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영상톡]"중국서 가장 사랑받는 한국 작가" 김병종 서울대교수 회고전..서울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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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성 기자
입력 2018-05-1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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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관악 캠퍼스 내 서울대미술관서 5월 20일까지 '바보예수에서 생명의 노래까지'전

"그가 그린 두 그루의 노송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으며, 11m가 넘는 그의 대작은 중국 최고의 현대미술관에서 한국적 동양화의 진수를 보여줬다."

중국서 가장 뜨고 있는 한국 작가인 김병종(64)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가 8월 퇴임을 앞두고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미술관 2, 3층에서 6일간의 짧은 회고전 '바보예수에서 생명의 노래까지'를 열었다.

[김병종 교수가 '숲에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봄비가 내리는 17일, 서울대 캠퍼스에서 만난 김병종 교수의 모습에는 40년 가까이 다녔던 서울대를 떠나는 아쉬움과 전업 작가로서 새 출발을 앞둔 설렘이 섞여 있었다.

김병종 교수는 "서울대를 떠나면서 일종의 보고 전 같은 형태의 중간점검하는 전시이다"며 "전업 작가의 첫 출발 선상에서 설레기도 한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작품을 쭉 둘러보니까 주제와 기법이 좋게 보면 다채롭고 나쁘게 보면 좀 방황했다고 할까? 주제와 기법의 변주가 느껴졌다"며 "40년 했던 작업으로써 (작품이) 많을 줄 알았는데 걸어놓고 보니까 초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병종 교수의 작품 '웃는 말']


김 교수는 자신의 화풍 변화를 '변주(變奏)'라고 지칭하며, 지금까지 '바보 예수', '생명의 노래', '화첩 기행', '화려 강산' 등 4~5번의 변주가 있었다고 말했다.

현대미술의 흐름 속성상 한 가지 주제와 기법에 천착(穿鑿)해야 자기화가 강화되는 데, 김 교수는 개념적인 사고를 중심으로 한 것보다는 그리기 중심의 페인팅 위주의 작업을 해 왔다.

"저 나름대로 처음부터 그리기 쪽에 특정을 두고 작업을 해와서 자꾸 다른 것을 그리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인물 중심의 '바보 예수' 시리즈를 하다가 갑자기 사물을 그리게 되고, 또 '어린 성자' 시리즈를 한동안 하면서 다시 또 인물을 그리고 하는 변주가 있었다."

[김병종 교수 작품 '우는 신']


1989년 가을에 일어난 사고는 김 교수의 화풍까지 바꾸는 첫 번째의 큰 변곡점이 됐다. 그해 '바보 예수' 시리즈를 전시하고 얼마 후 신림동에 있는 고시원 작업실에서 연탄가스 중독을 당했다.

김병종 교수는 "서울대학병원에 오래 입원해 있으면서 거듭된 여러 번의 수술을 하고 생사를 넘나들었다"며 "퇴원을 했지만 병실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종교적 무거운 주제 같은 거대 담론이 아닌 밝고 화사한 꽃이나 풀, 이런 것에 눈길이 가게 돼서 자연물들을 화사한 표현으로 그리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김 교수는 이어 탈(脫)중국과 비(非)서구의 한국적 미감을 찾아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표백한 하얀 중국 화선지가 제 체질에 잘 맞지 않아서 우리 전통의 시간의 덮기가 느껴지는 누르스름한 장판지, 생활 정서가 묻어있는 토담, 예술적으로는 분청사기의 텁텁한 맛, 이런 것들을 좀 살려 보기 위해서 닥지 원료와 흙을 개어서 화면을 만드는 작업을 쭉 했다."

[김병종 교수 작품 '송화 분']


실제로 '생명의 노래-숲에서(1994)', '웃는 말(1990)' 등의 작품은 누런 바탕에 거칠게 지나가는 먹선이 종이가 아닌 판자 위에 그려져 있다.

현재 영국 대영박물관에 걸려있는 3점의 작품 또한 새로운 시도의 결과물이다. 이는 박물관 큐레이터가 직접 와서 한해에 한점씩 3년에 걸쳐 고르면서 다양한 시리즈가 있었음에도 그 시리즈만 골라 갔다.

해당 작품은 마치 분청자기의 표면을 손바닥으로 두들기듯이 닥의 원료와 다른 자연 재료들을 섞어서 거기에 때로는 치자(梔子)물을 들이고 때로는 다른 자연의 원료를 섞어서 바탕을 만들어 내는 김 교수만의 '한국적 캔버스'가 표현됐다. 

