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I의 중국 대중문화 읽기⑮] 사회주의 ‘집단’ 흔적, 자본주의 ‘상업공간’ 속 자발적 ‘광장舞’로 진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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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실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 책임연구원(상하이대학 문학박사)
입력 2017-09-2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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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 공간 ‘광장’의 의미 변화

상하이 난징루(南京路) 인민광장에서의 광장무[사진=바이두]

공간이란 삶의 모든 형태와 실천들이 맞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창조적 체험의 장이자, 일상이 일어나는 ‘삶의 테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공간은 동시대의 정책과 이데올로기, 패러다임의 특징을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상하이(上海) 푸둥(浦東) 지구가 갖고 있는 특정 장소성과 초고층 마천루가 이뤄내는 스펙타클은 당대 중국의 여러 도심정책과 담론들이 만들어 낸 결과다.

중국의 거리를 걷다보면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각종 표지판을 비롯한 지하철 표시, 가로등, 표어, 초록색 둥근 우체통 등은 도시 공간 안에 공공 서비스 공급과 같은 공공정책과 전략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도시공간 안에서 하루 일과는 익숙한 공간 형식을 통해 체험되며, 이렇게 구성된 일상생활은 무의식과 공유된 지식으로 합치되고 살아있는 경험을 만들어 낸다.

상하이라는 도시공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고, 일상적인 공간이 바로 ‘광장’이다.

광장은 거주지 주변에 결합돼 주거와 소비의 공간을 구성하고 사교, 쇼핑 여가 등 일상생활이 진행되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광장은 본래 중국의 크고 작은 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집회와 공공정치의 공간으로 사회주의의 생활공간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부동산 개발 붐을 통해 도시의 거주 공간이 확장됨에 따라 같이 생겨난 쇼핑센터에 ‘광장’이라는 말을 붙이게 됐다.

당대 도시공간에 있어 광장은 더 이상 이전의 공공집회의 공간이 아닌 쇼핑몰과 백화점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됐다.

백화점이 중국에 처음 출현한 것은 상하이가 개항한 이후부터였으며, 조계지역을 중심으로 외국 자본에 의해서 설립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국인과 일본인의 자본으로 출발해 점차 화교 자본에 의해 다양한 백화점이 나타났다.

백화점의 ‘백화(百貨)’라는 말은 본래 일본어에서 차용한 것이지만 점차적으로 ‘쇼핑센터(購物中心)’, ‘성(城)’, ‘상업 빌딩(商業大夏)’ 등 백화점을 지칭하는 다양한 용어가 생겨났다.

1990년대 중반 ‘상하이 10대 도시 상업지구 건설계획’이라는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 쇼핑몰이 눈에 띄게 증가했고 그 규모도 점차 확대됐다.

특히 원림식(園林式) 쇼핑광장과 같은 대규모 상업지구가 많아졌다. 원림식 쇼핑광장이란 야외 공간에 중앙에 둥근 광장식의 넓은 공간이 있고 이 공간 주변에 쇼핑몰 건물이 늘어서 있는 쇼핑구역을 말한다.

마치 쇼핑몰의 숲으로 둘러싸인 것 같다고 해 원림식 쇼핑광장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광장을 통해 집회와 공공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광장을 통해 소비의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식 생활방식에 적응해나갔다.

그리고 이런 야외 상업광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있는 점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모여 ‘광장무(廣場舞)’를 춘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야외의 원림식 쇼핑광장이 출현한 이후 시점부터다. 광장무란 많은 사람들이 공공장소에 자발적으로 모여 친목과 건강을 도모하는 공연적인 특성을 가진 군무를 말한다.

2000년대 이후 광장무가 많아지고, 전통의 민족무와 현대무용 등이 에어로빅 등 보건체조와 접목되면서 다양한 동작과 리듬으로 구성돼 있다.

또한 행인과 주민 누구나 함께 어울려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광장무가 연안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점차 내륙까지 확대되기 시작하자, 2011년에는 중국 당국은 전 인민의 생활 건강 체육을 보급하고 진흥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군무를 즐기는 중국인의 특성은 민족의 오랜 전통과 특수한 시기 등 문화적 특징으로 형성돼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40년대는 연극, 노래 춤이 한데 어우러진 일종의 광장극인 앙가무(秧歌舞)가 널리 유행했고,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큰 스피커에 혁명가요를 틀어놓고 군무를 추거나 행진을 하는 집체주의적 정치적 색채가 강한 충자무(忠字舞)가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에는 춤에 대한 금지령이 해제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교제무(交誼舞)가 널리 유행하기도 했다.

중국의 지난 30여 년에 걸친 도시계획과 자본, 다양한 감각이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은 인간을 자본주의적 주체 즉 소비의 주체로 재구성했다.

자본은 사회주의의 공간인 광장을 소비주의와 개인주의의 공간으로 재탄생 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 안에서도 사람들은 일상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의미체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도시의 다양한 리듬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1990년대 이후 상업광장 안에 광장무가 출현한 것은 마치 자본주의의 지층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중국 사회 안에 문득 발견한 사회주의 시기의 화석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광장무를 추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 사회주의 시기의 경험과 기억을 보유했던 퇴직한 중장년층이기도 하거니와, 그들이 큰 소리로 틀어놓는 음악은 거리에 북적이는 개인들로 구성된 인파를 집단의 일원으로 소환한다.

경쾌하고 흥겨운 통속음악 리듬에 맞춰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이들의 군무에 주변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진다. 더러는 여기에 합류해 동작을 따라하기도 한다.

이것은 복잡한 도식과 선으로 이뤄진 지도 위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일상의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고윤실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 책임연구원(상하이대학 문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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