성 현장에서 7일동안 자원봉사활동을 갔다"고 딸을 잠시 언급하면서다. 

시밍쩌는 2009년 8월(시진핑 상하이 당서기 시절) 저장대학교 (浙江大学) 외국어대학 동시통역과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교 1학년 2학기때인 2010년 5월(시진핑 국가 부주석 시절) 미국 하버드대학에 입학했다. 중국에서 비밀경호원이 파견돼 그를 24시간 밀착 경호하고 미국 FBI에서도 전방위 전천후 경호했다. 

하버드 유학 기간 그는 가명을 썼으며, 학업 이외의 모든 사교 활동을 하지 않고 투명인간처럼 지냈다. 당시 중국 유학생들이 즐겨하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전혀 하지 않았다. 이러한 차기 중국 최고 권력자의 은인자중 투명인간식 처세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 유학생 시절 호화 방탕한 생활을 자랑삼아 악명이 높았던 전 충칭시 당서기 보시라이(薄熙来 부패혐의로 현재 무기징역 수감중)의 아들 보과과(薄瓜瓜)와는 딴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2015년 3월 하버드대학 측은 시밍쩌가 이미 중국에 돌아갔으며 그가 하버드대 재학기간 중 어떠한 특별 대우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2018년 현재 나이 방년 26세 시밍쩌는 베이징에 체류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취미는 패션과 독서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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