"판재 위에다가 표면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기계에서 뽑아낸 것처럼 일정하지 않고 어떤 거는 얼룩얼룩하기도 하고 시간의 앙금 같은 느낌이 나기도 한다. 우리 미술의 특질이 생활 정서와 미술 정서가 따로 유리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우리 생활 정서 속에서 느껴지는 미의식은 중국 문인화에서 느껴지는 단 한 점의 먹물도 허용하지 않는 100% 표백한 종이가 아니지 않겠는가!"

[김병종 교수 작품 '바보 예수' ]


2014년 7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서울대를 방문해 김 교수가 그린 '서울대 정문'을 선물로 받으면서 그는 중국에 크게 알려지게 됐다.

"시진핑 주석이 오셨을 때 선물한 그림은 서울대 정문과 함께 노송 두 그루가 서로를 마주하고 바라보는 그림이어서, 한중 관계의 새로운 전개라고 할까? 이런 것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시 주석이 소나무 작품을 가져갔고 그것이 인연이 돼서 이듬해 중국 최고의 현대미술관인 진르미술관에서 김 교수의 개인전이 열리게 되고 이후 그는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작가가 됐다.

"그 규모가 대단하다. 천장이 높은 곳은 17m나 된다. 1000호짜리 작품(숲은 잠들지 않는다, 190x1140cm, 닥판에 먹과 채색, 2003)를 비롯한 대작들을 많이 가져가서 흔히 동양화의 본산은 중국이라고 하는데 제 마음속에는 중국과는 다른 한국적 미학의 지필묵 문화를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내심의 욕심이 있어서 대작 중심으로 가지고 갔고 많은 언론에서 기자 회견을 하고 TV로 소개됐다"

당시 출품했던 1000호짜리 작품은 현재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 걸려 있다. 이 작품을 보러 2달 만에 6천 명이 알름알름 다녀가면서 미술관은 지역의 새로운 명물이 됐다.

[1000호짜리 작품 '숲은 잠들지 않는다']


중국 전시가 끝날 때쯤에 진르미술관 관장에게서 일 년의 반쯤은 중국에 와서 작업했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받았다.

"경덕진(중국 장시성 북동부) 이라는 곳에 작업실을 마련해주고 숙식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해서 그 부분도 퇴임 후 고려해보고 있다."

최근에는 '송화 분분'이라고 명명한 작품들을 많이 하고 있는데, 소나무의 억센 가지에서 나오는 노란 송홧가루들이 정중동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굉장히 신비롭게 비쳤다.

김 교수는 "한 식물 과학자한테 문의했더니 그것이 그냥 바람에 날려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인자를 퍼트리는 과정이라고 해서 노란색의 행진인 투명하고 가벼운 색의 이동을 눈여겨봤다"고 말했다.

[김병종 교수 작품 '생명의 노래']


마치 거친 먹선처럼 오랜 연륜을 견딘 노송에서 여리고 샛노란 송홧가루들이 분분히 날리는 모습이 음과 양, 먹과 색 이런 대비되는 이원적 요소들이 하나로 만나지는 느낌이 들게 한다.

"노송들의 가지가 얽히고설키고 하는 모양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굉장히 조형적이다. 그것을 먹선으로 순간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은 욕망이 들었고, 그 사이를 몽몽하게 퍼져 나가는 송홧가루가 아주 고운 색깔이 대비돼서 과거에서처럼 먹과 색, 그다음에 선과 먹 이런 이분화를 떠나서 먹선과 고운 색을 대비시킨 연작을 하고 있다"

작품에 소나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작가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이해가 된다. 전북 남원 출신인 김 교수는 소나무가 굉장히 가득 찼던 '송동'이라는 소나무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소나무가 유난히 많은 관악산에서 4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김병종 교수 작품 '생명의 노래 천마']


지난 남북정상회담에서 소나무가 서로 부둥켜 얼싸안은 모습의 '화려강산'이라는 시리즈의 작품도 비밀회담실에 걸리게 됐다.

"제가 살고있는 집의 이름이 송와(소나무가 있는 집)이고 전통 동양화가들 사이에서는 학이나 소나무를 즐겨 다뤘다. 전통적인 화목 즉 그림의 소재를 현대적인 나름의 미감과 방법으로 재구성해서 펼쳐 보려고 한다"

김 교수는 최근에 시작한 소나무 그리기를 좀 더 심화시키면서 작품을 만들 계획이며, 올해 11월에 대작을 중심으로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업 작가로 첫 개인전도 연다.

김병종 교수는 끝으로 "그동안 가르치고 그림 그리고 하는 것을 병행했는데 이제는 정말로 올인을 해서 온 힘을 다해서 전업 작가로서 한 획을 그어봐야겠다"며 "다음 회고전 때는 크기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볼만한 게 몇 개 더 나와줘야겠다는 각오로 다시 출발 선상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전시는 5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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