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窓] 마크롱에 대한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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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부국장
입력 2017-08-0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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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에디터]

[글로벌 에디터 이수완] "국민 여러분! 오늘 드디어 프랑스가 높이 날아오를 시간이 됐습니다."

"어떠한 이유로도 더 나은 프랑스를 만들려는 저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난 5월 프랑스 25대 대통령에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의 취임사 일부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프랑스인들이 위축된 자신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전진할 것을 촉구했다. 오늘날 유럽과 세계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프랑스를 원한다고 역설했다. 또 결집과 화해를 통해 프랑스를 최고 국가의 반열에 올리자고 호소했다.

39세의 나이로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에 오른 정치신인 마크롱. 프랑스 정계에서 '이단아'로 취급받던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곧바로 국내외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많은 프랑스인들은 그의 권위주의적인 국정 운영 방식과 개혁 조급증에 등을 돌리는 모습이다.   

마크롱이 세운 신생 정당인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는 지난 6월 실시된 총선에서 압도적인 과반을 차지했다. 2차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집권당과 제1야당 자리를 번갈아 차지한 '사회당'과 '공화당'의 몰락을 의미하는 '선거혁명'을 이뤄낸 것이다. 각종 정책을 두고 좌·우파로 갈라졌던 의회는 '실용'을 전면에 내세운 신당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내각도 좌파와 우파 중도의 인사가 골고루 포진되고 여성 비율도 40% 이상인 균형 잡힌 모습을 선보였다. 친(親)기업적인 경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고용시장 유연화를 내세운 대대적인 노동개혁안과 심각한 실업난(전체 실업률 10%, 청년 실업률 25%) 해소를 위한 '일자리 만들기' 정책도 마련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외교무대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과 만나 할 말은 하는 강단을 보였다. 세계 주요 언론은 유럽에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했다며 주목했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프랑스 대혁명 기념식 참석차 파리를 방문한 트럼프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해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세계 고립주의 물결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펼치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추던 스포트라이트가 마크롱 대통령으로 점차 이동했다.

마크롱의 등장은 분명히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며 국정 지지율은 한 달 만에 20%포인트 이상 폭락했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의 취임 2개월 중 가장 낮은 수치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거만한 모습'에 부정적 여론이 확산된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에 트럼프를 대동하고 대규모 군사퍼레이드에 참석해 군인들 사이를 활보하는 마크롱의 모습은 프랑스 절대군주 루이 14세에 비유되기도 했다. 자신이 '보스'임을 강조하고 외적 이미지에 신경쓰는 모습에서 ‘유치한 권위주의‘라는 비판까지 제기되었다. 

지난달 19일 피에르 드빌리에 프랑스군 합참의장은 갑작스런 국방예산 삭감 조치를 두고 마크롱 대통령과 대립하다가 사임했다. 마크롱은 군 수뇌부의 반발을 “나는 당신의 보스”라며 한마디로 묵살했다. 소통을 거부하는 그의 일방통행식 행보는 자신의 주요 공약 실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국정 제1과제로 알려진 노동개혁도 정상적인 절차인 의회 표결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 행정명령 형태로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럴 경우 의회 내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노동·사회단체들의 대규모 시위 등 장외투쟁이 예상된다. 진정한 의미의 개혁도 기대하기 힘들다.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존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강력한 프랑스' 재건을 약속한 그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 때문이었다. 현재 프랑스 경제는 장기간의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생산성은 유럽연합(EU) 국가 중 최저이다. 프랑스인들은 마크롱이 젊은 에너지를 바탕으로 고질적인 '프랑스병'을 치유해 번영의 길로 이끌 것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국민 위에 군림하는 모습은 절대 원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되어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다.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과 마크롱은 비슷한 날짜에 5년 임기를 시작했다. 5년 후 두 지도자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나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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