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호칼럼] 송중기 송혜교의 약혼식은 불법, 황당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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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7-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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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장호]


현행 '대통령령 제26774호'에 따르면 '약혼할 때 약혼식은 따로 하지 않는다'라고 돼 있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현재 시행되고 있는 법령이 약혼은 하되 약혼식은 하지 말라고 규율하고 있다니! 약혼식을 하고 말고는 개인의 의사에 따라 결정할 일이지 국가가 이런 것까지 규율하는가? 만약 약혼식을 거행한다면, 이것이 대한민국의 법령을 위반한 것이란 말인가?
그렇다!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국회가 법률의 세부적 시행을 위해 대한민국정부에 위임한 대통령령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이다. 법령위반 시 벌금이나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그러나 "악법도 법이다. 나는 내가 말한 신조대로 법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악법의 판결도 수용한다"라고 외치며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 정신을 본다면 부자와 빈자, 배움의 여부와 상관없이 약혼식을 치른 사람은 범법자이다.
우리나라는 영국, 미국처럼 판례, 관습 중심체제가 아니라 법조문이 어떻게 정해져 있는가로 규범이 정해지는 성문법 체계를 따르고 있다. 그 최상위법이 헌법이고 헌법정신에 따라 국회가 법률을 제정한다. 법률이 정하지 않은 부분을 보완하고 행정의 효율성과 국민편의를 위해 대통령령과 부령은 정부에서 정하고, 그중 대통령령은 여러 부처와의 상충 여부 등도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제정한다. 그 이후 세부적이고 실무적인 사항을 규정하기 위해 훈령, 예규 등이 제정되기도 하지만 재판의 근거가 되고 법원성(法源性)을 가지느냐 여부는 학설이 갈리고 있다. 법리적으로 본다면, 시행규칙으로도 표현되는 부령 이상은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이론의 여지 없이 법(法)인 것이다.
법률 제11282호는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은 가정의례의 의식절차를 합리화하여 허례허식을 없애고 건전한 사회 기풍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제1조에서 제정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 시행을 위해 우리나라 법체계대로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하나 있고, 특이하게도 같은 위상의 대통령령으로 '건전가정의례준칙'이 수차례 개정되어 현재 시행 중에 있다.
'건전가정의례준칙'이라는 대통령령을 살펴보면 제7조에 '약혼을 할 때에는 약혼당사자의 부모 등 직계가족만 참석하여 상견례를 하고 혼인에 관한 모든 사항을 협의하되, 약혼식은 따로 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약혼식을 하면 어쩔건데? 라는 도전적인 반문이 혀끝에서 맴돈다. 7조 2항은 '약혼당사자는 건강진단서를 첨부하여 약혼서를 교환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이런 걸 점입가경이라고 해야 하나? 포복절도라고 해야 할까?
혼인을 하는 경우도 재미있다. 8조에 따라 혼인을 할 때 혼인예식의 복장은 단정하고 간소하며 청결한 옷차림이어야 하고 예단을 보내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부모에게만 보내야 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베라 왕이 만든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람은 국법을 무시한 사람으로 분류되어 SNS에 난도질을 당해도 정의에 부합하는 것일까? 삼촌, 고모는 지금이라도 신부 측으로부터 받은 예단을 돌려줘야 할까? 시간이 지났으니 이자는 안 붙여도 법적으로 괜찮은 걸까?
말이 나온 김에 한 걸음 더 나가보자. 이 법령에 따르면 부모, 조부모의 상기(喪期)는 100일까지로 하게 되어 있는데 49재 탈상을 하거나 삼우탈상도 흔한 요즘 세태에 100일 전 탈상을 하는 대부분의 후손은 충효를 모르는 무도한 자들인가? 총 25조문밖에 안 되는 대통령령이지만, 굽이굽이 황당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조문이 많아 여름날, 매미 우는 나른한 날 일독을 권해볼 만하기도 하지만, 압권은 마지막의 제25조이다. '회갑연 및 고희연 등의 수연례는 가정에서 친척과 친지가 모여 간소하게 한다.'
요즘 대한민국 국민 중에 회갑과 7순 잔치를 집에서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며, 집에서 하는 것이 과연 간소한 것일까? 호텔이나 음식점에서 잔치를 벌이고 평소 감사하고 소중했던 사람을 초빙하여 음식을 나누는 사람은 법령위반이라는 죄의식을 가슴에 가져야 할까?
21세기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되어 있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법령이 국가법령체계 내에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을 수 있을까? 예부터 예를 숭상하여 권력서열 1위인 이조판서보다 홍문관의 대제학을 숭상하였던 우리 정서를 반영한 것일까? 혼인과 제사의 영역도 정부가 기본방향을 정할 수는 있지만 굳이 실정법령일 필요도 없고 시대분위기와 민생의 일상은 반영되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처벌조항도 없는 이런 프로그램 같은 법령에 대해 너무 민감하고 잔잔한 것에 신경 쓰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지 모른다. 이런 것이 사소한 것이라면 대범하고 대국적인 법은 무엇일까? 이 대통령령을 제안한 부처 장관은 어떻게 법안을 설명했을까? 어떤 재주를 가졌길래 대한민국 최고 국정운영의 장인 국무회의를 몇 번이나 통과했을까? 상황이 기묘하고 해괴하게 변하여 누군가 법률을 새로 제정하면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법률과 대통령령을 어긴 사람에 대해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새로운 실정법을 만들어 낸다면 검찰과 경찰은 약혼식을 올린 사람들을 수사하여 기소하고 판사는 처벌해야 하는가?
선량한 소시민으로서 국가가 정한 법은 일단 옳은 것으로 간주하고 가급적 법을 지키려고 하는 소크라테스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면 이런 엇박자를 어떻게 내면화하여 다스려야 하는가! 이런 법이 우리나라에 이것 하나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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