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스텝' 밟던 각국 중앙은행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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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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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안선영 기자 =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25pb(1bp=0.01%포인트)씩 조정하는 데는 1990년대 초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영향이 컸다.

당시 그린스펀 의장은 "금리가 한 번에 너무 큰 폭으로 오르면 시장에 충격이 크고, 너무 작게 오르면 효과가 나지 않는다"며 "금리 조정을 어린아이 보폭처럼 작게 움직이는 '베이비 스텝'(25bp씩 금리 조정)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가령 경기가 나쁘면 기준금리를 한번에 50bp를 내리는 대신 일단 25bp를 내려보고 물가 등에 미치는 영향을 살핀 뒤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나중에 추가로 25bp를 더 내리는 점진적인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서는 1999년 금리목표제 도입 후 25bp 단위로 기준금리를 조정했다.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도 보폭을 맞추면서 '베이비 스텝'이 일종의 관행으로 자리잡게 됐다.

그러나 최근 '금리 변동의 불문율'이 깨지고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25bp는 '작은 걸음'에 불과했다. 하지만 저금리 시대가 도래하자 오히려 '큰 보폭'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금리가 제로(0) 수준에 근접하거나, 정책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금리를 25bp씩 움직이면 경제에 가해지는 충격이 커지게 됐다. 인하 또는 인상 기조를 장기간 지속하다가 조정 속도를 조절하려는 경우에도 정책금리를 25bp보다 작은 폭으로 조정한다.

실제로 유럽중앙은행(ECB), 헝가리, 대만, 체코, 일본 등 금리가 제로 수준인 국가를 중심으로 25bp보다 낮은 수준의 금리 변동을 보이고 있다. 

ECB는 2014년 6월과 9월에 기준금리를 각각 10bp씩 내렸고, 지난해 3월에는 5bp 인하했다. 일본 중앙은행도 2001년 금리를 25bp에서 15bp로 낮췄고, 이후 5~20bp씩 경제 상황에 따라 유연한 금리 변동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웨덴 중앙은행 역시 2015년 정책금리를 제로에서 마이너스(-)로 내릴 때 10~15bp씩 인하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반면 25bp보다 큰 폭의 금리 변동도 있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지난 2월 한 번에 기준금리를 75pb 인하했다. 한국은행도 2008년 유례 없이 75bp를 내린 바 있다. 내수가 위축되고 경제성장률이 급속하게 하락하는 상황에서 예상 외의 '충격'을 가하려는 결정이었다.

멕시코는 지난 2월 기준금리를 50bp 인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모두 25bp의 배수로 금리를 조정해온 만큼 넓은 의미로 보면 그린스펀 전 의장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예부터 숫자 9를 좋아하는 중국은 0.27%, 0.54%포인트 등 9의 배수를 활용하고 있다. 덴마크는 기준금리가 2%였던 2009년 관행을 깨고 35bp를 인하했으며, 이후 5bp에서 45bp까지 금리폭을 조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 연준의 전 세계적인 영향력은 여전히 크지만, 각국 중앙은행들이 자신의 나라 상황에 맞는 금리 변동을 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며 "한국은행이 그동안 역사적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25bp를 유지하는 것보다 경제 상황과 현 금리에 따른 유연한 움직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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