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암호화폐 투자일까, 투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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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영 기자
입력 2018-06-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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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닉스 최경준 대표

지닉스 최경준 대표[사진=지닉스 제공]

암호화폐(가상화폐)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과 인식은 '투기 근절'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암호화폐의 정체성에 대해 정의를 내리려는 시도나 시장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은 부족하다.

정부는 새로운 거래소들의 시장진입 속도를 늦추고 신규 투자자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법정화폐 입출금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은행들에 명시적 혹은 암시적으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에 은행들은 정책에 따라 엄격한 잣대로 암호화폐 거래소들에 제한적인 서비스만 제공한다.

그러나 정작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와 '투기'의 경계선과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면, 결국 정부도 스스로 '투기 근절'에 성공(혹은 실패)했다고 말할 기준조차 없는 셈이 된다. 가령, 어느 정도의 등락폭·변동성을 기준으로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지, 어떤 코인이 투자이고 투자가 아닌지, 어느 정도의 '김프(김치 프리미엄)'가 적절한 수준인지 등이 기준이 될 수 있겠다.

이는 정부가 무능해서가 아니다. 암호화폐에 대해 명확하고 객관적인 정의를 내리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래에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가 얼마의 가치를 갖고, 또 어느 정도의 안정성을 가질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현재 가격의 변동폭 및 등락폭을 기준으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단언컨대 이 불확실성의 종착역은 암호화폐가 '화폐'로서 보편적인 가치를 갖게 될지 여부다. 비트코인이 화폐 역할을 하려면 교환의 매개로서 가치척도 및 저장수단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비트코인은 화폐의 정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성급히 화폐의 사전적 정의를 바탕으로 비트코인이 화폐로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부정하거나, 비트코인을 법정화폐와 전혀 다른 새로운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화폐가 탄생하고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며, 보편적으로 사용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수반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물물교환 시대부터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화폐의 형태는 무수히 변화했다. 처음 물물교환이 시작되고 금속화폐가 자리잡기까지는 1000년이 넘게 걸렸다. 그 다음엔 지폐에 적혀 있는 만큼의 금속을 받을 수 있다는 약속을 믿고 거래하는 태환화폐의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이 개념은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급진적인 개념이었다. 태환화폐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 400년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근대에 들어서는 금의 가치 보장을 중앙은행과 정부가 대체하는 불태환화폐로의 전환이 있었다. 20세기 초 무렵에 지폐 시대는 플라스틱 지폐(신용카드)의 시대로 돌입했고, 플라스틱 지폐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데 또 반세기가량의 시간이 소요됐다. 현재는 플라스틱 지폐에서 디지털 지폐로의 전환 과정에 있다.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는 현재의 화폐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네트워크·프로토콜 기반의 탈중앙화 화폐다. 중앙화되어 있는 화폐시스템에 익숙한 우리가 또 한번의 혁신적인 패러다임에 익숙해지려면 아직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다. 다만, 이미 비트코인이 탄생한 지 9년째에 돌입했고, 암호화폐 생태계는 괄목할 만한 성장과 진화를 이어가고 있어 그 기다림이 아주 길지는 않을 것 같다.

결국 암호화폐의 투기 여부성에 대한 논쟁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최종 결과는 역사의 흐름에 맡겨야 한다.

대신 우리는 비트코인이 화폐가 된다면 경제·사회적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인프라 조성을 장려해야 한다. 반대로 '휴지조각'이 되어버렸을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개인과 기관이 책임있게 자금을 운용하도록 대비책 마련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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